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한 강남구 '깨끗' 제거한 서초구 '엉망'.. 강남대로 '쓰레기통 철학'

입력 2013. 8. 29. 05:13 수정 2013. 8. 29.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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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 마신 서유민(27)씨는 빈 캔을 버리기 위해 10분 넘게 쓰레기통을 찾아 헤맸다. 서씨는 "강남대로 인도를 100m가량 걸었지만 쓰레기통이 없어서 그냥 길에 버릴 뻔했다"고 말했다. 강남역 앞 횡단보도에 서 있던 이모(21·여)씨는 주변을 살피다 손에 들고 있던 일회용 컵을 화단 옆에 살짝 내려놨다. 그는 "쓰레기통은 없고 마침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기에 나도 버렸다"고 했다.

강남대로를 경계로 서쪽은 서초구, 동쪽은 강남구다. 서씨와 이씨는 강남대로 서쪽 인도, 즉 서초구에 있었다. 오후 1시30분쯤 '서초구 강남대로'의 강남역 10번 출구와 신논현역 6번 출구 사이 750m 구간에는 쓰레기 223점이 인도에 버려져 있었다. 명함보다 큰 것만 센 숫자다. 캔, 전단지, 플라스틱 용기 등 다양했고, '금연거리'가 무색하게 담배꽁초도 흔했다. 그러나 쓰레기통은 없었다.

비슷한 시각 길 건너 '강남구 강남대로'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강남대로 동쪽 인도를 걷던 신종성(24)씨는 거리에 놓인 쓰레기통을 세 걸음쯤 지나치다 돌아오더니 손에 들고 있던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빈 물병을 들고 걷다 길가의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은 송재진(32)씨는 "저쪽 벤치에 그냥 두고 가려 했는데 쓰레기통이 보여 가져 왔다"고 했다.

강남역 11번 출구부터 신논현역 5번 출구 사이 강남구 관할 인도에 떨어져 있던 쓰레기는 129점. 서초구 인도의 절반 수준이다. 강남구 구간에는 쓰레기통 6개가 설치돼 있었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정반대 '쓰레기 철학'을 행정에 적용하고 있다. 강남구 거리에 설치된 쓰레기통은 모두 869개로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다. 서초구 거리엔 지난해까지 쓰레기통이 단 한 개도 없었다. 민원이 잇따르자 올해 강남역 9번 출구(2개), 남부터미널역 5번 출구(1개), 교대역 1번 출구(2개), 우면동(1개) 등에 쓰레기통을 일부 설치했다.

강남구는 쓰레기통이 있어야 길바닥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줄어든다고 믿는 반면, 서초구는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어야 쓰레기 투기 행위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강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선 "여기에 버리세요"(강남구), 반대쪽에선 "버리지 마세요"(서초구) 행정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강남대로 양쪽을 둘러본 결과 강남구 정책이 더 효과적인 듯했다. 서초구 쪽에선 갈 곳 잃은 쓰레기는 엉뚱한 곳에 모였다. 배전함 위에는 비닐봉지에 담긴 쓰레기가 뒹굴었고 가게에서 길가에 내놓은 상자들은 모두 행인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했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강모(19·여)씨는 "물건 받고 빈 상자를 가게 앞에 잠시 두는데 금방 쓰레기가 쌓인다"고 했다.

서울의 쓰레기통 정책은 구마다 다르다. 동대문구(쓰레기통 253개)와 양천구(238개)가 강남구 노선을, 성동구(58개) 관악구(63개) 등은 서초구 노선을 택하고 있다.

자치구들이 쓰레기통 설치를 주저하는 건 비용 때문이다. 쓰레기통 1개 설치하는 데 40만원쯤 들고 관리비로 연간 약 200만원이 지출된다. 예산 문제로 환경미화원을 줄이는 상황이라 관리 인력도 부족해졌다. 거리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얌체 업소와 가정집도 문제다.

그러나 이런 쓰레기통 최소화 정책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란 비판을 받아 왔다. 서울시 인터넷 민원창구인 '천만상상 오아시스' 등에는 쓰레기통을 늘려 달라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다.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커피전문점 등에서 기부채납을 받아 쓰레기통을 설치하기로 했다. 예산은 쓰레기통에 게재하는 광고비로 충당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28일 "요즘은 인구 밀집지역에 최대한 많은 쓰레기통을 설치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밝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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