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생사 걸린 30분, 응급상태 방치

2009. 5. 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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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동아일보-한겨레 '언론책임론' 상반된 시각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의혹이 눈 덩어리처럼 커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충격적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어설픈 모습은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국민은 지난 23일 서거 이후 오늘까지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잘못된 내용을 알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과 동행했던 경호관의 진술이 번복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재조사 결과라고 밝힌 내용 역시 '진실'인지 '진술'인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국민은 혼란과 분노 허탈과 공포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남쪽과 북쪽 정부는 주거니 받거니 '안보공포'를 키우고 있다.

북한 군부는 핵실험, 미사일 발사, 도발 위협 등 연일 안보 공포를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안보 이슈를 집중적으로 띄우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쏠린 여론의 시선을 돌리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언론 역시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28일자 주요 아침신문을 살펴보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은 북한의 군사 위협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일부 신문 1면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기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음은 28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경향신문 < 막힌 소통 푸는 추모의 장 >-국민일보 < 북 "서해 안전항해 담보 못해" >-동아일보 < 북 "서해 선박 안전항해 담보 못해" >-서울신문 < 북 "서해상 안전항해 담보 못해" >-세계일보 < 북 "전시 상응하는 실제적 행동 나설 것" >-조선일보 < 북 "정전협정 끝…군사적 타격하겠다" >-중앙일보 < 북한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 >-한겨레 <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국일보 < 북 "서해 안전항해 담보 못해"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충격적 상황을 맞이한 국민은 여전히 혼란 속에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영결식과 노제, 화장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사실 관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원인 제공은 부실한 수사를 성급하게 발표한 경찰과 경호원의 오락가락 진술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28일자 1면 < 노 전 대통령 투신후 최소 28분 방치 > 라는 기사에서 "경남경찰청은 27일 서거 경위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이날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이모(45)경호관이 자리를 비운 오전 6시14분에서 17분 사이에 뛰어내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경호관이 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것이 오전 6시45분이므로 최소 28분간 응급상태에서 방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사가 걸린 30분가량 방치돼 있었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중앙일보는 1면 < 투신 후 28∼31분간 응급 상태로 혼자 있었다 > 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30분은 꺼져가는 생명 구할 수도 있는 시간"

▲ 서울신문 5월27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 경호·경찰조사 부실 책임 따져야 > 라는 사설에서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진 노 전 대통령을 찾느라 30분을 허비하지 않았을 수 있다. 30분은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대목은 서울신문이 사설에서 밝힌 '30분은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시간'이라는 부분이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음모론'이 퍼지고 있지만, 투신한 게 맞는다고 해도 경호 'VIP'인 전직 대통령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30분 동안 응급상태에서 방치했다는 점은 단순한 실수로 넘기기에는 엄중한 일이다.

경찰 발표와 경호관의 설명은 처음부터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2면 < 전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경찰수사 > 라는 기사에서 "수사발표 내용이 계속 번복된 것은 부실한 초동 수사가 원인"이라며 "수사를 전적으로 이 경호원의 진술에 의존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경호관 진술 오락가락 난감한 청와대 경호처"

▲ 중앙일보 5월27일자 6면.

VIP 경호를 위해 날아오는 총탄도 막을 각오가 있다는 경호관이 두려움 때문에 문책을 피하고자 거짓진술을 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경호를 맡은 경호관들이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노 전 대통령 경호관들의 은폐 의혹은 언론의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역사적인 비극을 엉뚱하게 기록할 뻔 했다.

한겨레는 3면 < 불거지는 '경호책임론' > 이라는 기사에서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놓친 사실을 즉시 자택 경호동에 알렸다. 수행 경호관의 거짓 증언을 노 전 대통령 경호실 차원에서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6면 < 경호관 진술 오락가락 난감한 청와대 경호처 > 라는 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서거 당일 수행했던 이병춘 경호관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청와대 경호처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0명가량의 봉하마을 경호팀이 청와대 경호처 소속이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일보 "경호팀도 조직적 은폐 가능성"

서울신문은 5면 < 경호관은 은폐 시도…경찰은 부실 수사 > 라는 기사에서 "경찰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동료 경호관들의 설득으로 이 경호관이 마음을 정리하고 사실대로 진술하게 된 것으로 분석한다고 밝혔다. 이는 경찰수사에 앞서 나머지 경호관들은 이 경호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8면 < 경호팀도 조직적 은폐 가능성 > 이라는 기사에서 "경찰이 지난 2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경호관을 대동한 현장검증을 장례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힌 점이 의문이다. 유서 발견에 따라 '자살'로 결론을 내리려고 굳이 1주일씩이나 끌며 현장 검증 등을 미룬 것은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6면 < 31분간 무슨 일이… > 라는 기사에서 "23일 오전 이 경호관으로부터 대통령의 '유고'를 접수하고 여러 차례 통화해 내용을 잘 알고 있었던 신 경호관 등 사저 경호동(CP) 관계자들이 사건 발생 4일 동안 왜 함구했는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는지도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이송 직후에야 인공호흡, 명백한 실수"

