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 월 50만원..하루하루가 힘든 독립운동가 유족

이은주 입력 2012. 8. 15. 09:08 수정 2012. 8. 15. 09: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춘천=뉴시스】이은주 기자 = 강원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에 사는 장원순(76·여)씨, 그녀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녀는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돼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 유가족에게 연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법에 정해진 기준에 의해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광복회강원도지부에 따르면 현재 강원도 내 독립운동가 유공자 유족은 150여명, 이 중 30여명 이상이 제대로 보상혜택을 받지 못한 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장원순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독립운동가의 손녀인 그녀는 현재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14일 취재진이 찾아가 봤다.

◇국가 보상금 매달 15만원

남편 정태윤(78)씨와 둘이 사는 장원순씨의 집 내부는 어두웠고 제대로 된 가구가 배치돼 있지 않았다. 널브러진 감자와 당근들, 그리고 거실에 놓인 매트리스 하나. 집에서 멀쩡한 가구는 텔레비전 하나였다.

"국가보훈청에서 보상금으로 매달 15만원 나오고 춘천지청보훈청에서 35만원이 나와요, 총 5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그녀는 통장을 보여주며 취재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현재 유공자에게 주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법에서 정한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해방 전날에 돌아가신 독립운동가에 대해선 손자·손녀까지 연금이 나온데요, 그리고 해방 후에 돌아가신 독립운동가에 대해선 직계자손까지만 연금이 지급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제 할아버지는 해방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누군가 사망신고를 해방 이후에 했놨더라고. 그 당시 어렵고 힘들어 정신없던 시절이라 호적 정리 제대로 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늦게 사망신고해 그녀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공자라고 나오는 보상금도 현재 노인 연금이 따로 나온다는 이유로 액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데…

"어머니 얘기를 들으면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재산을 모두 잃었다고 했어요, 또 그 당시 할아버지는 일본군에 쫓기는 신세였고 어머니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셨고, 그런 악순환으로 이렇게 저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조심스레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한 것에 대해 원망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원망이라…그나마 유공자로 인정받아 3·1절에 유공자로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네요" 라며 말하는 장원순씨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일본 순사와 싸우고, 전기고문도 당한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일본 순사와 싸우다가 옥살이를 했다고 말했어요, 3년의 옥살이를 하면서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을 당하고 나와 또 독립운동하시다가 또 고문당하고…그러다가 만주로 가시기도 하시고"

그녀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딱 3번밖에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때 당시 7살이 안 된 나이로 상황을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온갖 수난을 겪고 돌아온 할아버지는 불구상태셨어요, 머리를 심하게 다쳐 기본적인 계산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죠"

◇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돼 있지만 유족 혜택은 못 받는 현실

장원순씨와 그녀의 남편은 조그마한 밭은 가꾸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5명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다들 독립해 각자 살기 어려워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

게다가 얼마 전 남편이 손을 다쳐 농사마저 짓는 게 힘들어 졌다. 마을 주민과 광복회 등에서 쌀을 주는 등 여러 도움을 주지만 수입이라고는 정부에서 주는 50만원이 전부다.

그녀는 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돼 있지만 유족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놓여 있다. 그녀는 1995년 받은 유공자 표창장을 보였다. 또 가평에는 할아버지의 합동비도 세워져 있다고 한다.

"돌아간 날이 중요한가요, 해방 후에 돌아가신 분이 해방 전에 돌아가신 분보다 독립운동을 덜 했다는 근거는 어디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라며 그녀는 씁쓸히 말했다.

그녀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연하지, 내가 매년 광복절 행사는 꼭 갑니다. 한 번도 빠진 적 없어요"라며 미소를 보였다.

lej@newsis.com

<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