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방불".. 스무살 공시족 급증

김영주기자 2013. 9. 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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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부터 공무원 9급시험에 사회·과학·수학 포함

지난 7일 오전 9시 서울시 일반행정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이 치러진 서울 서초구 양재고. 초조한 표정으로 시험장에 들어서는 수험생 중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것 같은 앳된 모습의 응시자들이 적지 않았다. 응시자 부모로 보이는 중년 여성들은 시험 시간 내내 시험장 주변을 맴돌았다. 일부는 교문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가 하면, 심지어 "아이들이 시험에 집중하지 못할 수 있으니 작은 소음도 내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등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9급 공무원 필기시험장은 고3 대입수학능력시험장과 다를 바 없었다.

대학교 1∼2학년부터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대입수능을 치르자마자 휴학을 해가며 시험준비에 매달리는 공시족(公試族)이 늘어난 현상은 이제 보편적이다. 올해부터 정부가 고졸에게도 공직의 문을 넓히기 위해 9급 공무원 시험 선택과목에 고교 이수 과목인 사회와 과학, 수학을 포함하면서 응시생들의 연령이 더 낮아졌다.

이날 시험 감독을 맡은 한 공무원은 "어린 학생들에게 공무원이 갈수록 인기"라며 "오늘 시험장에도 스무 살 전후 응시자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1995년생들도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불필요한 대학 졸업장에 기대기보다 고교 공부만 가지고도 합격해 평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무원에 '스무 살 청춘'들이 부나비처럼 모여드는 것이다. 시험 전날 20세 딸과 함께 부산에서 왔다는 양모(49) 씨는 "딸이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며 한 학기 휴학계를 냈다"며 "아무래도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보니 일찍 시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심지어 서울 소재 한 명문대 물리학과를 휴학 중인 김모(23) 씨도 이날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김 씨는 "물리학과를 나오면 취업이 힘들고 애써 대기업에 들어가도 마흔쯤 되면 밀려나는 게 현실"이라며 "대학 친구들과 선배들 상당 수가 이 때문에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어 "학교를 다녀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붙을 때까지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가 스펙"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 "I will! 20대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로또 말고 공무원으로 인생역전 꿈꿔 보세요." 한 9급 공무원시험 대비 학원은 세태를 반영하듯 올해부터 '스무 살 합격반'을 개설, 이런 문구를 내걸고 마케팅에 나섰다.

이재열(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원래부터 9급 공무원은 고졸을 위한 단순한 업무 위주의 일자리"라며 "우리 사회에 4년제 대졸자들을 위한 일자리가 한정돼 있는데다 대학에서 현실 직업과는 전혀 무관한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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