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시험 훔친 해커스, 수법도 '치밀'

박준호 2012. 2. 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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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국내 굴지 유명 어학그룹이 내부 직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토익 등 영어시험 문제를 불법 유출해 온 사실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김영종)은 6일 토익·텝스 영어시험 문제를 상습적으로 불법 유출한 혐의(저작권법 위반 등)로 조모(53) 해커스어학교육그룹 회장 등 2명과 김모(42) 해커스어학원 연구소 대표 등 4명을 불구속 또는 약식 기소했다.

검찰은 또 해커스어학원과 해커스어학연구소 법인 2곳을 같은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

검찰은 문제유출에 가담한 연구원들도 사실상 법리적으로 공범에 포함되지만 핵심역할을 한 팀장급만 기소했다.

◇각종 첨단장비 동원, 보안각서로 문제유출 '입막음'

해커스그룹은 2007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6차례에 걸쳐 토익과 텝스 시험문제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유출했다.

시험문제 유출 횟수만 토익은 2007년 10월28일부터 2011년 12월18일까지 49회, 텝스는 2007년 12월2일부터 2012년 1월7일까지 57회에 걸쳐 각각 유출됐다.

이같은 문제유출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해커스 그룹의 사주인 조모(53)씨의 치밀한 능력이 돋보였다. 그는 이미 2000~2001년 일부 학원가에서 C, D 등의 가명을 사용하며 '족집게 강사'로 유명했다.

조씨는 학원가에서 체득한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 해커스어학원을 설립한 뒤 조직적인 시험문제 유출계획을 구상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독해·청해(듣기) 등 각 파트별로 암기 부분을 미리 할당한 뒤 독해는 각 연구원마다 암기를 부여받은 2문제만 외우고 시험이 끝난 후 1시간30분 이내에 인터넷으로 총괄담당자에게 전송토록 했다. 토익암기는 18명, 텝스 암기는 20명이었다.

듣기 파트의 경우 연구원 대신 어학원 마케팅 직원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토익과 텝스 각각 2명씩 총 4명이 소형녹음기를 이용해 듣기평가 내용을 은밀히 저장·녹음했다. 녹음내용은 3시간 내에 외국인 연구원에게 전송해 문제를 복원토록 했다.

영상녹화를 위해 마이크로렌즈가 장착된 만년필형 녹화장비를 이용하거나 해외에서 구입한 특수녹음기를 변형할 만큼 수법이 치밀해 시험 현장에선 쉽게 발각되기 힘들었다.

이렇게 유출한 시험문제는 해커스학원 내부통신망(인트라넷)의 마케팅팀 게시판에 한데 모아졌고, 유출문제들은 외국인 연구원 검토를 거친 뒤 시험후기게시물(문제, 정답) 등으로 복원됐다.

이는 응시생들이 시험을 마친 당일 학원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시험문제와 정답을 체크하고 문제 복원률이 높을수록 '실력있는' 학원으로 선호하는 심리를 감안한 것이다.

해커스 측은 이렇게 유출한 문제를 일부 내용만 각색한 뒤 시중에 판매했다. 2010년 매출 1000억원, 당기순이익 360억원을 거둔 실적의 일부분은 이같은 시험문제 불법 유출에 기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씨는 보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험문제 유출작업에는 일반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고 마케팅팀 직원들과 영어실력이 검증된 연구원만 동원했다. 특히 연구원들은 강의보다는 주로 문제유출을 위한 목적으로 처음부터 채용했다.

직원들이 외부에 불법 유출 사실을 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개개인마다 일종의 보안각서인 '영업비밀서약서'를 받았고 시험 유출에 가담한 연구원과 직원들에겐 특근비, 교통비 등을 지급했다.

검찰 관계자는 "다른 학원들은 단순히 시험을 본 뒤 암기해서 기억나는 것만 (게시판에)올린 것과 달리 조씨는 직원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문제를 유출했다"며 "ETS는 문제풀(pool)에서 출제하기 때문에 향후 시험에 (유출문제가)나올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일단 '증거'만을 토대로 시험문제 유출기간을 2007년부터 올해 초까지로 한정했지만, 토익이나 텝스뿐만 아니라 다른 시험에서도 추가로 시험문제를 유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해커스 측은 2016년부터 수능시험을 대체하고 2014년부터 순경 공채시험에 적용되는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이 향후 블루오션일 것으로 판단, 이 시험에 대해서도 일부 문제 유출을 시도한 정황이 파악됐다.

이와 함께 해커스학원의 일부 강사들이 유출문제를 기초로 강의자료를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위해 일부 강사들도 영업비밀서약서를 작성햇다.

검찰 관계자는 "학원측에서 조직적으로 문제를 유출한 건 강사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며 "어학원 강사들이 수험생을 많이 끌어오기 위해 유출문제와 아주 유사하게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시험문제를 유출해서 내부 통신망에 완벽하게 복원해 저장했다"며 "교재를 편찬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복제된 문제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시험문제 유출수사 학원가 전체로 확대?

검찰은 ETS 한국토익위원회의 요청으로 해커스그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국토익위 측은 2006년부터 해커스 측에 시험문제 유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오히려 해커스 측은 문제의 동일성 판단을 위해 문제 풀(pool)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며 적반하장 태도로 일관했다.

ETS 측은 한국 응시생들의 영어실력에 의심을 품고 매년 한국인을 위한 특별시험 용도로 7회차 문제를 별도 개발해 66만5000달러(약 7억4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손실을 입은 ETS측이 해커스그룹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통한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영어 시험문제 유출과 관련된 수사를 일단 해커스 그룹으로만 한정하고, 향후 다른 학원가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학원들의 경우 해커스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죄질'이 미미하고, 해커스그룹처럼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계획한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해커스 측은 모든 유출문제 관리를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관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증거수집은 수월했다.

또 ETS 측이 다른 학원들에 대해선 문제유출 의혹을 제기하지 않은 점도 검찰은 고려했다.

검찰 관계자는 "ETS 진정을 받고 나서 수사에 착수했다"며 "ETS 산하 한국 토익위측에서 해커스를 상대로 계속 항의공문을 보냈다. 다른 어학원에는 그렇게까지 항의공문을 보내지 않았는데 ETS는 해커스가 문제있다고 본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향후 시험문제 유출 등 저작물 침해사범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지속적인 단속을 벌이겠다"고 했다.

p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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