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훈계가 두려운 사회, 왜 아이들은 훈계를 싫어하는가

임태우 기자 2013. 5. 14. 09: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려 태조는 나라를 다스리는 초석을 다지기 위해 '훈요 10조'를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훈요10조는 어른이 훈계하면 무릎을 꿇고 들어야 하고, 왕이 훈계할 때 왕세자는 두 번 절한 뒤 경청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옛날엔 훈계를 받아들이기 위한 엄격한 격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 훈계를 귀담아듣긴커녕 부당한 참견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훈계를 듣다가 화가 나서 다짜고짜 어른을 때리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때문에 훈계하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서글픈 농담까지 나돌 정도입니다. 왜 아이들은 훈계를 이다지도 싫어하는 걸까요?

지난 달 어둑해진 어느 밤, 공원에서 교복을 입고 담배 피우는 10대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담배를 피우지 말라거나 침 뱉지 말라고 훈계하는 어른들을 '꼰대'라고 여기며 질색했습니다. 흥분한 목소리로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훈계가 한 마디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훈계하는 어른을 못마땅해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부모나 교사도 아니고, 자신이랑 전혀 상관 없는 어른이 훈계하는 게 싫다고 답했습니다. 어른들이 자신에게 훈계할 권리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훈계에 대한 어른과 아이의 생각은 참 다릅니다. 어른들의 사고 방식은 공동체주의적입니다. 거리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아들이나 손자 같은 겁니다. 내 식구 같으니까 당연히 존댓말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 청소년들은 개인주의적입니다. 거리의 어른들은 그저 '타인'에 불과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개개인은 서로 다른 인격적 존재이며, 타인에게서 배려와 존중을 받길 원합니다.

때문에 어른들의 훈계는 자칫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발심도 커집니다. 이때 폭력 성향을 참지 못 하는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두르게 됩니다. 어른들은 이런 10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훈계한다고 폭력까지 휘두르는 일은 분명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왜 훈계에 폭력적인 반응을 서슴없이 보이는지, 달라진 10대의 생각에 귀기울여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훈요 10조를 지탱하던 어른의 권위가 사라졌고, 훈계가 통하던 시대가 지났습니다. 언어 가운데 가장 강한 형태가 명령이고, 그 다음이 훈계입니다. 훈계는 높고 낮은 위계 질서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겁니다. 지금은 그런 위계질서가 사라졌고, 훈계가 가능한 시대도 물 건너갔습니다.

반면, 조언이나 충고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뤄집니다. 나이가 어린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해야 이성적인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때문에 아이들을 무작정 혼내는 게 아니라, 그런 짓을 하면 손해라고 조언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임태우 기자 eigh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