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가락국 마지막 왕릉 '베일' 벗나

2007. 2. 1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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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15m '傳 구형왕릉' 발굴 본격화

"수수께끼의 무덤 '전(傳) 구형왕릉'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까."

가야의 마지막 10대 임금인 구형왕(仇衡王, 재위 521~532)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사적 214호 '전 구형왕릉' 관련 문화재 발굴작업이 본격 시작돼 지역 주민들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산청군은 금서면 왕산에 위치한 왕산사터(경남도기념물 제164호) 7,033평 가운데 697평에 대해 사업비 2억여원을 들여 1차 문화재 발굴조사에 착수했다고 14일 밝혔다.

군이 왕산사터 발굴조사에 나선 것은 왕산사터가 '전 구형왕릉'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 왕산사 법당에서 구형왕과 왕비 영정, 옷, 활, 칼 등 관련 유물이 나온 것으로 전해져 왕산사터를 발굴하면 이 무덤의 실체 규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은 우선 2004년 인제대 가야문화연구소가 실시한 절터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와 관련 문헌 기록을 정리하고 실제 발굴조사를 통해 왕산사의 건립연대와 규모, 당시 가람배치, 구형왕과의 관련성 등을 밝힐 예정이다.

'전 구형왕릉'은 경사진 지형에 수만개의 잡석으로 모두 7단을 쌓아올려 타원형의 봉문을 만든 높이 7.15m의 거대한 돌무덤으로 지금까지 구형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실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전면 4 단째에 폭과 높이 각 40㎝, 깊이 68㎝ 크기의 감실(불상, 신주 등을 안치시키기 위한 공간) 형태의 시설이 있지만 내용물도 없고 용도도 알려져 있지 않다.

돌무덤은 1m 높이의 담장이 에워싸고 있으며 무덤 앞에 '가락국양왕릉(가락국은 가야, 양왕은 구형왕)'이라고 적힌 비석과 석등 및 석단 좌우에 문인석, 돌짐승이 한 쌍씩 세워져 있으나 모두 20세기 들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무덤을 구형왕릉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왕산은 현의 서쪽 10리 지점에 있다. 산중에 돌을 포개서 만든 둔덕이 있고, 사면이 모두 층계로 돼 있는데 왕릉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또 조선시대 문신 홍의영(1750~1815)이 지은 '왕산심릉기'에도 "무덤 서쪽에 왕산사가 있고 절 위쪽에는 왕대(王臺)가, 아래쪽에는 왕릉이 있으며 신라에 멸망하자 이곳으로 와 살다가 세상을 떠나 장사 지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지역에서는 "구형왕이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에 묻히겠느냐, 차라리 돌로 덮어달라"고 해 "살아남은 군졸들이 왕의 시신을 매장하고 잡석을 포개 얹었다"고 구전돼 오고 있다.

그러나 이 돌무덤이 석탑이나 제사를 지낸 제단이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제기되고 정확한 사료의 뒷받침이 부족해 지금까지 구형왕릉으로 공식 인정 받지 못한 채 '전 구형왕릉'으로 불리고 있다.

산청군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왕산사터와 '전 구형왕릉'의 실체를 밝히고 앞으로 왕산 일대 가락국 관련 역사문화정비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산청=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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