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토론하라 함께 만들어라..'박원순표 민주주의' 실험

2013. 6. 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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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수도권 쏙] 시민과 함께 만드는 '숙의 민주주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청책'과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숙의'를 거쳐 서울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걸음 나아간 민주주의 실험이라는 평가와, 그 한계도 있다는 견해가 들린다.시민 목소리 듣는 청책토론회48번 열어 6300여명 만나 얘기관료·전문가 찬반양론 '숙의의 날'소셜방송 통해 생중계로 투명공개시민과 함께 정책 실현 '협치' 통해'도서관 활성화 사업' 성과 내기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10월 당선한 이래 시민들의 의견을 시정에 담으려 벌여온 실험들에 차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제껏 시민들의 목소리는 '민원인들이 항상 하는 소리'거나 '이기적인 요구'처럼 여겨지곤 했지만, 박 시장은 "시민들이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며 시민들의 입에 귀를 한껏 기울이려 하는 것 같다. 이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들, 전문가들과 함께 서울시 정책을 가다듬어 내놓고 있다. 참여민주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이른바 '숙의민주주의'의 시동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현장의 목소리 듣는다, '청책'

지난 4월초 서울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200여명이 서울시청사에 모였다. 청책(聽策) 토론회였다. 그 며칠 전 사회복지 공무원이 또 목숨을 끊은 때였다. 복지 공무원들이 놓인 '험한' 현실을 소개하는 10분 남짓한 발제에 이어 곧바로 공무원들이 나섰다. "한 동료가 '일이 너무나 많아 진절머리가 난다'며 사직하려고 합니다." "하루가 새롭게 새로 일이 위에 떨어져요." 가슴에 맺힌 듯 울음이 터질까봐 말을 잇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박 시장은 묵묵히 들으면서 수첩에 메모를 했고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대책을 찾겠습니다."

공무원들은 조금은 응어리가 풀린 듯한 표정이었다. 목영자 강남구 일원1동주민센터 복지팀장(서울복지행정연구회장)은 "우리에게 얘기할 기회를 준 것부터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 한달여 뒤 서울시는 사회복지 공무원의 신규채용 인원을 늘리고 업무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박 시장은 취임 한달 만인 2011년 11월 첫 청책 토론회를 연 뒤, 지난 4일까지 48차례를 열었다. 100~200명씩 참여해 이제껏 6300여명이 박 시장에게 저마다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주제도 다양했다. 청년 일자리, 전통시장 살리기, 북한이탈주민 지원 등 사회적 주제도 있었다. 가든파이브 상가 이전, 동대문디자인파크 개발, 서울지역 택시 등 지역 현안도 다뤘다. 서울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 두산·엘지 구단 사장 등과 함께 '야구 발전을 위해 서울시가 할 일'도 듣거나, 동물보호단체 등과 함께 '시민이 즐겁고 동물이 행복한 서울대공원 만들기' 이야기도 나눴다.

■ 머리를 맞댄 심층토론, '숙의'

지난해 4월초 서울시장실에 장애인단체 대표와 관련 공무원들이 함께 모였다. 서울시의 장애인 대책을 마무리짓는 '숙의'(熟議) 자리였다. 2주일 뒤 시는 병원·법원 등에서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 지원을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장애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다섯달 전부터 서울시는 장애인운동 활동가, 교수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꾸려 20여차례 회의를 거듭했다. 황인식 당시 장애인복지과장은 "공무원이 책상에선 생각해내지 못할 의견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무시당하고 예산 타령만 듣는 게 아니라, 소통을 통해 신뢰가 쌓이고 있다"며 반겼다. 서울시청 앞에서 매주 2~3차례 단골처럼 열리던 장애인 집회는 이 정책 발표 뒤로 잦아들었다.

