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낳은 전태일, 대구는 기억하나?

2015. 7. 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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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역 현장] 전태일 열사 유년의 흔적을 찾아

"전태일 열사가 태어난 곳이라고 하는데 관변단체가 세운 '바르게 살자'라고 적힌 돌 하나밖에 없네요…."

지난 16일 오전 대구 중구 계산오거리에서 고희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태일(1948~1970)이 대구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삶을 추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다. 지난달 5일 대구를 찾은 전태일의 동생 전태삼(65)씨는 형이 이곳(대구 중구 동산동 311)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1948년 8월26일 전태일이 태어났을 때 이곳은 주택가였다. 하지만 이후 도로와 인도가 나면서 지금은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고희림 시인은 "전태일 열사가 대구에서 태어났고 자란 유년 시절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대구 사람들조차도 전태일 열사가 대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가 살았던 집을 보존하고 사람들에게 전태일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2년 전부터 대구에서는 지역에 남아 있는 전태일의 삶과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알리려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전태일이 태어난 위치와 살았던 집 한 곳을 찾아낸 것이 전부다. 서울에 사는 전태삼씨가 사람들과 함께 대구를 돌아보며 기억해낸 것들이다.

서울살이 잠깐 빼고 16살까지 살아2년 전부터 삶과 흔적 재조명 움직임동생과 함께 돌아보며 찾아보니'태어난 곳' 중구 계산오거리엔관변단체 표지석 '바르게 살자'만15살때 살았던 중구 남산동 집셋방 별채는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기" 회상살았던 집 '상징 공간'으로 기념해야

전태일이 태어난 이곳에서 동쪽으로 800m 떨어진 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났다. 박 대통령은 전태일이 태어나고 4년 뒤인 1952년 2월2일 대구 중구 삼덕동 5-2에서 출생했다. 지금은 상가건물이 들어서 있는 박 대통령의 생가 터에는 이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전태일이 태어난 이곳에는 안내판 하나 없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900m 떨어진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에는 전태일이 15살 때 살았던 집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집 본채와 대문, 일부 담벼락은 그대로지만 전태일의 가족이 세들어 살았던 셋방이 있던 별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는 사람 키보다 더 높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 집 담벼락에는 누군가가 'Peace'(피스: 평화)라는 글씨를 적어 놨다.

전태삼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형은 칠성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는 할아버지 집에서 태어났는데 정확한 위치는 '바르게 살자'라고 적힌 돌이 있는 곳이다. 이후 대구에서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살았는데 남산동에 세들어 살았던 집은 정확히 기억을 한다.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는 집 앞에 배추밭과 도랑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태일은 이 집에 세들어 살며 200m 떨어져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이 자리에 명덕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청옥고등공민학교가 있던 자리는 지금 학교 체육관인 명덕관이 지어져 있었다. 이 시기에 대해 <전태일 평전>에는 '청옥고등공민학교는 야간학교로서 남녀공학이었다. 태일은 학교에서 배우는 시간 외에는 집에서 아버지의 재봉일을 도와야 했다 쉴 새 없는 고달픈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는 생전 처음 맛보는 즐겁고 보람찬 나날이었다'고 나와 있다.

전태일의 삶은 이렇게 알려져 있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1960년(12살) 서울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다가 동대문시장에서 일했다. 1965년(17살) 학생복을 만드는 청계천 평화시장 삼일사에 보조원으로 취직했지만 다른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알리다가 1969년(21살) 해고됐다. 1970년(22살) 평화시장에서 삼동회를 조직했고, 그해 11월13일 그는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벌이다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대구에서 살았던 아버지 전상수씨와 어머니 이소선씨는 아들 전태일이 2살이었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에 피난을 갔다. 둘째 아들인 전태삼씨는 그해 부산에서 낳았다. 전쟁이 끝나고 부산에서 양복제조업을 하던 아버지는 사업이 망하자 1954년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전태일은 1956~1960년(8~12살) 서울 남대문초등공민학교와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니며 신문팔이 등을 했다.

전태일은 1961년 혼자 집을 나와서 대구에 잠깐 머물기도 했다. 이후 1962년(14살) 대구로 내려와 1964년(16살)까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1963년(15살) 5월부터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니다가 그해 겨울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며 학교를 중퇴했다. 전태일이 살았던 남산동 2178-1 집은 그가 이때 학교를 다니며 살았던 곳이다. 이후 그의 가족은 대구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살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모른다.

<전태일 평전>을 보면,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니던 이때를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자주 회상했다고 한다. 첫사랑도 이때 생겼다. 전태일이 1969년부터 2년 동안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수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부실장은 김예옥이라는 예쁘게 생긴 여학생으로서 반에서는 1·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나는 이 부실장이 좋았다.' 1964년 그의 가족은 다시 서울로 떠났다. 잠시나마 행복했던 대구에서의 삶은 그렇게 끝났다.

대구는 노동자들이 가장 살기 힘들다는 도시다. 고용노동부가 2013년 8월 발표한 '16개 시·도별 노동시장의 주요 특징' 자료를 보면, 대구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4.0시간으로 전국에서 울산(44.2시간) 다음으로 길다. 반면 대구 노동자의 월평균 급여는 226만원으로 제주(213만원) 다음으로 낮다. 대구는 지역 분위기가 보수적이라 노동쟁의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2011년과 2012년 대구를 노사 상생협력 우수도시로 선정해 상을 줬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대구를 노사 상생협력 최우수도시로 선정했다. 대구시도 2012년 노조 탄압으로 이름을 알린 상신브레이크에 노사화합상을 줬다. 이어 지난해 9월 대구시는 스스로 '노사 평화 도시'로 선포했다. 당시 대구시청 앞에서는 이런 대구시의 행태에 대해 항의해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한 대구에서는 최근 시민사회에서 전태일의 삶과 흔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태일이 살았던 집을 사들여 기념관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 대구에서는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지은 이상화(1901~1943) 시인이 살았던 고택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보존됐다. 대한제국이 들여온 일본 차관을 갚고 국권을 지키려는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 서상돈(1851~1913)의 고택이 복원되기도 했다. 이상화·서상돈 고택은 전태일 열사가 태어난 이곳으로부터 100m 떨어져 있는 계산동 84번지에 있다. 대구에는 가수 김광석(1964~1996)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대봉동에도 350m 길이의 김광석 벽화길이 만들어져 있다.

김찬수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이사는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집을 보존해 기념관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이 없고 이야기만 나오는 상황이지만 대구가 꼭 전태일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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