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감도는 와이키키 해변인데 천연습지가 귀신 나올 듯한 잡초공원으로

2012. 8.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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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낙동강변을 가다

강수욕장엔 푸른 잡초뿐이었다

어떤 식물은 허리까지 차올랐다

피서철이었지만 1㎞ 모래밭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10분에 한번 자전거만 지나갔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북 칠곡군 남율리의 낙동강변. 안내판의 조감도를 보고는 미국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인 줄 알았다. 두드림공원 강수욕장. 리버 파라솔이 세워진 모래밭으로 강물이 파도치며 들어오고 사람들이 헤엄친다.

안내판은 취재진을 드넓은 모래밭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강수욕장을 뒤덮고 있는 것은 푸른 잡초였다. 어떤 식물은 괴기하게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 피서철이었지만 1㎞에 이르는 긴 모래밭에는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모래밭의 후경을 이루는 둔치 자전거도로로 10분에 한대꼴로 자전거가 달려갈 뿐이었다.

바닥엔 이끼가 찼고, 물은 탁했다바지를 걷고 들어가면미끄러져 넘어질 것만 같았다불과 3년 전만 해도중·상류에선 수영을 했는데…

안내판 조감도만 보면 '와이키키 해변'

하류 쪽으로 약 1㎞ 정도 내려가니 폐준설장비가 강변에 방치돼 있었다. 길이 10m를 넘는 폐기계에서는 윤활유 통이 굴러다녔다. 이 건설기계가 남율리 강변의 모래밭을 먹어치웠다. 4대강 사업의 흔적이다.

이곳은 낙동강 사업 25공구 포남지구다. 다른 4대강 사업구간과 마찬가지로 최소 수심 4~6m에 맞춰 강바닥을 파고 둔치엔 잔디밭과 자전거도로를 깔았다. 원래 남율리 강변에는 천연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다. 한여름 장마로 물이 들면 쓸려나갔다가 가을 겨울엔 쌓이길 반복했다. 물이 드나들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줬던 모래밭은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지고 대신 강수욕장용 모래밭이 인위적으로 돋우어졌다. 이곳에서 구미시 도심까지 약 5㎞ 떨어져 있다. 주변은 농경지이고 멀리 아파트 몇 채가 보일 뿐이다. 왜 외딴곳에 이렇게 거대한 공원을 만들었을까?

"국토해양부가 만들어줬지만 사실 우리도 갑갑해요. 어떻게 강수욕장을 관리할지, 비용은 얼마가 들지 가늠이 안 되거든요. 중앙부처에서 유지비용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면 우리로선 답이 안 나오죠. 지금 상태로는 유지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강수욕장 같은 4대강 친수시설은 국토해양부가 만들어주지만, 유지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한다. 칠곡군 관계자는 아직 준공 허가가 나지 않아 국토해양부에서 관리권을 인수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모래밭에 핀 잡초를 수시로 뽑는다 해도 남율리 강변에 몸을 담글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강은 거의 흐르지 않았다. 강바닥엔 이끼가 찼고 물은 탁했다. 바지를 걷고 들어가면 미끄러져 넘어질 것만 같았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낙동강 중·상류에선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사계절 모래의 유동 중 강바닥이 얕아질 때면 들어가 수영을 했다. 경북 구미 해평습지도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생태 블로거인 최병성 목사는 2009년 해평 강가 사진을 보여주며 "수영을 할 수 없게 된 건 4대강 사업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의 개진강변공원은 아예 버려져 있었다. 보도블록 사이로 사람 키를 넘는 잡초가 자랐다. 공원에 들어섰는데, 산책로는 어느 순간 정글에 묻힌 것처럼 사라졌다. 잡초의 무리들은 군데군데 심어놓은 조경수도 삼켰다. 저물녘 자전거를 타고 온 한 주민이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방치하면 쓰레기장밖에 더 되겠어요? 자전거 타고 오다 보면 공원이라는 것들이 다 그래요."

