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945년 설립 서울 유명 보육원 '송죽원'서 지속적 아동학대 '충격'

손대선 2013. 5. 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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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대선·김지훈 기자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육시설(고아원)로 널리 알려진 '송죽원'에서 지난해 11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더욱이 이같은 아동학대가 과거부터 만연했다는 송죽원 안팎의 주장까지 제기돼 파문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아동학대가 확인된 송죽원은 독립운동가 고(故) 박현숙 여사가 일제 강점기 당시 이끌던 항일 비밀여성결사단체 '송죽회'의 이름을 따 1945년 10월 설립된 유서깊은 보육원이다. 현재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송죽원은 대통령 영부인과 안전행정부 장관 등 사회 지도층이 명절을 전후로 소외계층을 위문한다는 명분아래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한 시설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1996년 방한 당시 송죽원 원생들에게 2.5t 가량의 장난감을 선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보육원으로 알려졌던 곳이었다.

◇'간질 증세 여아' 단소로 무차별 폭행

28일 서울 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과 ㅇ초등학교 관계자 등에 따르면 20대 후반의 송죽원 보육교사 이모(여)씨는 지난해 11월4일 시설내 언니와 다퉜다는 이유로 A(당시 9세)양을 숙소동 302호 작은방으로 데려가 꾸중하다 A양이 이를 피하려 하자 교재용 단소 등으로 온몸을 때렸다.

A양은 평소 간질 증세를 보이는 등 건강에 이상징후를 보였지만 이씨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10여분 동안 폭행을 계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행 사실은 이튿날 수업을 받던 A양의 손등에 난 피멍을 수상히 여긴 ㅇ초등학교 교사에 의해 발견됐다.

교사 B씨는 "왼쪽 손등과 팔, 허벅지에도 멍이 있었다"며 "제가 보기에도 많이 맞았구나, 많이 아팠겠다고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학교측은 즉시 서울 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에 폭행 사실을 신고했다.

당시 조사를 맡았던 기관의 최모 팀장은 "조사 당시에는 아이가 어리다 보니까 정확하게 시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신빙성있게 얘기를 했다"며 "당시 아이는 '교회가는 날'이었다고 했다. 일요일로 판단됐다. 하지만 애가 점심을 밤에 먹었다고 하는 등 시기 특정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멍 자국은 확실하게 확인했다. 팔과 다리 등에 도구로 맞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센터 상담사들은 A양과의 1대1 면담을 통해 사안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송죽원측에 통보하는 한편, 관할 서대문경찰서에 보육교사 이씨를 폭행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송죽원, 5개월 동안 학대 교사 처리 '미적미적'

경찰 조사 결과 폭행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송죽원 측은 어찌된 일인지 이후 5개월 동안 학대 교사를 그대로 둔 채 A양만 수서에 있는 서울아동복지센터로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학대 교사는 지난 3월 법원으로부터 벌금형 300만원을 선고 받고 보육교사 자격을 박탈당한 뒤에야 퇴사했다.

관리·감독 기관인 서대문구도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서대문구는 송죽원 직원들에게 2회에 걸쳐 폭력예방 교육을 받도록 조치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 관계자는 "규칙대로라면 이 시설에 '6개월 이내의 폐쇄 조치'를 내려야 하지만 그럴 경우 아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폭행 사건이 발생한지 7개월이 지난 현재 A양은 서초구의 한 그룹홈에 머물며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측은 "원래 심리치료가 빨리 안 끝난다. 정신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차가 크다"며 "학대피해 아동의 경우에는 특히 쇼크가 크기 때문에 기본 1년은 잡아야 한다. 평균 1년 이상은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묻혀져가던 이번 아동폭행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1999년 총무로 시작해 2010년까지 원장으로 재직하다 회계 부정 등에 관한 의혹으로 계약연장이 무산됐던 박모(51·여)씨가 올 1월 재부임을 추진하자 보육원 안팎에서 얘기가 다시 나돌기 시작했다.

박 원장은 3월께 뒤늦게 폭행사실은 확인했다면서도 "그동안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해직 사유가 분명함에도 교사 이씨가 그대로 송죽원에 근무한 이유에 대해 "당시 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보고체계가 제대로 가동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박 원장은 오히려 가해 교사인 이씨의 입장을 두둔했다. 그는 "내가 그 아이를 안다. 고집이 세고, 간질이 있다. 어른들을 상당히 약을 많이 올리는, 성격적으로 그렇다. 지능이 떨어지는, 지진아다"며 폭행의 책임 일부를 A양에게 돌렸다.