▲ 경향신문 5월27일자 6면.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국민적 의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원인제공을 경찰이 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누리꾼들의 의혹을 단순한 유언비어라고 일축할 수 있는 일인지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경찰 발표 내용을 그냥 믿으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의 의혹에 대해 언론도 조심스럽지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 서거 경위 '거짓진술' 이제야 알았다니 > 라는 사설에서 "한 국가의 원수를 지낸 중요 인사가 비명에 숨진 것은 그야말로 중대한 사건"이라며 "시중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에 여러 억측과 소문이 나도는 게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6면 < "노 전 대통령 홀로 있다 투신…31분간 방치됐다" > 는 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이 경호원이 119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노 전 대통령을 매고 갔다는 점과 이송 직후에야 인공호흡을 했다는 점 등도 맹백한 실수로 지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 "황당한 추론 떠들고 전파"

▲ 한국일보 5월27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음모설에 이어 심지어 타살설마저 나돈다. 변호사 출신의 전직 대통령이 법적 효력이 없는 컴퓨터 유서를 작성했고, 119구급대를 부르지 않고서 낙상을 입은 대통령을 업고 차량으로 옮긴 점, 장기기증 서약을 한 노 전 대통령이 화장을 요청한 점 등 때문"이라며 "억측을 생산하는 의혹을 풀 정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타살설은 이를 입증할 증거가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에서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쪽에서도 자제를 당부했다. 중앙일보는 8면 < "타살설은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 > 이라는 기사에서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7일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타살설에 대해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경찰의) 이런 과오는 인터넷에 나도는 각종 '음모론'과 '역음모론'에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황당한 추론을 떠들고 전파하는 것은 국민적 추모 분위기를 흐트리고 순수한 애도의 뜻을 훼손할 뿐이다. 모두가 언행을 삼가야 한다. 특히 민주당이 터무니없는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꼴불견"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국가적 재난 악용해보려는 세력 있다면"

▲ 세계일보 5월27일자 사설.

세계일보는 < 전 대통령 서거 순간 정확하게 기록 남겨야 > 라는 사설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시해설'은 어처구니없다. 제기한 내용은 불확실한 추정과 잘못된 가설로 이뤄져 있다. 이런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어린 학생 등에게는 그릇된 사실을 진실인 양 심어줄 소지가 크므로 중단시켜야 한다. 어두운 곳에 숨어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국가적 재난을 악용해보겠다는 세력이 있다면 용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도 지적한 것처럼 경찰 발표와 경호관 진술에는 의문이 적지 않다. 타살설이 아니더라도 사실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정치적 의도가 담긴 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언론의 또 다른 정치적 의도가 담긴 접근법은 아닐까.

조선일보는 < 5일 동안이나 잘못 알려진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 > 이라는 사설에서 "당장 인터넷 등에선 기다렸다는 듯 노 전 대통령 서거 배경에 마치 흑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엉뚱한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뜬소문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경호와 수사 과정을 자세히 밝혀내고 책임을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 어떻게 서거 경위조차 은폐·조작 의혹을 받을까 > 라는 사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의혹이 파다한 터다. 유서와 결행 과정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의 뜻이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투신 사실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나오는 형편이다.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그만큼 깊은 탓이겠다"고 분석했다.

한겨레 "한겨레도 언론 책임론 무겁게 받아들여"

▲ 한겨레 5월27일자 사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싸고 '언론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과 관련해 한겨레와 동아일보가 180도 다른 내용의 사설을 내보냈다. 한겨레는 < 전 대통령 서거 '언론 책임론' 무겁게 여겨야 > 라는 사설에서 "검찰이 흘리는 혐의사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은 물론, 회갑 선물 시계의 경우처럼 오직 인간적 모욕을 주기 위해 본질과 관련 없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고 반성했다.

한겨레는 "언론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취재 관행의 문제점을 재검토하고, 피의자나 사회적 약자 보호 및 진실 규명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면서 " < 한겨레 > 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론을 무겁게 받아들여,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로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언론 합작 살인 운운 무책임한 망발"

▲ 동아일보 5월27일자 사설.

그러나 동아일보는 < 국민장을 국가 혼란의 장으로 만들려는 세력 누군가 > 라는 사설에서 "고인이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다 충격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끊은 일은 안타깝지만 일부 세력이 '검찰과 정권 그리고 일부 언론의 합작 살인'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망발"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살인정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낙인에 주눅이 들어 일부 과격세력에 휘둘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큰일이다. 국민장을 국가 혼란의 장으로 끌고 가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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