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이젠 그만] 생명 던졌던 소녀.. 왕따의 고통 펜으로 말하다

대구 2012. 6. 3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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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시달리다 두 달 전 자살시도.. 대구 여중생 필담 인터뷰

"○○이는 뒤에 앉아있었는데 의자를 발로 찼다. 씨×년, 거지새끼, 병×이라고 욕했다. △△이는 말을 안 한다고 (나한테) 소리쳤다. 시험점수를 보더니 공부를 못한다고 비웃었다."

29일 대구 중구 경북대 병원 병실. 까까머리인 A양(14·중3)이 연습장에 검은색 볼펜으로 쓰기 시작했다. A양의 뒤통수와 턱밑엔 수십 바늘 봉합자국이 벌겋게 남아있다. 오른쪽 허벅지 뼈에는 철심이 박혀 있다. 성대 신경을 다쳤고, 목엔 호흡을 돕기 위한 기관절개관도 꽂혀 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한다. A양은 현재 종이에 글을 적는 방법으로만 주변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 연습장은 엄마 배모(44)씨와 얘기할 때 주로 쓰는 것이다.

A양은 지난 4월 26일 학교 또래들의 괴롭힘과 왕따를 견디다 못해 유서를 써놓고 대구시 북구의 한 아파트 8층에서 뛰어내렸다. 기적적으로 화단 나뭇가지에 걸려 생명을 건졌지만 머리가 찢어지고 턱과 다리 등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A양은 대수술을 받은 후 지난달 중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병상의 A양에게 "어떤 괴롭힘을 당했니" 하고 물으니 생각하기 싫은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너 같은 학교 폭력 피해자가 더는 없어야 한다. 우리 힘들더라도 이야기하자"며 달래자 다시 펜을 들었다.

A양이 경찰에 써서 제출한 자술서에 따르면 A양은 중학교 진학 후 3년 내내 친구들의 학교 폭력에 시달려 왔다. 같은 학원에 다녔던 남녀 학생 몇몇도 팔과 다리를 막대기로 때리거나, 머리에 지우개를 던지며 놀렸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A양은 "친구들이 (같은 학교에 다녔던) 언니 욕한 거"라고 적었다. "(부모님) 들으면 속상해할까 봐 (알리지 못했다). (학교 선생님이) 상담을 안 해줘서 속상하다"고 적었다. A양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경어체 대신 반말로 적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았다. 곁에 있던 배씨가 딸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다친 게 엄마는 더 속상해"라면서 울먹였다.

A양은 "반 친구 몇몇은 나를 왕따시키며 기분 나쁘게 웃거나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기도 했다. 한 친구는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가리키며 쟤는 말도 못하고 친구도 없다며 놀려댔다"고도 썼다. 엄마는 "2학년 때까지 같은 반이던 친구가 있었어요. 3학년 때 전학을 가버렸죠. 그 후로 아이가 아무한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 것 같아요"라고 했다.

사고 후 A양 방에서 발견된 유서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 무리에게 왕따를 당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슬금슬금 피하기만 할 뿐 놀아주지 않았다.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나를 보며 시비를 걸었다. 중3이 된 지금도 그 아이들이 한 말과 행동이 머릿속에 떠올라 힘들게 한다'고 적혀 있었다. A양 사건의 수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유서 등에 거론된 학생들과 주변 학생 등 10여명을 불러 조사했지만 모두 '때리거나 괴롭힌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A양의 몸 상태를 지켜본 뒤 직접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교 역시 "수사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 A양은 악몽을 자주 꾼다고 했다. 어떤 악몽이냐고 묻자 "아파트. 사람이 죽는 꿈.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고)"라고 적었다. A양은 밤에 자주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고 한다. 어머니는 "돈을 뺏기거나 얻어맞았으면 본 사람도 있고, 말해줄 사람도 많았을 것"이라며 "아이가 수년간 드러나지 않게 정신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A양은 "자살 시도한 것 후회하니" 하고 묻자 "네"라고 썼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하자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썼다. A양은 또 "(자살로) 죽은 애들은 (가해자들이) 처벌받았으니까 부럽다. 억울하다"고 썼다. A양은 "(나를 괴롭힌 애들도) 경찰 조사받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처벌을 원하는 거냐고 묻자 A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29일 대구시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의 한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A양. 지난 4월 26일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한 A양은 사고 후유증으로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 A양은 종이에 글을 적는 방법으로 기자와 의사소통을 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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