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중국 은왕조 유물 '홍도관' 공개

2008. 8. 1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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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뉴시스】

고대중국 殷(은=商<상>)왕조때 사용됐던 殷文(은문)관련 유물 중 현재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밑바닥에 은대만의 고유한 점(口안에 占)자가 새겨진 '홍도관(붉은색 옹기)'이 한국인에 의해 공개됐다.

완전한 형태로 300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홍도관에는 은왕조 마지막 帝王(제왕)인 帝辛(제신)이 주나라 무왕과의 국가 흥망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별점을 친 기록이 은문(=갑골문과 동일)으로 기록돼 있다.

12일 문자해독자 박대종씨(45.대종언어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입지름 11.8㎝, 높이17.2㎝, 몸통지름 22㎝, 밑지름 8.5㎝크기의 홍도관 어깨부분에는 60자(합쳐진 문자 분해하면 66자)의 殷代(은대)문자가 새겨져 있다.

<전문=金見. 率辛師? 亡周侯元西伯行 右師田自州西邑? 祖丁乙爪? 有眀紀斁任? 允自西伯侯. 祖丁乙! 征文夕祀, 辛丁乙師眉走? 亯井, 朕御蠱? 曰: 角眀, 有余征導舟0玄, 田封, 它肯御.> (O=民밑에 巴)

"(대낮에 불길하게도) 금성이 나타났습니다. 나의 군대를 이끌까요. 서백(주 무왕)의 항오(군대)와 그 우군(연합군)이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없을 까요. 엄정한 기강이 무너지고 방임되는 일이 있을까요" 등의 내용이다.

홍도관에는 1899년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斁, 道(導), (民밑에 巴), 肯 등에 해당되는 殷文(은문) 4자가 처음 발견됐다.

또한 동양 고(古) 천문학의 핵심인 28수의 체계와 개념 면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인도천문학과는 무관한 중국천문학의 독자성을 입증할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06년 우연한 기회에 홍도관을 소장하게 된 김형주(54)씨는 그동안 한국.중국.일본의 고고학 및 언어학 전문가에게 진위 확인 작업을 벌여 왔다.

중국의 고문자 전문가 광저우(廣州) 중산대 천웨이짠(陳煒湛) 교수는 지난 2006년 "(홍도관의)글자는 갑골문과 완전히 동일하며 당연히 위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홍콩의 리앙빠오리유(梁寶鎏) 박사는 지난 4월 내한, 시료를 채취한 후 TL측정을 실시해 홍도관이 지금부터 1465년(±10~20% 오차)전에 소성된 것 이라고 밝혀 진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토기는 출토된 후 장기간 햇볕 등 각종 열에 노출됐을 경우 TL측정의 연대가 상당히 감소될 수 있다는 것이 관련학계의 보편적 정설이다.

중국 도자기 감정 전문가 마오시아오후(毛曉滬)는 2006년 10월 CCTV에 출연해 "출토된 후 장기간 햇빛에 노출되거나 각종 열의 영향을 받으면 열석광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홍도관 은문을 해독한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은 "측정연대 시기가 갑골문이 있는 것 조차 모르던 한자사용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홍도관이 진품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중국 殷商(은상)문화학회 왕위이신(王宇信) 회장은 "商(상)왕조가 멸망한 뒤 1899년에 갑골문이 감정되고 수집되기 이전까지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결코 갑골문이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편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홍도관에 대한 연구논문 '商帝辛(상제신)의 점도문에 관한 연구'를 통해 조만간 명문 원문 등 각종 자료를 공개, 발표할 예정이다.

<관련사진 있음>

박상대기자 ps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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