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신청도 못하고.. 삼성LCD 노동자 또 사망

목정민·박효재 기자 입력 2012. 6. 3. 21:47 수정 2012. 6. 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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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취업 5개월 만에 재생불량성빈혈 발병앞 공정 화학물질 노출.. 면장갑만 끼고 일해

삼성전자 액정화면(LCD) 천안공장에서 일해온 윤슬기씨(31·여)가 지난 2일 오후 숨졌다.

윤씨는 1999년 LCD 공장에서 근무하다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13년간 투병해왔다. 재생불량성빈혈은 골수세포의 기능이 저하되고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이 모두 감소하는 조혈기능장애질환이다.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 및 액정화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한 56번째 사망자다. 윤씨의 빈소는 전북 군산의 월명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윤씨는 지난 4월 근로복지공단에서 자신과 같은 질환을 앓던 김지숙씨가 산재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산재 신청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상담을 받은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 산재 신청을 하지 못했다.

윤씨는 군산여상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6월7일 삼성전자 LCD 천안사업장에 입사했다. 윤씨는 이 공장에서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을 맡았다. 잘라진 패널에 금이 간 곳은 있는지 눈으로 검사하고 완전히 잘리지 않은 부분은 손으로 조각 내 잘랐다. 이어 다음 공정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패널을 옆에 쌓아두었다.

윤씨가 잘라낸 LCD 패널은 바로 앞 공정에서 화학물질을 바른 뒤 옮겨진 것이었다. 그는 화학물질이 묻은 패널을 다뤘지만 면장갑만 끼고 일했다.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앞 공정과 윤씨가 일하던 공정 사이의 출입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윤씨는 직접 화학물질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앞 공정에서 화학물질을 바른 패널을 다뤘기 때문에 화학물질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근무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인 그해 11월말 쓰러졌다. 병원에서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았다. 입사 당시 윤씨는 혈액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 중에서도 관련질환자는 아무도 없다. 윤씨는 결국 12월 퇴사했다.

윤씨는 지난 13년간 수혈에 의존해서 살았다. 젊은 나이에 당장 일을 하지 못해 생계가 어려웠다. 윤씨와 그의 모친은 모두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월 40만원씩의 생계지원비가 수입의 전부였다. 그는 지난달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다 지난 2일 재생불량성빈혈로 인한 폐출혈과 장출혈로 끝내 숨졌다.

윤씨가 산재 보상을 받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 4월부터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윤씨와 같은 질환을 앓던 김지숙씨가 산재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그는 그러나 산재 신청서를 접수시키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종란 노무사는 "윤씨가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 청구를 준비해왔기 때문에 유족이 대신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짧게나마 삼성에서 일했던 직원이 운명을 달리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산재 판단에 대한 공단 측 자료요청 등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정민·박효재 기자 m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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