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주역은 '국립묘지' 주고, 독립유공자는 내치는 정부
지난 9일 밤 최고령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향년 105세)의 빈소인 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303호. 박근혜 대통령과 현직 국회의원들이 보낸 화환이 빈소 입구를 하얗게 장식했지만 빈소를 직접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텅 빈 빈소보다 유족들을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나라의 처사'였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구 선생의 국립현충원 묘지 안장을 거부한다'고 통보했다. 나라를 구하는 일에 젊음을 바친 구 선생의 시신은 나라의 '거부'로 갈 곳을 잃었다(경향신문 4월10일자 12면 보도).
구 선생의 시신은 10일 경기 고양시 대자동 서울시립승화원 화장터에서 태워졌다. 유골은 먼저 세상을 떠난 구 선생의 부인과 함께 한 납골당에 모셔졌다. 구 선생의 큰손자 구영일씨(60)는 "평생 독립운동을 하며 살아온 아버지에게 국가는 마지막 머물 곳조차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적이 있는 독립유공자들을 대상으로 국립묘지 안장 심의를 한다.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하는지를 심의하는 것이다. 보훈처는 지난 9일 서면 심의를 거쳐 구 선생의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했다. 구 선생이 1972년 사문서 위조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1973년에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유족들은 "심의 기준 적용이 자의적"이라고 주장한다. 전두환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씨가 2011년 사망하자 보훈처는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결정했다. 안씨는 1997년 뇌물수수 및 방조죄로 2년6월의 실형을 살았다. 당시 보훈처는 "실형을 살았다고 안장이 불허되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고 허가되는 것이 아니라 심의위원회가 대상자의 범죄 유형, 형량,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결한다"며 "안 전 실장은 월남전에 참전해 훈장도 받았고 김신조 청와대 기습사건 때의 공로도 인정받은 데다, 뇌물수수도 한 차례에 그쳐 허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구 선생에 대한 안장 거부 이유로 "제조회사 대표로 재직하며 탈세할 목적으로 과세를 누락시켜 법인세 등을 포탈했고, 사문서 위조죄는 5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되어 중하게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이에 대해 "(구 선생이) 사업하는 아들에게 도장을 빌려준 것 때문에 사문서 위조범이 됐고, 법인세 포탈은 돈이 없어 이루어진 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일제강점기에 3번이나 생사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한 구 선생은 안되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쿠데타의 핵심인물 안현태 경호실장은 현충원에 묻혔다"면서 "국가보훈처가 해방 후 구 선생이 범한 잘못으로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한 것은 일종의 이중잣대이고 유족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심의 절차도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구 선생의 막내딸 구혜란씨(57)는 "한국 독립운동가 정보시스템에서 공적조서를 보면 아버지의 독립운동기간이 2년으로 나와 있다"며 "아버지가 1928년부터 20년 이상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것은 사료로 증명되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편적인 서면 내용을 가지고 단 몇 시간 만에 위원들이 만나지도 않고 심사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1908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구 선생은 1928년 항일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엔 진보정당인 통일사회당의 재정위원장을 맡았다. 통일사회당은 당시 장면 정부의 '반공임시특별법'과 '데모규제법' 제정을 반대하면서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구 선생은 이 때문에 5·16 쿠데타로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뒤 혁명검찰부에 의해 구속됐다. 북한 활동에 동조해 반국가행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구 선생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정상을 참작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후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구 선생은 이후 통일사회당 사건의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박순봉·조미덥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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