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선생님을 바꿔주세요" 4학년 8반에 무슨 일이

2013. 10. 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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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며 폭력을 행사한 담임교사를 바꿔달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해당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졸업생들과 다른 학부모들의 말이 엇갈린다. 사건의 진실은?

"박근혜 대통령님께. 우리 선생님을 바꿔주세요." 초등학교 4학년의 1인 시위. 서울 서부지역의 ○○초등학교 4학년 8반에 재학 중인 김모군의 요구다. 10월 초,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구경 나온 시민들이 찍은 이 1인 시위 사진은 SNS와 블로그를 넘나들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기독교를 믿는 담임교사가 아이에게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려다 아이가 거부하자 갖은 욕설과 폭행, 차별과 왕따를 시켰다는 주장이다. 한 시민은 다음과 같은 소개글로 김군의 1인 시위 소식을 전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 학생이 광화문에 나와 직접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게 뭘까요."

인권위서 어떤 결론 내릴지 주목

'논란'이 된 것은 한 블로그에 게시된 아이의 1인 시위 사진과 피켓 내용 글에 그 교사를 알고 있다는 초등학교 졸업생과 학교 학부모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면서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그 선생님의 과거 언행이나 행동에 비춰봤을 때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았을 리 없다는 것이며, 실제 그 학생과 부모가 그런 주장을 해 조사를 해보니 전혀 사실무근이었고, 현재 이 사안은 인권위에 진정되어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느 일방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선생님을 교체해 달라"며 광화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 | 이상훈 선임기자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댓글을 통해 흘러나왔다. "처음 1인 시위를 할 때 아이가 나눠준 자료에는 선생님이 했다는 끔찍한 발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게 너무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후 시위과정에서는 그 대목을 삭제했다."

오가는 이야기에는 제3자의 관전평으로 보이는 지적도 있었다. "이름이 네 자인데, 어머니가 페미니스트여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 "애가 들고 있는 피켓을 보면 도저히 4학년 수준에서는 구사할 수 없는 어휘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은 무엇일까.

일단 아이의 어머니가 페미니스트라서 이름이 네 자인 것은 아니다. 성은 김씨이고 이름이 세 자였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이 할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이름에 한 자를 더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김군을 시위 현장에 데려다주기는 했지만, 피켓 내용은 모두 김군이 스스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확인해본 결과, 김군이 '광화문 1인 시위'를 하게 된 데에는 긴 갈등의 시간이 있었다. 김군은 지난 8월 하순에는 교육청 앞에서, 그리고 9월에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학부모단체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의 전 회장을 맡았던 강소연 연세대 교수(교육심리학)는 이 사태의 초기과정에 갈등을 중재하러 나섰다.

"학부모 입장에서 김군의 시위 현장에 가서 김군 어머니와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딱했고 학교측과 김군측 요구사항을 중재하려 했다. 결국 선생님이 병가를 내고, 선생님이 2학기에는 안 나오고 김군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까지 이야기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반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학부모 사이의 갈등으로 비화'되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1인 시위를 하던 김군이 시위를 접고 등교하던 지난 9월 25일, 이번에는 같은 반 24명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등교 거부'를 결의한 것이다. 9월 25일에는 한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26일에는 김군을 제외한 반 학생 전원이 등교하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들과의 갈등으로 번져

다른 학부모들은 왜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수소문 끝에 한 학부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이 학부모는 먼저 "자신은 반 전체 아이들 학부모의 의견을 대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학부모는 '선생님이 종교 강요·욕설·폭행을 했다'는 김군의 주장에 대해 "요즘 학부모들이 어떤 사람인데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외면하겠느냐"며 "좋게 말하면 (김군의) 상상력이 풍부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망상(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 학부모는 "1학기 방학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 김군이 무단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데, 김군이 왜 나오지 않았는지는 반 아이들도 몰랐고 선생님이 말씀 안 하셔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다른 학부모도 몰랐다"고 말했다. "7월에 김군의 학부모가 다른 학부모들에게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었고, '누가 맞았다'고 하니 학부모들끼리 사실 확인 끝에 전혀 사실이 아닌 주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김군은 7월 16일 국가인권위에 교사를 종교 강요·폭행 등 차별로 진정을 냈다. 전후로 관할 교육청인 서부교육청의 조사도 있었다. 학부모들은 "담임교사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요지의 자필 탄원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24명의 4학년 8반 아이들 학부모 41명이 동참했다. 역시 어렵게 연락이 된 또 다른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 학부모들이 김군의 학부모를 만나 설득도 하고 타협안도 제시했다. 그 아이를 왕따시키기 위해서 24명의 아이들이 등교 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 망상이 도가 지나쳐서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이의 심리검사를 받자고 이야기했지만 김군의 학부모는 거부하고 1인 시위 쪽으로 달려간 것이다."

