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 추정만 1t .. 신라 유물의 황금은 강에서 캐낸 것"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옥산천. 위덕대 박물관장인 박홍국(59) 교수가 장화를 신고 하천에 들어섰다. 흐르는 물에 광물 선별기인 ‘슬루이스(sluice)’를 설치한 뒤 전날 인근에서 채취한 흙을 조금씩 올렸다. 물살을 이용해 흙속에 섞여 있는 광물을 골라내는 과정이다. 30분쯤 지나자 슬루이스 바닥에 검은색 사철(沙鐵)이 가라앉아 제법 쌓였다. 그 가운데 이따금 노란색이 반짝였다. 사금(沙金)이었다. 24배율 돋보기로 들여다 보니 분명 황금이다. 이 날 30분 작업해 추출한 사금은 약 1g. 돈으로 바꾸면 4만원 정도다.
실험을 끝내고 일행은 경북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로 이동했다. 야산 비스듬한 자락에 40년 전 발견된 암각화 유적(경북도 유형문화재 249호)이 있었다. 옆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그림은 선명했다. 박 교수가 옥산천에서 사용한 슬루이스와 흡사했다. 암각화와 실물 슬루이스 크기도 비슷했다. 박 교수는 “사실 내가 사용한 슬루이스 자체가 암각화 그림을 바탕으로 목공소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슬루이스 같은 그림이 새겨진 암각화는 9개 중 8개가 경북에서 발견됐습니다. 하나 같이 물이 흐르는 하천 옆에 있습니다. 그동안은 슬루이스 그림을 방패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방패가 아니라 사금을 선광하는 슬루이스라는 게 제 연구의 중간 결론입니다.” 요컨대 기원 전후에서 5세기까지 신라인이 썼던 가장 효과적인 사금 채취 도구를 바위에 새겼다는 것이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통했다. 1921년 금관총을 시작으로 경주 신라 고분에서 금관과 금제 허리띠 등 황금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박 교수는 “신라 황금은 금관총·천마총 등 대형 고분 50여 곳에 묻혀 있을 200㎏ 정도를 비롯해 전체 무덤 속 부장품이 900㎏∼1t 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 교수는 2013년 11월 일본 도치기현에 강연을 갔다가 하천에서 채취한 사금을 작은 병속에 넣어둔 걸 목격했다. 순간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원초적 궁금증이 떠올랐다. ‘신라의 그 많은 황금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착암기가 등장하기 전이니 금광이 있어도 채굴은 불가능하고….’
황금을 사들일 만한 별도의 교역품이 있었다는 기록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달 통로는 강 바닥에서 추출한 사금뿐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는 사금에 관한 사료를 뒤졌다. 일제강점기 자료에 한반도 사금 산지 1900여 곳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한반도는 곳곳이 사금 산지였던 것이다. 사금 동호인과 현장을 확인하다 다시 암각화가 떠올랐다. 89년 자신이 발견한 영주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이 슬루이스를 닮은 걸 깨닫고는 무릎을 쳤다. 그는 학계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신라 때만 해도 지금보다 하천에서 사금이 더 많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 황금 유물의 순도가 순금보다 낮은 18K에 가까운 것도 사금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 여기고 있다. 박 교수는 지금도 틈만 나면 사금을 채취하러 다니면서 신라 황금의 비밀을 캐고 있다.
경주=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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