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보다 더한' 언론사 수습교육

2007. 4. 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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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6일 새벽 2시께 한 언론사의 수습기자인 ㄱ(28)씨는 선배 ㅅ(31)씨한테서 폭행을 당했다. 눈과 코를 얻어맞고 새벽에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가 치료를 받은 ㄱ씨는 "선배 기자의 폭행으로 코뼈가 부러져 4주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선배 기자인 ㅅ씨는 먼저 폭행한 쪽은 후배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후배가 먼저 때려 눈 밑이 4㎝쯤 찢어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폭행 혐의로 서로 맞고소한 상태다.

선배 기자와 수습기자 사이에 이런 주먹다툼까지 빚어진 것은 강압적인 수습기자 교육 방식이 발단이 됐다. ㄱ씨가 술자리에서 수습기자 교육 방식에 대해 ㅅ씨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것이 다툼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선배 기자들이 수습기자 6명이 있는 자리에서 '예전에는 선배가 시키면 여자들도 속옷만 남기고 다 벗고 그랬다', '옷 벗으라면 벗고, 까라면 깠다' 등의 말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수습 교안을 보면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 혹은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든가 "사건팀 수습의 생살여탈권은 전적으로 담당 팀장과 1진 선배에게 있다. 토 달 생각 하지 마라"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이런 교안이나 선후배 사이의 물리적인 폭력 사태는 언론계에서 드문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수습기자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긴장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언론계의 수습 교육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 수습기자는 업무 처리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추위 속에서 가방을 메고 온종일 경찰서 정문에 서 있는 벌을 받았다. 한 언론사에서는 수습기자에게 10분 단위로 반성문을 쓰도록 하고 시한 내에 완성하지 못하면 그 이유를 다시 쓰도록 하는 식으로 한꺼번에 다섯장 이상의 반성문을 내리 쓰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언론사 수습기자가 공개한 선배와의 통화 녹음 내용을 들어보면, "××놈아, 장난하냐? ×××야.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너 죽을래? 이 ×××야…"란 말이 쉴 사이 없이 이어졌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언론사의 수습기자는 "다른 언론사 수습기자들이 다 있는 곳에서 선배로부터 전화를 통해 큰 소리로 욕을 들었다"고 말했다.

권위적이고 단편적인 교육 과정에 지친 수습기자들은 선배들의 교육 방식을 풍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 3월1일 '수습 '일진놀이'를 하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한 수습기자는 수습들끼리 모여 권위적인 선배(일진)를 흉내내는 놀이를 풍자하면서 선배에게 야유를 보내 언론계에 화제를 낳았다.

오의석(회사원·34)씨는 "기자들은 사회 전반의 모순과 폭력에 대해서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송곳처럼 파고드는 집단으로 생각해 왔는데, 정작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둔감할 줄 몰랐다"며 "수습 기자들부터 건전하게 성장해야 이들이 앞으로 쓸 기사도 건강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남재일 한국언론재단 상임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언론사의 수습기자 교육에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고 인권 침해적인 요소도 있다"며 "수습기자를 강압적으로 다루어 단기적인 교육효과를 노리는 도제식·군대식 교육에서 벗어나 심층정보 중심으로, 언론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춘 새로운 교육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태 기자, 노현웅 김지은 최원형 수습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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