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푸들' 자임한 언론

류정민 기자, dongack@mediatoday.co.kr 2008. 5. 2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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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경찰 과잉진압 유도 논란…무기력한 공권력 꾸짖기도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평범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구호를 외친 것은 얼마 만일까.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수많은 집회와 문화행사가 있었지만 이를 주도한 것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세력이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행사나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행사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지만 2002년은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고 2004년은 탄핵을 주도한 국회가 주된 비판 대상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 10대 청소년, 20∼30대 회사원이 정부 비판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상황을 1987년 6월 항쟁과 비교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 시민들은 지난 24일 촛불문화제가 끝난 후에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거리에서 탄핵을 외쳤다. 자녀와 함께 도로를 걷는 모습이 눈에 띤다. ⓒ최훈길 기자

87년 6월 연상하게 만드는 광우병 반대 민심

당시는 군부세력을 등에 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하던 시절이고 지금은 투표행위를 통해 정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시기이다. 당시와 지금은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경찰의 진압방식은 큰 차이가 없다.

경찰의 백골단과 최루탄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곤봉과 방패로 시민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모습은 그때와 다를 바 없다. 다만 87년 당시에는 시위대를 조직적으로 이끄는 지도부가 있었고 화염병, 쇠파이프라는 대항수단이 있었지만 지금은 컵과 양초로 만든 촛불이 그들 손에 쥐어진 전부였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벌어졌던 촛불 행사와 경찰의 과잉 폭력진압 논란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들은 왜 촛불과 함께 거리로 나서게 됐을까. '언로'가 막힌 시민들의 답답한 심정에서 원인을 찾는 이들이 많다.

▲ 지난 24일 새벽 광우병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한 장애인이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언론에 분노한 시민들, 편파 왜곡보도 중단 촉구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우려하며 촛불을 들었지만 결정권자인 정부의 방침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담화가 있었고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행동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27일 정도로 예상되는 정부 고시가 발효되면 현실화된다. 정치권에 기댄 시민들도 실망을 금치 못했다. 특히 17대 국회 마지막 쟁점으로 떠올랐던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무기력한 정치의 현실을 확인시켰다.

광우병을 걱정하는 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언론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에 날카로운 필봉을 자랑했던 그 언론들은 이명박 정부의 충실한 '푸들'이 되려고 경쟁하는 모습이었고 이어진 편파 왜곡보도는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수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아야 했다.

▲ 한겨레 5월26일자 7면.

어머니 "내 딸 왜 잡아가요"…조선 "주말 도심 극심한 혼잡"

경찰이 평범한 시민을 강제 연행한 상황도 87년 6월을 연상하게 한다. 황모씨는 KBS 뉴스 인터뷰를 통해 "그 고기 안먹겠다고 나온 것뿐인데 내 딸 왜 잡아가요. 그러면 전 국민 다 잡아가래 그러면…"이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80년대 군부독재의 충실한 대변자 역할을 했던 언론들은 과거의 보도태도를 답습하고 있다. 불법성을 부각하고 교통체증을 강조했지만 시민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와 억울한 상황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은 모습이었다.

조선일보는 <차도로 뛰어든 '촛불집회'>라는 기사를 26일자 1면에 실었고 동아일보는 <촛불, 끝내 차도 불법 점거>라는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할 때마다 주변 교통은 30분~1시간가량 완전 차단돼, 주말 도심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라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5월26일자 1면.

조선일보 "무기력한 공권력"…중앙일보 "엄정조치해야"

시민 강제 연행은 광우병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일부 언론이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다. 조선일보는 지난 24일자 1면에 <취객에도 맞는 경찰 공권력>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무기력한 공권력은 이를 무시하는 국민 의식과 맞물려 악순환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5월24일자 1면

경찰은 조선일보가 무기력한 공권력을 꾸짖은 당일 시민들을 강제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폭력 진압 논란이 이어졌다. 그러나 언론은 다시 한 번 경찰의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중앙일보는 26일자 사설을 통해 "검찰은 법에 따라 불법행위자를 엄정조치해야 한다"면서 "인터넷에는 '일부 좌파 세력이 쇠고기 문제를 대정권 투쟁에 이용하고 있다'는 괴담까지 난무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비판 여론을 공권력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위기신호'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정부가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각계의 지적이 이어졌지만 이명박 정부는 '마이웨이'를 선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도덕성이 들통난 핵심 참모를 여전히 곁에 두고 있고 민심에 의해 부적격 판정을 받은 대운하 불씨를 되살리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헌법 제21조 위협받는 현실

이명박 정부의 내 맘대로 국정운영이 계속되면 거리로 나선 시민과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도 안 돼 탄핵 논란에 휩싸인 가장 큰 원인을 국정철학 부재에서 찾은 이들도 있다.

한겨레는 26일자 사설에서 "이명박 정부가 임기 초반에 위기에 봉착한 것은 기본적으로 국정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이라며 "법치주의와 의견 다양성 보장 등 민주주의 운영 원칙이 짓밟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BBK 의혹 등으로 도덕성에 결함이 발견된 인물이지만 비판정서의 확산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외쳤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한 대목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무엇을 찾겠다는 것인지 하나하나 따져볼 일이다.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21조가 위협받는 현실은 주목할 대목이다.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해달라는 목소리를 묵살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을 향해 공권력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독재 망령 되살아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기다렸던 10년 만의 집권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깐깐한 언론은 채찍으로 위협하고 부드러운 언론은 당근으로 회유하는 이명박 정부의 기본 인식은 역사의 시계를 80년대로 돌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모두를 장악했고 비판과 감시가 본연의 역할인 언론의 칼날은 이미 무뎌졌다. 전두환 정권이 20여 년 전 군과 경찰 등 공권력을 앞세워 사회를 장악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합법적 수단으로 사회를 장악할 기본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지안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오고 있다. 국민 생명을 우습게 알고, 국민 불안을 괴담으로 몰고, 국민을 기어코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독재'가 우리사회를 80년대로 되돌려버린 듯 해 참담한 심정"이라고 지적했다.

강형구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공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거대한 민심을 향한 선전포고다. 만약, 공권력의 위협으로 국민적 저항이 움츠러들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오판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선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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