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교묘해진 다단계 수렁..'동아줄'은 없다

2013. 5. 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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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김지수 기자]

학자금과 생활비, 취업난의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이들의 절박함을 노리는 다단계 영업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맞물려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2년전 서울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에서 합숙까지 하던 이른바 '거마대 영업' 소탕 이후에도 청년들을 노린 다단계 영업망이 풍선처럼 전국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는 것.

◈"본인 선택 아니냐"…교묘해진 수법, 늘어난 피해층

달라진 게 있다면 법망을 피해나갈 수 있도록 수법이 보다 교묘해졌고, 먹잇감도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다단계 업체들은 일단 '본인 의사'임을 한껏 강조한다. 끈질긴 회유와 강요에 따른 결과를 '개인 선택'으로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인 이영진(가명·29)씨의 경우 지난달 7일 서울 시내 다단계 업체인 A사에 들렀다가 하룻밤새 반강제로 대출 빚더미에 올랐다 < cbs지난 8일자 관련 기사 참조 > .

안마기구와 화장품 등 판매물품 600만 원어치를 떠안은 대가였는데, 은행이 문을 닫는 주말을 틈타 A사가 알선해준 대부업체의 연간이자는 30%에 육박한다.

사들인 물품을 곧바로 개봉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추후 환불을 막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본인이 원해서 한 것"이라며 "우리는 싫으면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얘기한다"고 했다. "강요당했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문제일 뿐"이란 것이다.

◈진술만으론 입증 어려워…문턱 안 넘는 게 '최선'

실제로 현행 '방문 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는 본인 의사에 반하는 교육이나 합숙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본인 의사에 반하는지 여부를 입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단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다단계 업체들은 '본인이 원해서 서명했다'는 입장인 반면, 피해자들은 '강요에 의해서 했다'고 주장한다"며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에 녹취나 증빙 자료 없이는 피해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단 다단계 영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세뇌당하거나 반강제로라도 동의하게 돼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기 때문이다.

이 씨가 빠졌던 다단계 업체에서 두 달째 일하고 있는 B(여·22) 씨는 "강요당하지 않았다.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된다"며 "다들 좋아서 하는 거고 출퇴근도 자유로워 일(본업) 끝나고 와도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본인들이 빠진 만큼 증거가 없다면 근본 대책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단계업체-대부업체 '유착 의혹'…적발은 사실상 불가능

다단계 업체 직원들은 유독 휴일을 노린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은행이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

이들은 대부업체를 통해 대출을 알선한 뒤 선입금을 받게 하고, 이를 다시 제2금융권의 대출로 메우게 만든다. '대출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자금 대출' 또는 '개인 신용 대출' 명의로 신청이 접수되므로, 다단계 업체와 대부업체의 유착 관계를 규명하긴 쉽지 않다.

지난 2011년 '거마대' 사건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그 때도 유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지만 물증을 찾지 못했다"며 "여전히 적발 사례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다단계 업체가 대부업체나 '대출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제공하는지 여부도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부업체에 수수료를 주는 건 대출을 승인하는 은행권이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출 알선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라며 "본인들 스스로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증거 없어 못하나, 의지 없어 못하나

하지만 정부 당국의 이러한 인식에 다단계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친구를 믿고 갔다가 감시 속에 대출계약서에 서명하는데, 무슨 정신으로 녹취를 하고 증거를 확보하겠느냐"는 것이다.

다단계 업체에 반대하는 한 온라인 모임의 운영자 C(29) 씨는 "다단계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며 "증거가 없다고 수사를 안 하는 건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통장을 꺼내 월급 내역을 보여주거나, '몇 달뒤면 수백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애기하는 것만으로도 엄연히 불법인 허위 과장이나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C 씨는 "당국이 다단계 업체 직급자들의 수입 수준만 조사해 공개해도 '고수익 보장'이란 감언이설에 당하는 피해자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민생경제과의 한 관계자도 "젊은층을 상대로 꾸준히 홍보 활동을 벌여 다단계 판매의 현실을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다단계 관련 대출의 본인 인증 절차를 강화하거나 △경제적 독립 이전의 20대는 대출시 보호자 동의를 받게 하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논의만 무성한 이 시간에도 우리 사회의 '불쌍한 청춘'들은 고수익으로 유혹하는 다단계 문턱에서 기웃대고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so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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