여기, 노인을 위한 도시가 있다

2014. 1. 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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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특집] 세계 각지에서 만개하는 노인 친화 도시의 실험세금 내고 소비하는 노인이 젊은 층 일자리 만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고령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된 지금, 세계는 노인을 위한 도시를 건설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령친화도시 건설을 위한 지침을 개발해 '세계 고령친화도시 가이드라인'(World's Age Friendly Cities Guideline)을 발표했다. WHO가 공개한 세계 고령친화도시 지도에는 총 35개 도시가 표시돼 있다. 가까운 나라로는 일본 도쿄와 히메지, 중국 상하이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은 없다.

노인은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노인은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청장년 시절을 도시에서 보내며 도시와 함께 나이 든 이들은 수십 년 전 떠나온 고향보다 도시가 자신을 더 안전하게 보호해준다고 믿는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복지 선진국들은 자신이 살아온 지역과 집, 이웃들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노인복지 정책의 모토로 삼는다. 그러므로 고령화하는 도시 앞에 펼쳐질 날이 쇠락 일로일 뿐이라는 우려는 이제 낡은 말이 되었다. 한국트렌드연구소는 "일반적으로 고령화 지역은 노동인구가 적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반면 노인 부양을 위한 복지비는 증가해 재정 압박을 받게 되며 도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돼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고령자를 도시에 모시는 것은 도시 입장에서 성장의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세금 확보와 소비를 통한 경제 순환 효과에 더해 고령층 세대의 욕구에 맞춰 도시를 리모델링하면서 젊은이들에게까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WHO가 2007년 첫 번째로 선정한 친고령화 도시는 가장 역동하는 도시로 꼽히는 미국 뉴욕이었다. 가장 뜨겁고 젊은 이미지의 도시가 가장 먼저 노인을 위한 도시로 선정됐다는 것은 도시 고령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임을 또 한 번 역설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뉴욕은 도시의 일부 구역을 노령자를 위한 개발지구로 선정해 상점에 물건을 진열할 때 노인들이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지침, 안내판이나 메뉴판 글자를 크게 인쇄하는 등 사소한 것부터 사거리 보행 신호 시간 연장, 노인 응급 경고 시스템 개선 등 고령층을 배려한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노인 도시에 흘러넘치는 활력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그드는 WHO가 꼽는 고령친화도시는 아니지만 고령층들이 노후를 잘 보낼 수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로 꼽히지만, 고령화 사회에 도달하기까지 115년이 걸려 늙어감에 대비할 시간이 비교적 많았다. '황금의 시대'라는 노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그드는 5천여 명의 퇴직자를 상대로 '미하벨 카드'라는 것을 발급해 스포츠·수공예 등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여가활동 지도자 또한 다수 퇴직자 출신을 고용했다. 노인들의 외출과 산책을 돕는 미니버스를 운행하고, 노인들이 식사하고 어울릴 수 있는 식당도 운영한다. 도시 홈페이지(www.ccas-agde.fr)에는 지역 주택 정보, 그달에 진행되는 행사나 프로그램, 레저시설 및 레스토랑 연락처 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청장년 시절을 도시에서 보내며 도시와 함께 나이 든 이들은 수십 년 전 떠나온 고향보다 도시가 자신을 더 안전하게 보호해준다고 믿는다.

한국트렌드연구소는 2012년 앞으로 시대를 관통할 화두 중 하나로 '실버부머' 세대와 '친고령화도시'를 들었다. 연구소는 고령친화도시로 핀란드의 노인 주택 공동체 '로푸키리', 미국 플로리다주의 게인즈빌 등을 꼽는다. 30여 년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고령화 대비 체제에 들어간 핀란드의 로푸키리(Loppukiri·핀란드어로 마지막 전력질주라는 뜻)는 수도 헬싱키 외곽에 위치한, 2011년 기준 평균 나이 68살 노인, 58가구로 꾸려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직접 설계하고, 공동 생활 규칙을 정해 생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프랑스 아그드처럼 독서나 합창 등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동아리를 꾸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게인즈빌은 5만 명 이상의 재학생을 보유한 플로르다대학이 위치한 대학도시지만, 2000년대 들어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연간 10%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이며 가파르게 세를 넓히고 있다. 2011년 게인즈빌은 시니어레크리에이션센터를 열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운동센터·취미활동 공간을 마련하는 등 노인들을 위한 멀티플레이스를 건설했다. 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나 센터를 찾는 청소년·어린이들을 가이드하는 인력을 노인으로 채용해 노인들 스스로 센터를 운영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트렌드연구소는 노인들에게 사회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필수 의료서비스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늙음을 생동으로 전환한 참고할 만한 도시 사례가 세계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나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로 꼽히는 한국의 오늘은 아직 암울하다. 지난해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를 차지한데다 빈곤율 상승 속도도 가장 빠른 것으로 꼽혔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3'에서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10년 기준 10.9%로 2000년 대비 3.9%포인트 늘어났다고 밝혔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은 2018년 14%가 예상되며 2026년에는 21%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젊은 층이 오지 않는 도심

고령층 절대 인구가 많은데도 뚜렷한 대책이 부족한 도시 고령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집을 가지고 있지만 고정수입은 없는 고령층이 많다"며 "앞으로 이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원으로 들어가면서 고령자 주택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노인을 위한 실버타운을 도심에 짓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도시 재생을 통해 젊은 층을 도심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자녀가 있는 젊은 가구는 교육 문제 등으로 인해 외곽에 머무는 경향이 강하다. 서구의 경험으로 보면 도심으로 회귀하는 층은 비혼이거나 노년이었다. 한국은 앞으로 10여 년만 지나면 인구 10명 중 노인 인구가 2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도시들도 노인을 위한 사소하고 세심한 배려부터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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