"학부모들과의 갈등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어떻게 인권침해를 당했는지의 문제에 집중해 달라." 김군 아버지의 부탁이다. 10월 8일 저녁, 김군의 아버지를 만났다. 김군의 아버지는 "1인 시위를 시작했던 것도,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다 김군이 결정했고 해야 할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종교문제와 관련해 아이에게 가해진 '학대'를 학교당국과 상급기관인 서부교육청이 "증거가 있느냐"고 다그치며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현재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진술에 따르면 선생님은 학기 초부터 점심시간을 이용해 '우리들의 자율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를 강요했다. 이 시간에 우리 아이에게 '너는 죄인이니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던 우리 아이가 '내가 나쁜 짓을 안 했는데 왜 죄인이냐'고 반발하자 속된 말로 선생님 눈에 찍힌 것이다.

김군이 '종교 강요·폭행' 행위를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 카톡 사건 일지.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김군의 아버지는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답했다.

주먹으로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폭력이 일어난다. 욕설을 하는 것도 폭력이다. 애를 수업시간 발표조에서 제외하거나 심부름을 시켜 수업을 못듣게 하는 등의 일이 1학기 내내 일어났다. 아이의 증언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김군의 아버지는 그 증거로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진정서와 서부교육청 담당과장과의 전화녹음 등을 제시했다.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진정서에 게재된 자료에는 아이가 폭행을 당했다는 사진과 함께 교사로부터 들었다는 욕설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서부교육청 담당과장과의 통화 녹음에는 "아이의 수업권도 중요하지만 다른 아이들 24명의 수업권도 중요하다"며 김군의 아버지와 논쟁하는 담당과장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만화로 그린 피해사례 증거는 못대

그러나 김군의 아버지가 제시하는 자료에는 교육청 관계자나 학교 측, 담임교사의 욕설 · 폭행이나 차별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없었다. 증거로 첨부된 선생님과 주고받았다는 문자는 선생님이 보낸 문자가 아니라 김군의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보낸 문자였다. 김군의 아버지는 "더 많은 증거자료가 있다"며 기자를 집으로 안내했다.

김군의 집에서 아버지가 제시한 자료는 김군이 만든 32쪽 분량의 '카툰사건 일지'와 일기장 등이었다. 김군이 직접 그린 카툰사건 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사용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 만화책을 읽을 때는 항상 4-8 일기장을 함께 읽어야 함. 이유: 이 만화책은 일기장에 미처 다 쓰지 못한 내용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그림의 제목은 아침 자습시간. 칠판 위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원수를 사랑하라'고 적힌 판이 걸려 있고, 칠판에는 '종이 코팅한 자석으로 붙인 십자가'가 걸려 있다. 종이 십자가는 교단에도 붙어 있고, 학생들은 묵주를 들고 머리를 손으로 올려 기도를 하고 있다.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김군에게 디테일한 내용에 대해 물었다. 한참 설명하던 김군의 얼굴에 당황해하는 표정이 스치면서 아버지를 쳐다봤다. 김군의 아버지는 "실제 몇월 며칠 몇시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고 광신적인 선생님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 그린 것"이라고 대신 설명했다.

카툰 일기에 등장하는 다른 '일화'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다른 학생에게 욕설을 하고, 체벌을 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그림 역시 아버지는 눈에 띄지 않게 가하는 선생님의 폭력을 '상징'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정황은 구체적이었다. 실제 맞은 학생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시험지를 찢어버리거나 아이를 악령으로 규정하고 사탄으로 매도하는 등의 그림이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 역시 '상징'이라고만 설명했다.

선생님이 했다는 욕설도 마찬가지였다. 김군의 일기 말미에는 선생님이 일기에 대해 한 코멘트가 달려 있었는데, 대부분 칭찬하는 말이었다. 김군이 선생님을 비난하기 시작하는 일기를 쓸 때부터는 선생님의 코멘트가 없다. 김군의 아버지는 "이날부터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른 학교의 인권침해 조사를 담당했던 전 인권위 관계자는 "사실 교실에서 어떤 차별행위가 벌어졌을 때 그 사실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며 "아이들에게 1대 1로 면접조사를 하는 것조차도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팩트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진정사건은 10월 18일 상정 내지는 기각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학교측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우리로서 걱정인 것은 현재 김군의 상태"라며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인권위의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학교측은 인권위 결정이 내려지는 대로 학교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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