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 '망신주기' 보도"盧서거 책임" 비난여론

이지선기자 2009. 5. 26. 17: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명품시계 논두렁에 버려" "계약서 찢어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과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사실상의 타살 공범"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 검찰의 혐의내용 흘리기와 이를 중계방송하듯 받아쓴 언론의 보도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금품수수 의혹을 다룬 신문 보도 중 일부. 수사 본질과는 거리가 먼 사생활 들추기, 도덕적 흠집내기라는 비판을 받은 언론 보도도 많았다.지난달 23일 대검찰청에서는 '빨대(취재원을 가리키는 은어) 논란'이 일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나쁜 '빨대'를 반드시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모든 신문과 방송에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회갑 선물로 1억원이 넘는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된 게 발단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망신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정보를) 흘렸다면 나쁜 검찰"이라고 반박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기 위해 정보를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한 신문은 다음날 해당 명품시계의 실명과 실물 사진까지 실어가며 문제삼았다.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조사 때 권양숙 여사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등의 보도가 뒤따랐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군색한 해명이라는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딸 정연씨의 미국 주택 계약과 관련, "계약서를 찢어버렸다"는 진술도 보도되는 등 노 전 대통령 측의 답변은 생중계되듯 고스란히 언론에 흘러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러한 근거는 검찰에서 의도적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대부분의 언론보도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투신 서거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뒤 그간의 보도양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잇달았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24일 성명에서 "검찰과 조·중·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덕적 흠집내기에 혈안이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조중동이 만들어낸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들 세 집단은 조문이 아니라 고인은 물론 비탄에 빠진 유족에게, 충격과 슬픔에 빠진 국민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이명박 정권, 검찰뿐 아니라 조·중·동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그토록 공격했던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순간까지 악의적 왜곡과 모욕주기를 중단하지 않은 행태는 심판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판의 화살은 일부 언론에 집중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검찰의 브리핑을 통한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받아쓰기식 보도 행태가 교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검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지난 25일 포털 다음 '아고라'의 토론 게시판에 글을 올려 "여론의 비난처럼 검찰의 발표를 스피커처럼 확대 재생산하진 않았는지,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특종에 눈이 멀어 사실을 과대포장하진 않았는지, 이런 자문에 스스로 떳떳하다고 당당히 말하진 못하겠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수사진행 상황은 언론을 통해 알려져야 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알려지는 것이 불가능했을 정도의 가족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수사 상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검찰에게 적용되는 죄목이므로 스스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사문화된 이 조항을 어떻게 살릴지 언론, 검찰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지선기자 jslee@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