그러면서 "벌금 300만원은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며 "이씨는 현재 연락두절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 폭행 사건은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이에 앞선 지난해 6월 송죽원에서 보육교사의 폭행 사건이 발생했으나 당시에도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형식적인 처벌에 그친 게 이번 사태까지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당시 가해자였던 30대 중반의 여성 보육교사는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언어폭력을 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송죽원 측에 내려진 조치는 보육교사를 대상으로 한 '학대 예방교육'과 '훈육 방법 교육'이 전부였다. 가해 교사는 송죽원에서 퇴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있는 애들 다 걸레…처녀막 검사시켜야"

박 원장은 폭행이 보육교사가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해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단정짓고 있다.

하지만 뉴시스 취재 결과 이전부터 아동학대와 폭언 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꾸준히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송죽원 출신으로 송죽원 보육교사까지 지냈다는 40대 여성 D씨와 송죽원 출신의 또 다른 30대 여성 E씨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10여년 전 당시 한 여성 간부가 사춘기 원생들에 했던 말을 털어놨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그 여성 간부는 "여기 있는 애들은 다 걸레다. XX에 창녀의 피가 흐른다. 산부인과 가서 검사시켜야 한다. 처녀막 검사를 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E씨는 "9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며 "상당히 모욕적이었지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었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송죽원 출신 여성 D씨는 "보육교사와 고3 원생이 머리채를 잡으며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며 "이 문제로 보육교사들이 이사회 앞에 무릎꿇고 1~2시간 동안 빌었다"고 전했다.

당시 총무로 재직 중이었던 박 원장은 "중학교에서도 감당이 안 된 아이였다. 아이가 보육교사를 폭행했던 것이다"고 반박했다.

이들에게 기억되는 1990년대 후반의 송죽원은 원장 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원장과 교사, 원생들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E씨는 "모든 게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당시를 기억했다.

이후에도 원내 알력 속에 원장이 교체되는 일이 계속됐다. 결국 2001년에 원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원생들은 학대 재발방지와 당시 이사장 유씨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원장실에 계란까지 투척했던 사실도 취재를 통해 새롭게 확인됐다.

송죽원 출신 E씨는 "그 사건 이후로 졸업생의 방문을 극도로 꺼리는 것 같았다"며 "행사 등에 후원자 자격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졸업생이라고 하니 싫어하더라. 2001년 있었던 데모와 관련해 박 원장이 '졸업생들이 애들을 선동해서 그렇게 됐다'고 보고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들 안 잔다고 국에 수면제까지 타"

송죽원측의 아동학대는 2000년초에도 문제가 됐다. 당시 일부 직원들은 아이들이 잠을 안 잔다는 이유로 저녁 식사로 나온 국에 수면제를 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직원 6명이 송죽원에서 쫓겨났다.

서울시의원을 지낸 F씨는 "저녁에 늦게까지 안 잔다고 국에다가 수면제를 타서 먹이고, 애들을 때려 온몸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며 "그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학대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죽원 아동학대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 없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송죽원 출신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관리·감독기관의 소극적 대응과 송죽원 운영진의 집요한 협박과 회유가 맞물린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원장과 직원 등 운영주체들이 수시로 교체되는 과정서 이전 아동학대사건은 그대로 묻히는 일이 빈번했다. 송죽원측은 과거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변변한 기록조차 보관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 취재를 시작할 때와 달리 폭행사건에 대한 여러 사실이 확인되고서야 서대문구 측은 지난해 11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 외에 또 다른 폭행사건이 발생했던 것을 뒤늦게 시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다고 호소했다. 아이들이 마땅히 옮겨갈 거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에 발생한 폭행사건에 5개월 앞선 지난해 6월에도 보육교사의 원생 폭행 사건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그 이전의 사건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해 조사 과정에서 송죽원과 관련해 보관하고 있는 전자문서 등을 살펴보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송죽원 관계자는 "박 원장이 자기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집요하게 협박하고 있다"며 "소송이 두려워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D씨는 "여기(송죽원)는 더이상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며 "아이를 사랑으로 봐줄 수 있는 시스템이 안 된다.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원장 "표적조사로 인한 모함, 맹세코 아동학대 없었다"

폭행과 횡령 등 의혹의 중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박 원장은 이 모든 것이 전 원장인 김모씨와의 알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 원장은 12년 동안 원장과 총무국장 등 주요보직을 맡았다가 지난 2009년 회계부정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사회로부터 계약연장이 거부돼 사실상 퇴출됐다가 올해초 원장자리에 복귀했다.

그는 "김모 전 원장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 근무하던 당시 2000년도에도 조사를 왔었다. (폭행은)전혀 없었다. 발뺌하자는 게 아니라. 다들 자기 주장을 하는 거니까. 아이들에 대해 학대를 한 적도 없고, 그런 일도 없고. 김 전 원장의 말을 들으면 많이 헷갈릴 것이다. 맹세코 저는 아동학대에 관련된 일은 없다"고 눈물로 읍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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