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왜 경제살리기 세미나를 여나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입력 2008. 3. 27. 09:15 수정 2008. 3. 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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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새 정부 코드에 동원세력 자처? 흉악범죄나 막아야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경찰청(청장 어청수)이 불법집회시위 엄단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살리기'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경찰청은 26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경제살리기와 법질서 확립 세미나' 주최했다.

경찰청, 난데없이 '경제살리기' 세미나 개최…상공회의소서 열려

▲ 어청수 경찰청장.

주최측 대표인 어청수 경찰청장은 개회사에서 "선진 일류국가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것도 모두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올해를 '법질서 확립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함께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대응방식을 종전의 질서유지에서 법집행 차원으로 전환해 관련법과 제도의 개선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어 청장은 특히 "현장에 맞는 장비와 전술을 개발하는 등 집회관리의 전문성·책임성과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경제살리기'라는 말은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왔던 핵심 키워드다.

불법시위 질서 낭비 등 아끼면 GDP 3% 성장한다?

경찰은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과거 백골단을 연상케하는 체포전담반 설치를 추진하고, 시위 진압에 전기충격 진압봉까지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집회 시위대 및 파업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반면, 경찰은 왜 이들이 집회시위 현장에 나서는지,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뭔지, 이같은 행동을 이끌어낸 또다른 불법과 부조리, 부당함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 오로지 집회시위라는 행위 자체만을 엄히 다스리겠다는 태세다.

이랬던 경찰은 왜 경제살리기라는 말까지 내세우면서 집회시위 진압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일까. 이날 세미나에서 이상안 경찰대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경찰정책 집행상 범죄에 대한 처벌은 강제적 방법으로, 기타 행정목적은 설득·유인·경쟁방법으로 갈등을 완화시키고 안정성을 높여야 경제를 살리는 '법질서 SOC(사회간접자본)'가 될 수 있다.…불법시위 사회비용 6조4000억원 감소, 주요 질서낭비비용 28조 4천억원 절약, 범죄로 인한 비용 23조 감소 등을 통해 GDP 3% 성장이 가능하다."

잇따른 경제살리기 캠페인에 경찰도 '동원' 자처…민생치안이나 신경써야

불법시위와 질서낭비, 범죄 비용만 아끼면 GDP 3%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앞서 지난 2006년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불법 집회와 시위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12조3190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놨었다. 지난 19일엔 이명박 대통령마저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법과 질서만 제대로 지켜주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 올라간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시민단체나 인권단체의 비판이나 반박은 한마디 언급도 없이 정부와 경찰은 집회 시위를 악으로 몰아가기 위해 이런 일방적 데이터를 인용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 중 경찰과 법무부, 이명박 정부의 집회시위 엄단 방침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이나 전문가는 한명도 포함돼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가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경제살리기 캠페인에 경찰까지 이런 식으로 나서는 건 자신의 직무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집회 시위 등 시국에 대한 치안보다 안양초등생 살해사건, 부녀자 일가족 살해사건 등 최근 빈발하고 있는 흉악범죄 사건조차 경찰은 제때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새 정부의 국정목표가 경제살리기이니 경찰이 나서서 동원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법질서를 지키면 '경제살리기'가 된다는 억지 논리를 들이대며 세미나까지 개최하면서 말이다.

경찰 "우리도 공무원인데 경제살리기 국정목표 동참해야"

경찰청 경비과 김준철 경정은 "법질서를 확립하면 경제살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에서 주최한 것"이라며 "절대 강경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쌓기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질서 지키면 경제살려지나'는 질문에 김 경정은 "A테마와 B테마가 연결된 건 아니지만 학계와 재계 노동계가 함께 논의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살리기가 새 정부의 모토이기 때문에 경찰이 동원되는 걸 자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공무원인데 (경제살리기라는) 국정목표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경찰의 행보는 제 업무의 우선순위가 뭔지를 모르는 사치스런 행위로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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