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집회 15분만에 물대포..조기 강경진압 '고삐'

2013. 11. 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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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대치 때

경고 방송 3회 뒤 곧바로 쏘아대

경찰청, 조기 강경진압 지침 시달

"명분 없는 선제적 찍어누르기 우려"

지난 10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013 전국 노동자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네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오후 5시15분께였다. 곧바로 물대포 차량 4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여러분은 지금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 즉시 해산하라"는 내용의 경고방송을 3차례 반복한 뒤 곧바로 물대포 차량 2대가 물을 10초간 쐈다. 오후 5시30분께였다. 기습한파 속에 물에 젖은 300여명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전태일 다리 쪽으로 돌아갔다.

물리적 충돌도 벌어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경찰의 시위 대처는 평소보다 빠르고 강경했다. 정호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1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매우 이상했다.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고, 실제 발사도 10초 정도밖에 안 했다. 경찰이 물대포를 쐈다는 점을 대내외에 확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발사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보인 경찰의 태도는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 기조를 강화하겠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근 경찰의 행보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노동자대회를 앞둔 지난 8일 낸 보도자료에는 "행진코스 이탈, 차로상 장시간 연좌 및 경찰관 폭행 등 묵과할 수 없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물포·캡사이신' 등 경찰 장비를 사용하여 불법 상태를 해소하고, 현장 검거 등 엄정 대처할 계획"이라는 지침이 담겨 있다. 경찰이 지난 5월1일 노동절 집회를 앞두고 "질서 유지선 침범·손괴, 주최자 준수사항 위반 등에 대해서는 철저한 채증으로 엄히 사법조처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과 차이가 크다. '채증을 통한 형사처벌' 지침이 '물대포 등 진압장비 사용을 통한 강경진압' 기조로 나아간 것이다.

일선 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서울지방경찰청은 노동자대회를 앞둔 지난 5~7일 열린 '화상회의'를 통해 '조기 강경진압'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시달하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통상 경고방송을 통해 해산을 유도하는 데 30분가량이 걸리는데, 그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불법 집회를 진압하라는 지시가 화상회의에서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법질서 확립이 대두되면서, 절차를 위반하는 집회는 강하게 대응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 경찰은 수갑·경찰봉·포승줄 등 장구를 사용할 때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의무 규정을 삭제해 '공권력 남용' 가능성을 키웠다는 지적도 받았다.(<한겨레> 11월11일치 9면)

이런 흐름에 대해 인권·시민단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의 강경진압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물리력을 동원한 시위가 계속되는 등의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경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선제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찍어누른다. 한국이 경찰국가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집회나 기자회견 등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강경해졌다. 어제 노동자대회 때의 석연치 않은 물대포 진압과 장구 사용 권장 지침 등을 보면 박근혜 정부 들어 국민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도로 불법 점거나 경찰 폭행 등의 불법 집회에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기조는 과거부터 계속된 것"이라고 말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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