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하러 승마장 간다..42만명이 말타고 '이랴~'

2013. 6. 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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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쏙 l 블루오션 떠오른 말산업

"쯧쯧… 쯧쯧…. 워~."

경기도 용인시 신갈승마장에서 지난 26일 오후 남녀 5명이 말 등에 올라타 연신 음성신호를 넣었다. 혀를 찰 때마다 말은 속도를 냈고, 뱃심을 줘 묵직한 음성으로 '워~' 하면 약속이나 한 듯 멈춰섰다. 이들은 가볍게 뛰는 말의 안장에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박차를 가했고, 잠시 후 말은 시원하게 내달렸다. 1시간가량 승마장을 누빈 사람이나 말은 모두 땀에 흠뻑 젖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리운동을 했다.

2011년 말산업 육성법 제정뒤전국 300여곳서 승마장 운영운동 외 심리·장애치료 효과 커승마힐링센터는 대기자 넘쳐나"승마장 운영에 전문지식 필요철저한 사전준비해야 낭패 피해"경마장이 말산업 산출액 81%사행성 조장 꼬리표 따라붙어

이성아(43·여·경기 성남시 분당구)씨는 "승마를 시작한 뒤 장 건강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 동물과 교감하는 전신운동이어서 일주일에 한두번만 승마를 해도 다른 운동은 필요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승마장으로 달려왔다는 초등학생 박승민(11·경기 용인시 수지구)군은 "말을 타고 난 뒤부터 공부할 때 자세도 좋아지고 키도 더 커진 것 같다"며 싱글벙글했다.

2011년 9월 제정된 '말산업 육성법'은 이례적으로 특정 동물 이름을 법률에 넣었다. 그만큼 육성 의지를 담았다. 정부는 말을 국가 기간 축산자원으로 인정해 5년마다 말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세워야 한다.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승마장 설립 기준이 대폭 완화되고 자금 지원도 이뤄진다. 3마리 이상 말을 보유한 농어촌지역 농가가 500㎡ 이상 시설을 갖추고 체육지도자 등 전문인력을 배치하면 누구나 승마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땅값을 빼고 2억~3억원을 투자하면 승마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구제역에 걸리지 않는 동물이란 말의 매력이 축산농가를 유혹하고 있고, 수도권에선 레포츠 분야의 새로운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유망시장)으로 말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한국마사회 말산업연구소의 '2012년 말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승마장은 전국에 132곳 있으며, 지난해 승마장 이용자는 42만명이었다. 말산업 육성법에 따른 소규모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68곳이다. 여기에 미신고 승마시설까지 합치면 전국 승마장은 300여곳으로 추정된다. 2008년 190곳으로 조사됐던 것에 견주면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말산업은 양적 팽창 못지않게 분야도 다양하다. 사육, 분양, 조련, 승마, 관광 등 갖가지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정준용 한국마사회 말산업연구소장은 "유럽을 보면 소득 수준이 2만~3만달러쯤 되면 승마·요트 등으로 여가생활 패턴이 바뀐다. 승마·경마 등을 통한 여가활동뿐 아니라 심신 치유, 말고기 유통과 승마 관련 장구업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승마장이 몰려 있는 경기도는 말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분류해 2016년까지 1000억원을 투입한다. 승마장 등을 새로 조성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서울시를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의 지리적 특성에 비춰, 수도권 인구 2500만명의 소비시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화성시 화옹간척지에 들어설 에코팜랜드 사업에 승용마 단지(86㏊)와 말 조련 단지(93㏊)를 짓는다. 양주시에는 2016년까지 24만㎡ 규모의 생태승마공원을 만들고, 동두천 주한미군기지 반환 터에는 3만5000㎡ 규모의 산악승마파크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다.

