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아내 시신 기증한 한 목사의 이야기

박재원 2010. 7. 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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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시스】박재원 기자 = "생전에 겪었던 지긋지긋한 고통과 아픔이 먼저 간 이들과 같기에, 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면 주인 잃은 육신이야 찢겨지고 파헤쳐져도 괜찮습니다."

신부전증과 대장암으로 10년 넘게 투병생활하던 끝에 생을 마감한 한 시신 기증자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지난 14일 충북대 의과대학 합동강의실에선 시신 기증자 13명의 명복을 비는 합동추모식이 열렸었다.

주검이라도 이승에 남아 의미있는 생이었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던 시신 기증자 13명 가운데 '이태옥'이란 이름도 함께 있었다. 1961년 대전에서 태어나 2008년 4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이태옥씨는 생전엔 좋은 아내이자 자상한 어머니였다.

만성 신부전증 판정을 받고 치료하던 중 2001년 신장 기증자를 만나 이식수술을 받게 됐다. 한 때 병세가 호전될 것이란 희망을 품었지만 불행히도 거부반응이 생겨 수술 후 7개월만에 다시 혈액투석을 받는 고통이 계속됐다.

절박한 심정에 당장 앓고 있는 병만 치료하면 된다는 생각이 앞섰을까. 그녀의 몸 속에서 또 다른 병마가 자라고 있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치료과정에서 발견된 대장암. 설상가상 그녀는 2006년 다시는 눕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두 번의 수술과 10년 넘게 이어져온 혈액 투석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40대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수척한 몰골이 창피해 가족 외에 어떤 사람도 만나길 꺼렸다. 이도 빠져 음식물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시력은 떨어져 사랑하는 가족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뼈까지 스며드는 고통으로 의자에도 앉지 못할 지겨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고통만 겪다 세상과 이별하고 말았다.

남편 서충성 목사(54·청주 용암동 동일교회)는 투병생활 중 일부를 이 같이 털어놨다."완치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진전만 안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저 악화되는 모습만 봐야 했습니다."

힘겨워하는 아내를 하릴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서 목사는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2008년 5월 시신을 의과대에 기증했다.

합동추모식을 한지 열흘 가까이 지난 22일 서 목사는 "고통과 통증을 워낙 많이 겪어 아내의 병을 연구하면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아내가 좋은 일을 하고 떠났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결 편하다"고 했다.

의대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과정을 거쳐 2년이 지난 14일 유골로 돌아온 아내에게 서 목사는 "질병 없는 세상, 아픔 없는 세상을 원했던 당신 소망이 헛되질 않을 것"이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현재 충북대 의과대에는 이런저런 사연을 품은 시신 40구가 안치돼 있다. 해마다 시신 15~17구가 기증된다고 한다. 이 중 외지에서 사망하고도 시신을 고향인 충북에 맡기는 기증자들도 많다고 전한다.

이 시신은 전문의와 의학도들의 해부학 연구로 사용돼 의학발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pjw@newsi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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