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은밀한 쓰레기 거래..미화원 유혹하는 '따방'

2013. 12. 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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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내년이면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됩니다. 그런데 이 종량제 봉투를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현장을 임진택 기자가 심층 취재했습니다.

[기자]

오전 5시, 서울의 한 청소 용역업체, 쓰레기 수거차 한 대가 시동을 걸더니 어디론가 이동합니다.

금세 사라진 수거차, 2시간 뒤 생활폐기물을 산더미처럼 싣고 나타납니다.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일몰 후 저녁 시간에 하도록 정해진 일을 굳이 새벽에 하는 미화원들.

[구청 관계자 : 일몰 후에 수거를 하죠. 생활 쓰레기를 그렇게 치운다고요? 그건 제가 잘 모르는데. 그런 경우가 있어요?]

일명 '따방'. 종량제 봉투를 쓰지 않은 생활 폐기물을 치워주는 행위, 미화원들은 이런 식의 불법 쓰레기 수거를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김인수/민주연합노동조합 정책국장 : 종량제 하기 전에는 직접 업체가 돈을 수거했잖아요. 그 전에는 따방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완전히 구조적인 문제네요?) 네 구조적인 문제….]

물론 대가도 있었습니다.

[전직 미화원 : 서로 편하니까. 돈 2~3만 원 주고 섞어서 걷어 주고.]

청소업체에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청소업체 직원 : 종량제 봉투인가 아닌가 한 번 보시라고. 이리로 오셔 봐.]

정말 그럴까. 은밀한 불법 수거의 현장을 직접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빌딩 전체가 음식점인 한 대형 업소, 보관함에는 불법 봉투가 한 가득 들어 있습니다.

잠시 뒤, 대형 수거 차량이 나타나더니 봉투들을 싣기 시작합니다.

[청소업체 미화원 : (이제 뭐예요?) 일반 종량 쓰레기. (근데 이게 종량제 봉투 아니잖아요?) 서비스 차원으로 실어 드리는 거예요. 종량제 봉투 싣잖아요. 그러다 자잘한 것 있으면 몇 개 있는 것 실어 드리는…. (근데 이 음식점은 종량제 하나도 안 쓰고. 제가 다 봤거든요.)]

당황한 듯한 미화원, 한사코 돈을 받고 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청소업체 미화원 : 저희들이 대가성 받고 그런 것은 없어요. 서비스 차원으로.]

종업원들도 둘러대는 듯한 얘기만 합니다.

[음식업소 종업원 : 그거 해서 다 담는데요.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요?) 이쪽에 해 놓으면 담는 사람이 있어요. (누가 담죠?) 그건 모르죠.]

지점장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음식업소 지점장 : 저희는 주황색 비닐 봉지에 버리는데. (그건 종량제 봉투가 아닌 건 아시죠?) 네. 청소부 아저씨가 별 얘기가 없어서…. (여긴 얼마 주셨나요?) 10만 원 (종량제봉투라면 30만 원 나갈 돈인데 10만 원만 주는 거잖아요?) 네. (계좌로 주나요?) 아뇨. 오셔서 받아요. (한 달에 한 번?) 네.]

상황이 이런데도 구청 등 감독 기관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종량제 시행 20년, 그 근본 취지를 무색케 하는 현장입니다.

+++

[앵커]

현장을 취재한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임진택 기자, 정말 저런 일이 있나 싶을 정도인데, '따방'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나요?

[기자]

저도 취재를 하면서 미화원 분들이나 관련 종사자들에게 물어봤는데 아시는 분이 없더군요. 실질적으로 종량제를 시행하면서 계속 그렇게 관행적으로 불려왔는데, 그 의미를 아는 분이 없었습니다. 은어처럼 쓰였던 것이죠.

[앵커]

'따방'이 계속 운영된다면 결국 쓰레기 수거 비용이 줄줄 새는 거 아닌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문제가 심각한데요, 원인이 어디 있는지 좀 더 취재했습니다.

서울 도심의 채소 도매점 앞 인도. 생활쓰레기가 불법 봉투에 담긴 채 전봇대 옆에 쌓여 있습니다.

잠시 뒤 종량제 봉투 수거 차량이 나타나고 미화원은 신속하게 이 불법쓰레기들을 차량에 싣습니다.

하루에 무려 8봉지, 만약 100리터 한 봉지에 2000원씩 하는 종량제 봉투를 썼다면 1만 6천 원 돈입니다.

한 달이면 30~40만 원. 하지만 업소는 그에 1/3도 안 되는 돈을 미화원에게 쥐어 주고 쓰레기를 처리해 왔습니다.

