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값 못 갚아 돼지에 경매 '빨간딱지'.. 피눈물이 흐릅니다"

윤희일 기자 2012. 7. 1. 21: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EU FTA 1년, 한숨짓는 충남 논산 양돈 농가

"많은 양돈 농민들이 아예 양돈업을 접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돼지고기가 들어오면서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면서 포기하는 거죠."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충남 논산시 연산면 사포리 사포농장. 사포농장 대표 도기정씨(56)는 "양돈을 포기하는 이웃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1일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주년을 맞았다. 정부는 FTA 효과를 자랑하지만 양돈 농가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충남 논산에서 돼지를 키우는 도기정씨가 돈사에 들어가 돼지를 돌보고 있다. 도씨는 "양돈업을 지겨나가기가 정말로 힘든 상황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윤희일 기자

▲ 유럽산 수입에 수지 못 맞춰… 2~3년 새 50여 농가 양돈 포기1500마리 사육 돼지농장 사장 졸지에 남의 축사 인부 전락

도씨가 6000여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는 논산은 충남에서 양돈 농가가 많은 3대 시·군 중 하나다. 2년 전부터 양돈협회 논산지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역 양돈 농가의 절박한 실상, 농민들의 아픔을 자세히 알고 있다. 도씨는 "양돈에 인생을 걸고 2500마리의 돼지를 키워온 한 농민은 최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지로 떠났다"며 "그의 손에 남은 것은 거액의 빚뿐"이라고 말했다.

"저와 동갑내기인 한 농민은 1500마리의 돼지를 키우며 '사장님' 소리까지 들었죠. 하지만 지금은 남의 집 축사에서 일을 거드는 인부 신세가 됐습니다."

외상으로 구입한 사료값을 갚지 못하자 사료 공급업자가 돼지를 모두 경매처분한 것이다. 도씨는 "자식처럼 키워온 돼지에 '빨간딱지'가 붙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2~3년 전까지만 논산지역 양돈 농가는 140여가구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는 90여가구에 불과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영세한 양돈 농가들도 속속 양돈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도씨는 "FTA 등의 영향으로 돼지의 출하가격은 내려갔는데 양돈 비용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사료값은 급등한 것이 결정타"라며 "FTA 체결 당시 예상한 일이 그대로 벌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7월 이후 11개월간 EU산 돼지고기 수입액은 전년 동기보다 49.7%나 급증했다. 도씨는 "행락철을 앞둔 요즘 시기의 돼지 출하가격은 ㎏당 5300~5500원은 돼야 견딜 수 있는데 지금은 4700~4800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사료값은 1~2년 전에 비해 25% 이상 급등했는데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이대로 가면 3~4년 이내에 양돈 농가의 절반 정도는 망하게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도씨는 "양돈 농민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가격을 조절한다는 이유로 유럽산 돼지고기의 무관세 수입을 강행하는 정부 관계자들을 보면 저절로 욕이 나온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씨는 "우리 양돈 농민들이 유럽 등 외국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시설을 현대화하고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 차원의 공동 시설 지원을 당부했다. 그는 "같은 지역의 양돈 농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축산분뇨처리시설 같은 것을 지어주는 등의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도씨는 이어 "지금 상태에서 한·중 FTA를 추진하면 우리나라 양돈 농가는 모두 죽는다"며 "한·중 FTA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윤희일 기자 yhi@kyunghyang.com >

[경향블로그]

[최장집칼럼] 농업·농민을 다시 생각한다

[박용채의 '심심상인'] '통큰치킨'과 FTA가 가르쳐 준 것

[주간경향]한·미 FTA 주역, 지금은 어디에

[FTA 아카이브] 라틴 아메리카는 왜 가난해졌을까

[구정은의 오들오들매거진] FTA 잘못 하면 태국처럼 된다

[정태인의 '모지리의 경제방'] 15년 뒤 대한민국은

[정태인의 '모지리의 경제방'] 오바마의 '교역 전쟁'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 여친과 걷던 男, 남자와 부딪혀 커피 쏟자…

▶ 36㎏ 여대생, 술먹다 사망… 못된 대학선배들

▶ 동호회 남자후배 취하자… 성추행한 여대생

▶ '통장잔고 3000원'… 생활고 부부, 동반 자살

▶ "심각"… 하늘에서 본 '4대강의 후폭풍'

모바일 경향 [경향 뉴스진(News Zine) 출시!]|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