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가.. 딱 걸린 살인범들

김형원 기자 2013. 9. 2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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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전후 '가족 살인·毒草 효과' 등 검색.. 결정적 단서로

"제가 죽은 환자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작년 7월 31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서초경찰서에 유명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56)씨가 자수했다. 변호사를 대동한 그는 "환자가 가끔 피로를 호소할 때면 영양제를 놔줬다"며 "이날도 적정량 약물을 투여했는데 깨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수면 마취제 프로포폴(일명 우유주사) 논란을 불러일으킨'산부인과 의사 시신 유기 사건'은 김씨와 숨진 여성이 내연 관계였으며, 김씨 아내가 시신 유기 과정에 가담했고, 처방전 없이 약물을 투여한 정황이 차례로 드러나 의사와 경찰의 두뇌 싸움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그가 약물 13종류를 혼합 투약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피해 여성이 숨지기 직전 스마트폰으로 베카론·리도카인·박타신 등 약물 이름을 검색한 기록이 나온 게 결정적 단서였다. 마취제 베카론은 숨 쉬는 근육까지 마비시킬 수 있는 위험한 약물이다. 수사에 관여한 한 경찰관은 "피해 여성이 의사에게 '이게 무슨 약이냐'고 물으면서 스마트폰으로 하나씩 검색했던 것"이라며 "검색 결과가 드러난 후 김씨는 성관계를 갖기 위해 병원에서 닥치는 대로 약물을 챙겨 주사했다고 실토했다"고 말했다.

최근 강력 범죄 해결에 스마트폰 검색 기록이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는 '검색의 생활화'가 신종 과학수사 기법을 가능케 만들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산하 디지털포렌식(digital forensics)팀에 들어오는 스마트폰 분석 의뢰 건수는 2008년 43건에서 작년 3861건으로 90배 가까이 폭증했다.

디지털포렌식팀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스마트폰 증거물 분석 프로그램 '네탄 모바일 스마트'로 범죄 흔적을 찾아내고 있다. 피의자·피해자가 특정 사이트에 접속한 사실을 찾아내면, 검색 키워드·로그인 기록 등 광범위한 정보를 분석하는 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들이 간혹 증거를 없애기 위해 검색 기록을 삭제하거나 스마트폰을 산산조각 부수기도 하지만 손톱 크기의 핵심 부품만 있으면 전부 복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 당국은 범죄에 관련된 내용을 찾기 위해 목격자·참고인 등 사건 관련자의 검색 기록까지 분석하기도 한다.

범죄 흔적을 없애려고 검색을 했다가 덜미를 잡힌 사례도 있다. 지난달 14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아령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때려 살해하고 도주했던 조모(23·무직)씨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지만, 스마트폰에서 '피가 지워지지 않아요' '가족 살인'과 같은 검색어가 튀어나오자 범행을 시인했다. 패륜 살인 이후 태연히 상주(喪主) 노릇까지 해 영화 '공공의 적'을 연상시켰던 범인도 새로운 첨단 수사 기법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디지털포렌식팀은 사건 성격에 따라 복원 데이터의 초점을 다르게 잡는다. 학교 폭력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공간의 언어폭력을 주로 분석하고, 사망 사건은 검색어를 통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가늠하기도 한다. 디지털포렌식팀 분석관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자살일 경우 주로 자살 방법과 도구를 검색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부름센터' '청부' 같은 키워드가 나온 사건은 수사 결과 청부 살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확보한 검색 기록이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술·보안 전문가인 구태언 변호사는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식으로 행위가 언급된 기록이 나오면 직접증거가 될 수 있고, '나 큰일 났어' 같은 말처럼 범행을 암시하는 '간접증거'를 확보했더라도 이를 통해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면 그 자백이 증거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디지털 증거는 위·변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엄격한 절차에 따라서 수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검색기록이 결정적'…살인범 잡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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