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공공성 '헌신짝'..정권 입맛대로 '길들이기'

입력 2008. 7. 19. 10:21 수정 2008. 7. 19. 10: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이명박 정부 언론·방송관 그대로 드러내

"정부 바뀌었으니 물러나는게 맞다" 강조

■ 박재완 수석 발언 파문 ■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한국방송>(KBS) 사장에 대해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언론·방송관을 드러냈다.

그의 발언에는 방송의 공공성이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보다, 정권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담겼다. 박 수석은 한국방송을 '정부 산하기관'으로 규정했다. 이명박 정부가 공영방송의 주인을 '공공'이 아닌 '정권'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방송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정부 시책 홍보를 요구받았던 경험이 있다. "땡전 뉴스"라고 지적당하던 5공화국 시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987년 이래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 개념이 괄목할 정도로 진전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 구현하라"고 공공연히 주문하는 행태는 과거회귀적이라고 비판받을 만하다. 영국의 <비비시>(BBC), 일본의 <엔에이치케이>(NHK) 등 외국의 공영방송들도 특정 정권의 국정철학 구현을 당연히 요구받지 않는다.

박 수석은 이날 한국방송이 구현해야 할 새 정부의 국정철학으로 '선진일류국가 건설' 명제와 5대 국정지표인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대국, 글로벌 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 등을 열거했다. 이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을 갖고 공영방송 사장의 적격성 여부를 가른다면, 결국 임명권자의 정치적 판단과 사장 후보의 정파적 성향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캠프 출신을 신임 사장으로 뽑은 지난 17일 <와이티엔>(YTN) 주주총회에서도 잘 드러났다.

박 수석은 이날 인터뷰에서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국정기획수석 휘하에는 방송통신 정책을 담당하는 방송통신비서관이 있다. 박 수석은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최근 감사원은 한국방송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으며, 검찰은 정 사장에 대한 배임혐의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아래는 박 수석과의 일문일답이다.

-케이비에스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같이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케이비에스라면 그래야 하는 게 맞지 않냐는 것이다."

-공영방송인 케이비에스와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국영방송인 케이티브이(K-TV)의 차이점이 뭔가? "케이티브이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영기업이고, 케이비에스는 정부 산하기관이다. 정부 산하기관이 정부와 국정철학을 달리하면 되겠느냐?"

-'케이비에스는 정부 홍보에 주력해야지, 비판하면 곤란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케이비에스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새 정부) 국정기조를 기반으로, 정부가 그것과 안 맞는 경우에 비판하는 게 맞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이 일 수 있다. "공무원도 정치적 중립성을 갖지만, 국정철학을 구현해야 되는 것처럼 공영방송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현재 케이비에스 기조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과 어떻게 다른가? "청와대 수석인 내가 그런 말을 하긴 곤란하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뭔가? "'선진일류국가'라는 국정과제와 5대 국정 지표가 있지 않나?"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와 국정철학 구현이 부딪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정 사장을) 나가라고 못 하는 것 아니냐. 정부가 바뀌었다. 그것도 집안이 다른 정부가 들어섰으면 자신이 새 정부 국정철학 구현의 최적임자인지 재신임받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정 사장은)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돼 있다며, 안 나가고 있다. 도의적으로는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맞다고 본다."

-최근 케이비에스와 정 사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도 케이비에스가 새 정부 국정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점과 관련 있나? "검찰과 감사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갖고 있다. 검찰 수사는 시민단체가 정 사장을 고발했기에 불법행위가 있는지 수사하는 것이고, 감사원은 케이비에스의 예산낭비 여부에 대해 조사하는 것으로 안다."권태호 기자 ho@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