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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럽 대안경제의 힘 협동조합 기업을 가다 -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의 성장

조합들 컨소시엄 꾸려 대규모 사업도 '척척'문닫는 조합 직원은 다른 조합서 고용 승계금융위기때도 성장…'신뢰경제'의 표본으로

무한경쟁 자본주의의 대안 모델로 협동조합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협동조합은 2008년 금융위기에 기업활동과 고용의 안정을 지키면서 빛을 발했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또 특정 사업영역에서는 시장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대기업 편중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이 유력한 경제모델이 될 수 있을까? 아이쿱생협연구소와 함께 지난달 6~17일 유럽 협동조합 기업들을 둘러봤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탈리아 중부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경제기적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최악의 경제위기에도 고용과 성장을 유지한 에밀리아로마냐 모델에서 적자생존 경쟁의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과 대조적인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못 살았던 인구 430만명의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지금 1인당 소득 4만유로(약 6000만원)로 유럽에서도 손꼽는 부자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정태인 원장은 "평균 5~6명의 소기업이 40만개나 되고, 규모가 큰 기업들은 절반 이상이 협동조합"이라며 "협동조합과 협동조합이, 그리고 중소기업과 서로 협동하면서 신뢰경제의 기적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 총생산의 30%는 8000개의 협동조합 기업들에서 창출되고 있다. 주도인 볼로냐 같은 도시지역은 45%까지 협동조합 경제 비중이 올라간다. 협동조합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규모 사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대규모 생협 매장에서는 협동조합 기업이 생산한 상품이 즐비하다. 문을 닫는 협동조합의 직원은 다른 협동조합이 고용을 승계하거나 고통을 분담한다.

협동조합끼리의 협동 사례는 볼로냐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산나자로에 새로 문을 연 어린이집은 협동조합 컨소시엄의 산물이다. 교육과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인 까디아이(CADIAI), 시공을 맡은 건축협동조합 치페아(CIPEA), 단체급식 협동조합 깜스트(CAMST)가 컨소시엄의 멤버다. 까디아이의 마케팅 책임자인 라라 푸리에리는 "1개 협동조합이 해낼 수 없는 일을 여러 협동조합이 힘을 합쳐 이뤄내고 있다"며 "11개의 어린이집 문을 열었고 앞으로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동자협동조합 까디아이는 교사와 사회서비스 전문가(노동자)들이 1인당 1200유로를 출자해 1974년에 만들었고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존재 목적이다.

볼로냐의 소매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자협동조합(생협) 매장에는 '협동조합(COOP)'이라고 표시한 상품이 무수히 진열돼 있다. 농산물은 물론이고 면도기와 콜라와 같은 공산품들에 이르기까지, 협동조합이 생산하지 않는 상품은 없다시피했다. 대기업보다 마케팅에서 불리할 수 있는 협동조합들에게 생협이 가장 안정적인 판로를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볼로냐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김현숙씨는 "이곳 사람들은 시장갈 때 '꼽(협동조합의 이탈리아 발음) 간다'고 한다"며 "상품에 '꼽' 표시가 있으면 사람들이 신뢰한다"고 말했다.

단체급식 협동조합인 깜스트는 협동의 힘으로 도산 위기를 넘기고, 지금은 직원 8000명이 넘는 이탈리아 최대규모 급식업체로 성장했다. 파올로 젠코 대표는 "1978년 직원들 급여도 주지 못하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떤 협동조합은 파스타와 고기를 외상이나 싼값으로 공급해줬고, 협동조합 은행에서는 대금 만기를 연장해줬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연대로 위기를 극복한 깜스트는 80년대 이후 다른 협동조합과 주식회사들을 인수하면서 승승가도를 달렸다.