낙동강 강변공원 95곳, 여의도의 21배 면적

<한겨레>와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지난달 29~30일 낙동강 강변공원을 점검한 결과, 상당수 공원이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8개 보 주변 지역은 비교적 잘 정돈됐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게 돼 있는 보 이외의 지역은 방치 정도가 심했다. 4대강 강변공원은 모두 234곳으로, 낙동강에만 95곳이 있다. 낙동강만 따져도 여의도의 21배에 이르는 61.46㎢이다.

이런 관리의 난맥상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4대강 사업이 '선 공사 후 계획' 형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접은 직후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다 보니, 세밀한 사전 수요 조사와 미래 유지관리비용 등의 평가가 없었던 것이다. '만들고 보자'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면서, 자연습지가 파괴되고 불필요한 공원 건설이 남발됐다.

환경부가 4대강 사업으로 새로 조성한 대체습지 147곳 가운데 하나라고 밝힌 구미시 도개면의 신곡생태연못도 마찬가지였다. 엉뚱하게도 지천인 신곡촌과 본류인 낙동강 합류부에 나무를 심고 인공섬이 조성되는 등 '공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황인철 녹색연합 4대강현장팀장은 "이곳은 원래 지천과 본류가 만나 자연습지를 이뤘던 곳"이라며 "습지를 파헤쳐 인공섬을 만들고선 대체습지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강변공원 등 이른바 '친수시설' 인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유지관리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다고 하고, 지자체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맞선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드는 걸까? 정부는 4대강 사업의 모범을 한강 서울 구간이라고 말해왔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김운규 총무부장의 말이다.

"매년 여름 큰비가 오면 한강 둔치가 다 잠깁니다. 강물이 빠지면 곧바로 물 뿌려서 청소하고, 고사한 나무들은 다시 심고, 유실된 자전거도로 복구하고, 침수된 화장실 고치고… 한바탕 작업을 해야 하죠. 올해 여름비에도 탄천 도로가 유실됐어요. 이렇게 한해 한강시민공원의 유지관리비가 500억원이 듭니다. 인건비도 250억~300억원이 들어요."

한강시민공원의 면적은 40㎢. 1㎢당 최대 20억원 정도가 드는 셈이다. 한강에 비춰 추산해보면, 낙동강 강변공원의 유지관리비는 1230억원(61.46㎢×20억원)이 나온다. 지난 3월 경상남도도 낙동강 둔치 시설관리비가 1200억원을 넘을 거라고 추정한 바 있다. 반면 국토해양부는 올해 낙동강 유지관리비를 390억원 정도로 보고, 절반인 195억원을 각 지자체에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 한강시민공원의 시설물이 많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둘 사이의 추정액은 세 배 차이가 난다. 국토해양부는 "자전거길, 수목, 둔치 등 시설별로 타당성 조사에 사용되는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왜 지었는가'라는 거대한 의문

칠곡군이나 고령군 같은 소규모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낮은데다 한해 예산도 2000억원을 갓 넘는다. 유지관리비의 50%를 국고에서 지원받긴 하지만, 지자체로선 없던 비용이 새로 발생하는 것이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황인철 팀장이 말했다.

"문제는 오히려 비용 투입의 적절성이지요. 1000만명이 사는 서울 한강시민공원이야 이용도가 높기 때문에 장마 때마다 보수해서 써도 된다고 하지만, 대도시라고 해봐야 구미, 대구, 부산이 전부에다 주변 대부분이 농경지인 낙동강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강변공원을 지어도 될까요? 이용자는 적은데 막대한 관리비용이 드는, 전형적인 예산 낭비 사업으로 전락했습니다."

왜 이런 곳에 거대한 강수욕장을 지었는지, 강변공원을 지었는지 의문이었다. 4대강 강변공원은 근린공원 성격이 짙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 올 만한 사람들도 적다. 즉 투자비용 대비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비를 거둬들이기 위해 4대강변이 개발 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구미시는 지난달 낙동강변에 골프장과 수상비행장을 재추진하기로 발표했다. 여론의 압력으로 꼬리를 내렸던 낙동강 카지노 유람선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나온다.

낙동강 너머로 해가 저물었다. 개진강변공원에 1시간 가까이 머물렀는데, 여기서 본 사람은 고작 세명이었다. 제멋대로 피어난 잡초 때문에 더욱 으스스해졌다.

낙동강/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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