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박아" 대학 신입생 군기 잡는 공포의 MT

손현성기자 2013. 3. 29.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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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사립 예술대 '고난의 방' '체조의 방' 등선배들이 테마 교육지도교수도 참석했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학교 측 "처음 듣는 얘기"

"담배 연기 가득한 방에 '콜록콜록' 기침하며 들어서자마자 선배들의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수도권 사립예술대인 D 대학 신입생 K(19)씨는 지난 22일 밤 전북 무주군 한 콘도에서 벌어진 학과 MT에서 공포에 떨었다. 그 방에선 재학생과 졸업생 선배 20여명이 일제히 담배를 피우며 새내기 40여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6명씩 한 개의 조로 구성된 새내기들이 돌아가며 그 방에 들어가면 다짜고짜 온갖 폭언이 쏟아졌다.

신입생들은 입학하며 배운 대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선배님"을 복창했다. 한 명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표정 관리가 안 되면 일명 '바닥에 머리 박기'나 '엎드려 뻗쳐'등 가혹 행위가 뒤따랐다.

K씨는 "선배들이 이 방을 '고난의 방'이라 불렀다"며 "심지어 한 졸업생 선배는 '똑바로 해라. 내가 일어서면 넌 죽는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내기들은 수십 분간 선배들의 성이 풀릴 때까지 담배 연기를 마시며 군기교육을 받았다. 선배가 말하는 동안 흐트러진 앞머리나 옆머리를 만지면 고성이 쏟아졌다.

과 대표와 학회장 등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MT 프로그램의 이름은 '천로역정(존 버니언이 1678년 출판한 종교소설에서 따 온 이름)'. 고난의 방을 포함해 6개의 방 별로 각각 테마를 정해 소위 '군기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다른 신입생 L(19)씨는 "'폭탄의 방'에선 선배들을 웃기지 못하면 동기와 어깨동무를 한 채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야 했고, '체조의 방'에선 팔굽혀펴기를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한 신입생은 "같은 장소로 MT를 온 다른 과의 한 여학생은 기합 받다 실신해 다음날부터 학교에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선배들은 남자 신입생들을 한 명씩 불러 세워 속칭 '노예팅(가장 고액을 부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게임)'도 진행했다. 이들 선배들은 여학생들에게 남자 신입생들을 사도록 눈치를 줬다. L씨는 "선배들이 노예팅으로 적어도 50여만원을 걷어 학회비 명목으로 가져갔다"며 "입학하며 낸 학회비 55만원도 모자라 그 돈도 걷어간 뒤 사용내역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신입생들은 "이날 MT에는 지도교수님도 참석했지만 우리는 선배들에게 시달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MT의 공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과 대표와 학회장 등 선배들은 밤늦게 신입생 몇 명을 으슥한 학교 뒷골목 주차장이나 야외공연장으로 끌고 가 1시간여 동안 폭언을 쏟고 무릎을 꿇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이 학교에선 사관학교 생도 못지 않은 지나친 신입생 예절 교육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한 신입생은 "복도에서 선배를 그냥 지나쳐 먼저 갈 수 없다"며 "늘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선배님'하고 물은 뒤 대답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K씨는 "내가 꿈꾸던 캠퍼스가 이렇게 무섭다는 게 슬프고 밤에 언제 또 불려나갈지 몰라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반면 학교측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MT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어 당황스럽다"며 "학과 사무실 별로 확인해 사실 관계를 파악해 보겠다"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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