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보도 남발', 무기력한 기자단

류정민 기자, dongack@mediatoday.co.kr 2008. 8. 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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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이명박 대통령 '독도발언' 보도, 오마이뉴스 징계 논란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청와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요청의 적절성을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 기자단은 지난 5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발언'을 보도한 오마이뉴스를 비보도 약속 파기를 이유로 2개월 출입정지 징계 결정을 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청와대 춘추관을 예정에 없이 방문한 자리에서 독도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는데 청와대가 비보도를 요청한 내용을 오마이뉴스가 보도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문제 때문에 후쿠다 총리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면 독도 문제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일본도 국내정치 상황이 있으니까…유럽 같은 위대한 큰 지도자가 나오면 일본도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관 대변인 "일본 총리에 대한 (대통령) 발언은 비보도 해달라"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했다.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는 일본이 (자기의 영토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기 쉽다. 분쟁의 여지도 없다. (일본에) 큰 지도자가 나오면 실마리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동관 대변인은 "다른 것은 다 써도 좋지만, 일본 총리에 대한 발언은 비보도를 해달라"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요청했다. 이명박 대통령 발언은 일본 정상을 폄하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국익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현장에서 즉석회의를 가졌고 대통령이 작심하고 강조한 발언이므로 보도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익 관점에서 한일관계에 미칠 파문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표결에 부친 결과 대다수 언론은 비보도에 동의했고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고뉴스 등 청와대를 출입하는 인터넷신문 3개사는 반대했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고뉴스 3개사만 비보도 요청 거부

당시 이명박 대통령 발언을 최초 보도한 주체는 오마이뉴스 기자가 아니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한 이데일리 김성재 기자는 7월31일 <&ldquo;일본에 위대한 지도자 나오면…" MB발언 어디로 사라졌나?>라는 기사를 보냈고 오마이뉴스는 이를 게재했다.

김성재 기자의 기사는 청와대의 비보도 요청에 입을 닫은 언론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오마이뉴스 청와대 출입기자인 최경준 기자는 7월31일 시민기자의 기사를 설명하는 형식의 '[取중眞담]' 기사를 썼다.

최경준 기자는 기사에서 "<오마이뉴스>는 비록 청와대의 비보도 요청이 부적절하고 기자들의 협의 과정과 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결국 비보도 결정을 일단 따르기로 했다. 청와대에 계속 출입기자를 둬야 권력의 심장부를 감시할 수 있다는 현실적 필요성, 이 대통령 발언의 뉴스 가치, 당위와 현존하는 질서 사이의 괴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인 이데일리 기자가 1보

▲ 지난달 31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김성재 시민기자(이데일리 기자)의 기사.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는 "그로부터 1주일 뒤 한 시민기자가 이 대통령의 당시 발언 내용을 인지하고, 청와대 출입의 기자들의 '비보도' 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보내왔다"면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는 <오마이뉴스>는 사실에 기반해 작성된 시민기자의 어떤 기사도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따라서 <오마이뉴스> 기자가 청와대의 비보도 요청을 지키기로 한 약속과 별개로, 김 기자의 기사를 보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지난 4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비보도' 약속을 파기했다는 이유로 오마이뉴스에 징계를 내렸고 청와대 춘추관장과 기자단 명의의 공문을 이데일리에 보냈다. 최경준 기자는 출입정지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6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재심을 요청했다. 이번 사건은 '국익'을 명분으로 한 청와대 비보도 요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현장에 있던 청와대 기자들은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결정했더라도 다른 기자 또는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볼 때는 '언론의 침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대통령 발언, 한국일보 1면 머리 보도…동아·서울 '기자간담회' 규정

▲ 한국일보 7월24일자 1면.
▲ 동아일보 7월24일자 4면.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현장에 없었던 언론인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청와대 비보도 남발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논란은 계속됐고 일부 기자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청와대 기자단이 엄격한 잣대로 비보도 요청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지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청와대 기자단이 청와대 요청에 제동을 건다면 청와대도 비보도 요청을 남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와대 기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춘추관 방문 사실을 기사로 내보내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한국일보는 <멀쩡한 국민 뒤서 쐈는데 북서도 뭔가 조치 있어야">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춘추관 방문 발언을 7월24일자 1면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7월24일자 4면에 <이 대통령 "북, 대북특사 받지도 않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기사 출처를 이명박 대통령이 춘추관을 방문해 한 '기자간담회'로 설명했다. 서울신문은 <이 대통령 "북서 특사 받겠나">라는 제목으로 1면에 보도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역시 '기자간담회'라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 "대통령 외교적 실언, 비보도 요청도 '역사의 기록'"

▲ 지난달 31일 최경준 오마이뉴스 청와대 출입기자가 올린 기사. ⓒ오마이뉴스

동아일보나 서울신문 설명처럼 이날 자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라면 발언 하나 하나는 중요한 뉴스거리가 될 수 있다. 이병선 오마이뉴스 정치경제데스크는 청와대 기자단에 보낸 재심 요청서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적으로 볼 때 '실언'이었다. 청와대가 '비보도'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병선 데스크는 "이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것도, 청와대 측이 이에 대해 사후 '비보도'를 요청한 것도, 그 자체가 '팩트'이며, 역사의 기록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병선 데스크는 "권력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실언이 보도되지 않도록 힘을 가할 수 있으나, 왜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돼 있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순순히 '비보도' 요청을 수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비보도 남발, 기자단 견제장치 '의문'

이병선 데스크는 "설사 자신은 '비보도'가 옳다고 판단하더라도 이를 다수결이란 형식으로 다른 언론사에 -단 하나의 언론사라 하더라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최경준 기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국익과 크게 상관없는 사항도 사전도 아닌 사후에 비보도 엠바고를 요청하는 청와대 측의 행태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곽경수 청와대 춘추관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징계결정은 청와대 기자단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청와대 비보도 요청 남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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