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남편의 호소 "날 죽이려한 아내 용서해주세요"

이성희 기자 2013. 5. 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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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미수 혐의 70대 할머니 국민참여재판

"내가 다 잘못했습니다. 판사님 저에게 벌을 내리시면 달게 받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많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남편한테 잘하겠습니다."

"판사님, 제 처가 저를 죽이려고 했다는데 그 말은 개의치 마시고 제 처를 용서해주십시오. 우리 부부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13일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된 서울남부지법 406호 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이모 할머니(71)는 재판 내내 불안해 보였다. 눈을 감은 채 몸을 앞뒤로 흔들었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칠 때마다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 남편 3년 전부터 치매 앓아의처증 생겨 때리고 욕설… 아내가 변압기로 내려쳐

그가 법정에 선 것은 살인미수 혐의 때문이다. 살해하려 했던 대상은 50여년을 함께 산 남편(81). 그의 남편은 3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왔다.

사건은 지난해 11월10일 일어났다. 할머니는 평소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봤지만, 남편은 치매를 앓으면서 그의 불륜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화장을 할 때도, 목욕을 할 때도, 병원을 다녀올 때도 "어떤 남자를 만나고 돌아다니냐"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때리기도 했다.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도 폭언을 퍼부었다. 이날도 할머니는 하루 종일 괴롭힘을 당했다.

이날 밤 11시20분쯤. 할머니는 면장갑을 끼고 신발장에서 3㎏이 넘는 철제 변압기를 꺼냈다. 그리고 안방에서 자고 있던 남편의 이마를 수차례 내리쳤다. 그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 "강도가 침입해 아버지를 폭행했다"고 했다. 피가 묻은 변압기는 화장실에서 닦은 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신발장 안에 다시 넣었다.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청테이프도 준비했다. 그러나 경찰은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다며 할머니를 의심했다. 할머니는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남편은 6주간의 병원치료를 받은 뒤 현재 시립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재판의 쟁점은 할머니가 남편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는지, 범행 당시 그가 심신미약 상태였는지 등이었다.

검사는 "범행도구와 피해부위로 봤을 때 피고인은 피해자의 사망 위험성을 예측할 수 있었다"며 "미필적으로라도 살해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린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달라"며 할머니의 범행에 살해 의도가 없었음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젊었을 때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오면서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할머니가 우발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냈다. 남편도 할머니를 용서해달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검사는 "피고인이 남편의 치매 증세와 의처증으로 고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명권을 침해하려 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구형했다. 배심원단은 2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할머니의 범행에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다수결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50여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살해하려 한 것은 쉽게 합리화될 수 없는 반사회적 행위"라면서도 할머니가 헌신적으로 병수발을 해왔고 고령인 데다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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