말은 건강 회복에도 활용된다. 지난해 9월 한국마사회 지원으로 경기도 시흥시에 들어선 국내 최대 규모의 '승마힐링센터'는 인터넷 중독,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지적장애·지체부자유 등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을 승마로 치유한다. 승마는 신체·심리·사회적 치유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인천 승마힐링센터는 대기 예약자만 5000명이 넘는다. 마사회는 대구 등 전국 대도시에 모두 30곳의 승마힐링센터 건립을 위해 2022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한다.

경마를 빼놓을 수는 없다. 사행성이란 수식어가 붙곤 하지만, 우리나라 말산업 전체 산출액의 81%를 차지하는 까닭이다.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은 지난해 입장객이 500만명을 넘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어린이 44만명까지 154만명이 찾아 가족 테마파크로 자리잡았다. 경북 영천엔 2016년까지 국내 최대 규모(148만㎡) 경마공원이 조성될 참이다.

말산업이 블루오션이라고 하지만, 앞뒤 재지 않고 서두르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한국마사회 말산업 기획팀 이경우 차장은 "안정적인 승마장 운영을 하려면 말에 대한 기초·전문 지식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말 사육과 인력 고용, 다양한 수익사업 등 사업 전반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말 가격은 얼마일까? 승마장에서 쓰이는 경주 퇴역마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500만~800만원 선이다. 경주마는 3000만~400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제주지역 비육마(고기용 말)는 최고 350만~400만원, 승용마(승마용 말)는 최고 1000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승마장 말은 과반수가 6~10살인데, 생후 18개월부터 훈련받아 24개월이 지나면 '말 구실'을 할 수 있다. 승마장 말은 대부분 서러브레드인데, 한라마를 포함한 제주 교잡마도 많다. 식용으로 사육하는 '퍼쉬론'은 3년쯤 키워 1.3t까지 살찌우면 1000만원가량 받는다.

말은 악취가 거의 없고 똥오줌 배설량도 많지 않다. 말똥은 수분이 적어 바로 마르는데 질 좋은 친환경 퇴비로 쓸 수 있어 텃밭을 이용한 도시농업은 물론 일반 농가에 팔려나갈 만큼 인기가 있다.

장태평 한국마사회장은 "말 3마리에 1명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으면 승마가 보편화된다고 한다. 말산업 육성 전담기관으로서, 우리 농어촌 경제에도 고용·수익 효과를 가져오는 블루칩이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말산업 육성법' 다른 법률과 충돌비가림 시설 하나 설치도 어려워"20년째 승마장 운영 최태진씨

"정부가 법까지 제정해 말 키우고 승마장 짓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법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는 벽부터 허물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농가도 살고 승마장도 살 수 있습니다."

1994년 9월부터 20년째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서 신갈승마장을 운영중인 최태진(58) 대표는 지난 26일 말산업 육성법 시행 이후 달라진 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10마리로 시작해 현재 60마리 넘는 말을 사육하며 승마장을 운영하는 최 대표는 부인 이은재(54)씨와 두 아들까지 승마장 운영에 매달린 덕분에 제법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 역사드라마에 등장하는 말 상당수가 이 승마장 '소속'이다.

그는 그동안 척박한 말산업 시장에서 고군분투했지만, 말산업 육성법 제정 이후에도 실질적인 제도적 뒷받침은 미흡하다고 아쉬워했다. 이 법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서도 승마장 운영이 가능하다고 명시했지만,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 사안이 많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야외 승마장에 비 가림 시설 하나 설치하려 해도 건축법, 도시계획법 등의 제약이 있는 현실을 당국이 먼저 알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이어 "승마장은 짓는 것보다 경영전략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금융지원만 믿고 사업을 하게 되면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2000년 무렵 전국에 승마장이 30~40곳 생겼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던 장면도 떠올렸다.

최 대표는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승마사업을 시작할 때가 됐다"며 말산업의 미래를 확신했다. 관련 법이 제정되고 승마 인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자는 것이다. 적어도 2~3년 이상 철저히 준비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 쪽에는 '재정 지원에 더해, 승마 인구 흡수를 위한 정책 개발과 말 관련 산업 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아달라'고 당부했다.

용인/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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