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가 '독도 수호 대포' 문화재지정 막았다

2012. 3.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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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4년전 한승수·유명환, 일본 자극 이유로 반대"

당사자는 부인…문화계 논란거리로 떠오를듯

* MB정부 : 총리실·외교부

그 섬에는 60여년 묵은 대포 하나가 홀로 서 있다. 한국 영토 동쪽 끝인 경북 울릉군 독도 동섬의 암산 꼭대기, 등대와 경비대 숙사를 마주보는 언덕 위에 버티고 있는 구경 3인치짜리 미제 포다. 1981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독도 방위 최전선에서 활약했으나, 이후 녹슨 채 방치된 이 대포가 문화재계와 정치권의 논란거리로 떠오를 조짐이다.

2008년 문화재청이 이 대포의 국가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으나, 당시 한승수 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며 논의를 가로막아 계획을 중단시켰다는 증언이 최근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해 7월 일본 총리와 회담 당시 일 총리가 교과서 학습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겠다고 밝히자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불거진 때와 거의 일치하는 시점이다.

이런 증언을 꺼낸 이는 지난해 문화재청 국장 퇴임 뒤 총선 출마를 준비중인 엄승용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충남 보령서천)다. 그는 29일 <한겨레>에 독도 대포의 문화재 지정 중단에 얽힌 비사들과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그는 "2008년 4~8월 이건무 당시 문화재청장과 함께 대포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해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안건으로 올렸으나 유명환 장관과 한승수 총리가 '일본을 자극하면 안 된다'며 더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해서 좌절됐다"고 밝혔다.

이 대포는 1946년 제작된 길이 50인치의 해상 방어용 함포 얼개다. 경찰청이 1981년 해군한테서 인계받은 뒤 1996년까지 정기 사격 연습을 벌이며 독도 방위의 한 축을 맡았다. 96년 퇴역한 뒤 보호대책 없이 방치돼 왔다.

엄 후보와 문화재청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대포의 문화재 지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2008년 4월. 당시 총리실 독도영토대책단의 관계 부처 회의에서, 국방부, 경찰청이 '독도에 골칫덩어리가 있다'며 대포 철거를 검토중이라고 밝힌 것이 계기였다. 연약지반에 놓인 대포의 철거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문화재청 쪽은 독도를 지켜온 포를 문화주권 행사 차원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하고, 그해 5월부터 준비 절차에 들어갔다. 뒤이어 8월 독도 연구자와 병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실사단이 포 현장을 방문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고, 그해 8월21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이건무 당시 청장과 사적명승국장이던 엄씨가 참석해 대포의 문화재 지정을 정식 안건으로 올렸다.

회의에서 당시 한 총리와 유 장관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유 장관의 '강한 우려'가 제기됐고, 한 총리도 이에 동조해 '문화재 지정은 더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결론'을 지으면서 안은 묵살됐다고 엄 후보는 증언했다. 실제로 독도 대포의 문화재 추진 상황을 기록한 문화재청 보고문서에는 '08년 8월 국가정책조정회의 이후 추진 중단'이라고 명기돼 있다.

엄 후보는 "총리와 외교부장관이 재론하지 말라고까지 못박는 발언을 해 당황했었다"며 "넉달 동안 열정적으로 안을 준비해온 문화재청 직원들도 허탈해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독도 대포의 문화재 지정은 밤낮으로 독도를 지켜온 이 대포의 내력과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그 역사 문화적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는 의미가 있다"며 "영토에 문화주권을 행사하려는 정책을 걸림돌로 보는 현 정부 외교의 문제점을 짚고 싶었다"고 증언을 공개한 배경을 설명했다. 엄씨와 함께 대포의 문화재 등재를 추진했던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현 용인대 교수)도 "독도 수호의 상징성이 담긴 드문 문화유산이란 점 때문에 추진했는데 (내부 이견으로) 계획이 중단돼 아쉽다"며 "법적으로 독도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인 만큼 대포의 문화재 지정이 앞으로 꼭 성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2008년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석했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외교부쪽은 상반되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한승수 전 총리는 "(회의 당시) 반대하지 않았다. 미사용 방치 상태로 지정하기보다, 울릉도로 옮겨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는 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보라 했다"고 해명했다. 외교부 쪽도 "당시 회의 문서를 찾아보니 반대의견을 명시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엄 후보는 한 전 총리의 해명에 대해 "당시 회의에서 한 총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 독도에서 포탑 철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울릉도 이전 지정을 말하는 것도 궤변"이라고 반박해 또다른 진실 공방의 소지도 남기고 있다.

문화재계에서는 독도 대포가 영토 수호의 상징성과 역사적 내력을 함께 갖춘 유산으로서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포의 문화재 지정 좌절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않는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효용이 다한 옛 무기의 문화재 지정에 일본이 반발할지도 의심스럽고, 실효지배중인 독도에 법 적용을 받는 대상물을 추가 지정하면 영토 분쟁에 유리한 제도적 근거를 추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강임산 사무국장은 "정부가 소극적인 대일 외교 방침 때문에 주권 수호의 상징물을 애써 외면한 듯한 인상을 준다"며 "법에 근거한 문화재 지정은 강력한 문화주권을 행사한다는 상징성과 국제적 파급력을 지니는 만큼, 이제라도 정부는 대포의 문화재 지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등 독도 관련 민간단체들은 이런 상황이 현 정부의 저자세 외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대포의 문화재 지정을 위한 서명과 정부 부처 항의 방문 등 범국민연대운동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독도 대포는 2008년 문화재청의 문화재 지정 노력이 좌절된 뒤로 무용지물이 된 채 해풍에 녹이 슬어가고 있다. 관리 주체는 경찰청이지만, 몇번 페인트만 칠했을 뿐 활용계획은 전무하다. 쓸쓸한 말년을 맞은 독도 대포가 과연 '문화재의 자격'을 얻을 수 있을까?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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