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전 20층서 80분..자살학생 마지막 문자는 "장례식 오면 가만안둬"

2012. 4.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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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숨진 이군 무슨일 겪었기에…

20대 남성이 구하려

손 내밀었으나 닿지못해

유서에는 "그 자식과

주말에 노는게 제일 싫어"

가해학생 "장난삼아"…

학교 "괴롭힘 몰랐다"

지난 16일 아침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한 경북 영주시 ㅇ중 이아무개(13·2년)군이 20층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던진 순간, 이군을 붙잡으려는 손길이 있었다. 오전 9시30분께 20층에 사는 대학생 김아무개(22·여)씨가 아파트 창문에 매달린 이군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라 집에 있던 사촌오빠 이아무개(22·대학 휴학)씨를 불렀다. 이씨가 창문을 향해 내달리며 손을 내밀었으나, 그만 닿지 못하고 말았다.

17일 이군이 사는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경찰이 확인해봤더니, 이군은 16일 아침 7시58분에 집을 나섰다가 1분 뒤 다시 집에 돌아온 뒤 아침 8시8분쯤 자신이 사는 아파트 1층에서 20층까지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다. 8시12분껜 친구들에게 '늦어서 학교에 못 간다'는 문자를 보냈다. 8시54분께 자신을 괴롭혔던 같은 반 전아무개(13)군에게 문자를 남겼다. '장례식에 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동안 폭력에 시달렸던 이군의 분노가 그대로 묻어났다.

그러고 30여분 뒤 이군은 투신했다. 승강기 20층 단추를 누른 때부터 1시간20여분 동안 아파트 20층에서 이군은 무척 갈등하며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군의 아버지(47)는 "학교에 간다더니만 집으로 곧바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집을 나갔다.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니…"라며 오열했다.

이군은 '유언장'이라는 제목으로 A4 크기 용지 앞뒤에 쓴 유서를 남겼다. '누가 이 유언장을 주웠다면' 자신의 아파트에 갖다달라는 당부도 남긴 그 유서에는 한달 넘게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과 심정이 담겼다.

"그 녀석은 내 뒤에 앉았었는데 (교실에서)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 수업시간에… 뒤에서 때리고… 쉬는 시간에는 나를 안으려고 하고 뽀뽀를 하려고 하고…."

이군은 지난달 중순부터 전군한테 날마다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군은 17일 "장난 삼아 그랬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이군이 유서에 이름을 남긴 최아무개(13)군도 이군을 때렸고, 이군이 이름은 밝히지 않은 진아무개(13)군도 심하진 않아도 이군을 괴롭힌 혐의가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전군은 등 뒤에서 걸핏하면 이군의 몸을 연필로 찌르기도 하고, 이군이 그린 그림에 붓으로 물을 뿌리기도 했다. 숨진 이군은 2년 전 전군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중학교에 진학한 뒤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다시 만났다.

이군이 목숨을 끊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달 들어 전군한테서 이른바 '패밀리'라고 불리는 학교 서클에 가입하라는 강요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압박을 견디다 못한 이군은 지난 14일 서클에 가입했다. 이 서클은 전군이 초등학교 동창생을 중심으로 만들었으며 10명이 가입해 몰려다니곤 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군은 서클에 가입한 다음날 전군을 따라다녔다고 썼다. "마치 내가 그 녀석의 부하나 꼬봉이 된 느낌이 들었다. … 나는 꼬봉이 되기 싫다. 나는 그 자식과 노는 게 싫다. 나는 주말에 그 자식과 노는 건 제일 싫다"며 "그래서 자살하려고 한다"고 유서에 써놓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이군은 키 175㎝, 몸무게 70㎏으로 수업시간에 이따금 판타지 소설을 읽는 일이 있긴 했어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심리검사에서 '자살 감정지수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10여차례 병원 치료 등을 받았다. 교사들은 '올해 이군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친구들의 괴롭힘이 한달 넘게 이어지면서 견디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군이 괴롭힘을 겪는 사실을 학교에서는 까마득하게 눈치채지 못했다. 김인규 교장은 "올해엔 학교생활을 잘해 이군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심리검사에서 자살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난 학생들을 염두에 둔 뚜렷한 대책도 없었다. 학교 쪽 관계자는 "지난 3월 이군의 담임 교사가 반 학생들을 상대로 상담을 한차례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북 영주경찰서는 이 서클이 ㅇ중학교 학생 7명과 다른 중학교 학생 3명 등 10명으로 구성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들 학생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전군 등은 출석 정지 조처됐으며, 만 14살 미만으로 형사미성년자여서 혐의가 중할 경우 소년원에 보내질 수 있다.

영주/구대선 정환봉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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