볼로냐대학 스테파노 차마니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를 똑같이 겪었지만, 볼로냐의 협동조합은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고 은행 중에 망한 곳도 없다"면서 "레가 같은 협동조합연합회들이 회원 협동조합들 간의 네트워크를 잘 이끌고가는 것이 이탈리아, 특히 에밀리아로마냐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볼로냐(이탈리아)/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국민 28%가 조합원 '신중한 투자' 연매출 1%는 사회책임사업 지원

스위스 최대 소매기업 '미그로'

창립때부터 직거래 방식 고수

백화점·주유소 등 다양한 사업

고용 1위…최고인기 기업으로

1925년에 창립한 스위스의 최대 소매기업 미그로(Migros)는 독특한 역사를 자랑한다. 처음부터 '직거래'라는 혁신적인 사업방식을 도입했다. 대기업 반열에 오른 1941년에는 회사를 아예 협동조합으로 바꿨다. 자식이 없던 창업자가 100만스위스프랑만 갖고, 나머지는 모두 협동조합의 재산으로 돌렸다.

2011년의 미그로는 스위스 국민 720만명 가운데 200만명(약 28%)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최대 소매기업이다. 시장점유율은 20%에 육박하고, 고용 규모(8만3000명)로는 스위스 모든 영리 회사와 협동조합 등을 통틀어 1위이다. 전설적인 창업자 고틀리브 두트바일러(1888~1962년)는 2009년의 설문조사에서 스위스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 2위로 꼽혔다.

미그로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는 루치 베버는 "미그로는 항상 비즈니스 그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10~20년 전부터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미그로는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90년 가까이 한결같이 사회와 환경을 생각하면서 기업활동을 해왔습니다. 지속 가능성은 미그로의 디엔에이(DAN)이죠."

미그로는 1957년부터 해마다 매출의 1%에 해당하는 1억스위스프랑(최근 환율로 1260억원)을 '사회적 책임 사업'에 쓰고 있다. 지금까지 사회에 되돌린 총금액만도 30억스위스프랑(3조7700억원)을 넘는다. 그 절반을 '미그로클럽'이라는 각 지역 50개 평생학교를 운영하는 데 쓰고 있고, 시골 마을에서 문화 공연을 여는 데도 많은 비용을 지원한다.

'사회와 환경 책임'이 속속들이 배어 있는 미그로는 여러 차례 세계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꼽혔다. 그러면서도 스위스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 가장 인기있는 기업,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도 공인받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잡은 드문 사례인 것이다. 미그로는 백화점 체인과 의류 매장·주유소·은행·여행 등 여러 사업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미그로의 마르티나 보샤드는 "협동조합의 가치가 지속 가능한 미그로를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위험한 사업이나 투자를 할 수가 없어요. 11개 지역 협동조합들이 모인 위원회 절차를 통과하기 힘들거든요. 의사결정이 더디긴 하지만, 좋은 결정을 많이 내려요. 최소 시간에 최대 이익을 내라는 주주 중심의 기업 행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많이 나도 골치아픕니다. 조합원들은 물건 값을 더 내리라고 요구하지요."

미그로의 또하나 가치는 '스위스다움'이다. 철저하게 지역과 국내시장에 집중한다. 조합원과 고객이 스위스 국민인데, 나라 바깥으로 눈돌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가장 큰 기업인 미그로에는 글로벌 전략이 없다. 취리히/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협동조합이란

협동조합은 한마디로 이용자 소유 기업이라고 한다. 자본이득을 챙기는 주주가 주인이 아니란 뜻이다. 흔히 독점기업의 횡포에 맞설 요량으로 만들어지고, 1주1표가 아니라 1인1표를 원칙으로 한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값싸게 구입할 목적으로 소비자협동조합을, 농민들이 이마트 같은 대형유통업체의 가격'후려치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협동조합을 세운다. 최근 많이 생겨나는 노동자협동조합은 노동자들 스스로 좋은 일자리 유지를 위해 설립하는 경우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어떤 업종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한 사회적 협동조합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서비스의 이용자와 조합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협동조합과 차이가 있다. 우리의 사회적 기업과 비슷하다. 대부분이 서민인 다수의 소비자, 생산자, 소상인들에게 거래상의 이익이 전달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비영리 기업이라고 간주한다. 주주의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독점규제에서 일정한 예외를 인정받기도 한다.

협동조합의 최대 취약점은 외부자본 조달의 어려움이다. 오래된 협동조합들은 내부적립금을 쌓아 이 문제를 해결한다. 협동조합이 무배당을 원칙으로 하는 것도 내부자본 축적의 절실함 때문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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