서울 도심에선 정체 불명의 대형 비닐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음식업소 관계자 : 저희는 따로 있어요. 구청 쪽에 돈을 내고. 그냥 하면 많이 나오니까. 계약을 하는 거죠.]

생활쓰레기 중간 매집장, 여기저기 불법 쓰레기 봉투가 보입니다.

[미화원 : 이렇게 안 적힌 것. 까만 봉투 이런 것… (파란 것 이런 것이요? 그쪽 것은 뭐예요?) 내놓는데 지저분하니까 가져와요. 그런 것은 쓰면 안 되는 거지. 종량제 봉투를 써야지.]

왜 이런 일이 만연한 걸까. 미화원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이게 월급 명세서인가요?) 예. 올해 11월. (기본급이 75만 원이고 직무수당이 35만 원이고.)]

서울에서 일하는 15년차 이상 미화원 세 명의 급여명세서를 비교해 봤습니다.

실 수령액은 각각 167만 원, 188만 원, 203만 원.

약 400만 원대인 서울 가구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화원 : 거의 밥 사먹기도 힘들어요. 굶은 적이 많아요. 그러니까 맨날 마이너스죠. 빚을 안 질 수가 없어요.]

미화원들에게는 불법 봉투의 은밀한 유혹이 도처에 있습니다.

[미화원 : 찔러주는 거야, 그런 것 많아요. 얼마 줄 테니까 하자 이런 사람 많아요.(음식점주들이요?) 네.]

[전직 미화원 : 평균 들어보면 중심가의 친구들 보면 80~90만 원씩. (월급의 40~50%네요?) 거의 반이지.]

[유기영/서울연구원 연구위원 : 음식점은 규격 봉투 안 사도 되고. 미화원은 자기 봉급 이외에 돈을 챙길 수 있고.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죠.]

+++

[앵커]

결국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관행처럼 돼버린 거군요?

[기자]

미화원들의 경우 급여가 워낙 적다보니 이런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또 해당 구청이나 관할 서울시, 그리고 용역업체들도 현실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 보니 눈감아 준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지자체마다 이 용역 미화원의 급여 수준이 다르다면서요?

[기자]

그렇습니다. 미화원 월급을 지자체에서 직접 주는 경우가 있고, 관련 용역업체에서 주는 경우가 있는데, 서울시를 포함한 일부 지자체에서 용역업체가 해결하다 보니 급여가 낮아진 측면도 있었습니다.

해법이 어떤 것이 있는지 좀 더 취재해봤습니다.

[기자]

서울의 한 쓰레기 소각 시설. 이곳에선 종량제 봉투만 태워야 합니다.

처리장의 문이 열리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봉투들이 눈 앞에 나타나고 한 눈에도 불법 봉투가 수없이 보입니다.

관계자는 종량제를 써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소각시설 관계자 : 봉투 안에 또 다른 봉투가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경우들이지. 종량제 봉투가 아닌 봉투는 수거를 안 합니다.]

종량제 봉투의 실종, 정부에선 근본적으로 미화원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환경부 관계자 : 법에 원가 계산을 해서 실비 수준으로 임금을 하라고 돼 있거든요. 서울시에서 그걸 어기고 하다 보니까 우리도 (개선) 권고를 했고.]

서울시는 1995년 종량제가 처음 시행될 때부터 봉투의 수거를 용역업체에 맡겨 왔습니다.

117개 업체에서 3000여 명의 미화원이 일하고 있는데, 다른 지자체보다 급여가 낮습니다.

[서울시 관계자 : 서울시 고문변호사한테 법률자문을 받았습니다. 물론 지방재정법 상의 하자는 있지만 그렇게 중요한 하자는 아니라고….]

서울시 이외에도 경기도 고양시, 울산 북구, 경남 창원 등 여러 지자체들이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 : 만약에 법적인 문제만 따져서 저희가 추계를 해봤습니다. 1년에2300억 원씩 나옵니다. 추가로 드는 돈이.]

해법은 없을까. 일부에선 10년째 그대로인 종량제 봉투값을 올려 임금을 보전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습니다.

[서울시 구청 관계자 : 한 달 내내 배출하고 1천 원, 1천500원. 말이 되냐고 이게 1만원, 1만5천 원 해도 될 판에 1천원, 1천500원 하니까.]

[유기영/서울연구원 연구위원 : 지역별 차이도 있지만 어찌 됐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서울은 지금 너무 낮아요. 그러니까 미화원들 인건비로 반영이 되고.]

미화원 보수를 다른 지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지자체가 부담하는 방식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보수가 현실화하면 따방이 줄어들 수 있고 그만큼 쓰레기 수거비 누수를 막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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