박 시장 취임 뒤로 서울시 정책 수립 절차에 '숙의'가 도입돼 지금까지 60여차례 이어졌다. 공무원뿐 아니라 전문가들,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찬반양론을 집중적으로 펼친다. 박 시장은 주로 질문만 던진다고 한다. 금요일을 '숙의의 날'로 잡아 한 사안을 두고 두세차례 숙의를 반복한 적도 있다. "숙의 한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는 공무원들도 있었다.

숙의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매우 민감한 사안은 비공개로도 하지만, 대개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인 <라이브 서울>이 생중계한다. 서울시 누리집의 '온라인시장실' 안에 '시장실 회의 공개'나 '실시간 회의 공개'를 누르면 박 시장이 전문가, 공무원들과 숙의를 하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 '박원순 프로세스'(?)

서울시 안팎에선 '박원순 프로세스'라는 표현이 들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청책', 전문가 등과 정책을 만들어내는 '숙의',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정책을 실현해가는 '협치'를 이뤄간다는 것이다. '현장→청책→숙의→정책 발표→협치' 과정이다.

서울지역 도서관 활성화 사업이 전형적인 보기로 거론된다. 지난해 3월 책나라연대 등 시민단체 등과 '책 읽는 서울,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로 청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후 전문가 좌담회를 다섯차례 열었다. 그 넉달 뒤, '걸어서 10분 안에 좋은 도서관을 만나는 환경 조성' 등을 뼈대로 한 도서관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정책을 집행·실현하는 협치 과정에는 시민들과 전문가 15명 안팎이 참여하는 '서울 도서관 네트워크'가 다달이 회의를 열어 조언하고 있다. 천준호 서울시 기획보좌관은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그대로 모두 수용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듣다 보면 배경과 이유를 알게 되는데, 바로 거기에 문제의 해법이 있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시민단체·전문가 비중 커…'침묵하는 다수' 참여 과제'박원순표 민주주의' 실험 한계

미국에서 2009년 추첨으로 주민 1000명을 모은 적이 있다고 한다. 최대 정치 현안인 의료개혁 법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었다. 처음엔 찬반이 절반씩으로 나뉘었다. 며칠 동안 전문가들의 찬반 토론을 지켜보고 주민들도 서로 토론했다. 다시 여론조사를 했더니 의료개혁 법안에 90% 이상이 찬성했다. 이른바 '숙의적 여론조사'다. 보통 여론조사가 '잘 모르더라도 내 생각은 이렇다'는 의향의 산술적 집계라면, 시민들이 사안을 제대로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를 따져보는 정치 실험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행하고 있는 청책-숙의 절차도 이와 닮았다. 숙의 과정에서 전문가 찬반 토론을 중계하는 것은 시민들의 '사려 깊은 선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4~5년마다 자신의 대표를 선택하고 마는 대의민주주의,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중점을 두는 참여민주주의에서 한걸음 더 내딛는 이른바 '숙의민주주의' 시험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박 시장은 "시민이 똑똑히 제 몫을 다하자"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 청책과 숙의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박 시장이 1년7개월 동안 추진해온 이런 실험에 한계도 만만치 않다. 48차례 열린 청책 토론회에 참여한 시민은 모두 6300여명이다. 숙의 과정도 몇천명씩 온라인으로 지켜봤고 "역대 어느 시장보다 많은 시민들을 만났다"고 서울시 쪽은 말한다.

서울시도 인정하듯, 지난해 청책 토론회 대부분이 낮 시간에 열려 회사에 다니는 시민들이 참여하기가 어려웠고, 시민단체 관계자나 전문가 위주로 진행됐다.

시민들 의견을 들으려 하고 현장 시장실도 차리지만, 절대다수 시민들은 멀리서 지켜보는 게 현실이다. '침묵하는 다수'를 놓칠 위험, 일부가 다수를 대변하는 '과잉 대표성' 위험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숙의민주주의에선 복잡한 사안일수록 교육받은 중산층 이상의 생각이 더 많이 반영된다. 정당과 정치인이 정제된 정보를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제공해 판단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숙의민주주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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