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으로 점철된 국민과의 대화

2009. 11. 2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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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하면 태풍·홍수 다 없어진다?…"지나고 나면 다 찬성하게 될 것"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27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통령과 대화는 시종일관 궤변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거듭 강조하는데 그쳤다. 국민 여러분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나중에 모두 이해하게 될 거라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견강부회와 자가당착적 논리로 가득 찬 이 대통령과의 대화는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기는커녕 답답함만 배가시켰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수질 오염 논란과 관련, "환경 망치는 걸 뭐하러 하겠느냐"면서 "알면서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모르면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고 반대 의견을 평가절하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를 할 때도 반대가 많았고 청계천 할 때도 그랬다"면서 "그런데 완공하고 난 다음에는 다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전형적인 MB식 소통 방식이었다.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했던 사람들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도 지나친 단순 도식화지만 청계천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찬성한다고 단정짓는 것은 이 대통령의 상황판단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를 한다니까 수질이 나빠진다 뭐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지만 완성되고 나면 아 이렇게 하자고 정부가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밤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예산 20조원은 해마다 드는 홍수피해 복구비용 4조원의 5년 분량 밖에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강 바닥을 파내고 보를 쌓으면 홍수피해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인데 홍수 피해의 대부분은 4대강이 아니라 4대강의 지류와 하천에서 발생한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말한 4조원은 전국의 태풍과 호우 피해를 모두 더한 것이다. 4대강만 정비하면 전국의 태풍과 호우가 다 사라질까.

"4대강을 복원 시킨 뒤 다음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하는 것"이라며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고집도 꺾지 않았다. "내가 대운하 한다니까 국민이 날 뽑아줬다"면서 "그런데 반대가 커서 생각을 바꿨다"고 밝혀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아연 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토목이 나쁜 일이냐", "비하할 게 아니다", "그럼 토목공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배우는 것이냐"면서 자신의 전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자감세 논란에 대해서는 "기업 하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 안 할 것 같다"면서 "잘 아니까"라고 덧붙였다. 잘 모르니까 이런 질문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 욕하는 사람들이 대기업 취업하려고 하고 미국 욕하면서 미국 가겠다고 한다"면서 반기업 정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자감세에 대한 논란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나는 친 시장적이 아니라 친 일자리적"이라면서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기도 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감세를 통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지론을 강조한 셈인데 정작 그 효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투자 활성화를 위한 것이고, 세계 기업들만큼 경쟁력을 갖추게 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일자리가 없다는 시민 패널의 질문에는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라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에 가면 실망스러운 일도 많겠지만 경험할 것도 많다"면서 "그런 경험을 쌓아 더 좋은 직장에 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고 중소기업의 노동조건 개선과도 관련된 문제지만 이 대통령은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았다.

이라크 파병이 국제적 의무라는 궤변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을 둔 시민 패널에게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에 물건을 팔고 있지 않나"면서 "물건만 팔고 남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고 그래야 제품 값도 올라간다"고 답변했다. 이름만 평화유지군일 뿐 미국의 침략전쟁에 들러리를 서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제품 값 올라가는 것으로 이를 정당화했다.

이날 최대 쟁점이었던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선 과정에서 이를 약속한 사실을 시인했으나 "세계 어떤 나라도 수도 분할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원안 수정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정부기관 이전에 반대하는 논리는 "대통령 혼자 서울에 있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는 것, 또한 "상당수 공무원들이 이사는 안 가고 출퇴근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 정도였다. 애초에 정부기관 이전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공무원들을 설득할 의지가 없음을 시인한 셈이다.

"현재 20개 부처가 보여 있는 과천 정부청사는 20만평 대지 위에 있다"면서 "9개 부처가 옮긴다면 9만평이면 될 텐데 2200만평 대지를 정부가 샀다"고 지적한 대목도 궤변이다. 세종시는 단순히 정부기관을 몇군데 옮기는 것 뿐만 아니라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수도의 기능을 분산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단순히 정부청사 면적을 두고 비교하는 것은 정부기관 이전의 효과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세종시 논란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정부기관이 움직여야 기업이 움직이고 돈이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정부기관은 모두 서울에 남겨두면서 "있던 것을 보내지는 않겠다, 새로운 것을 내려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애초에 세종시의 기본 철학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면서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할 아무런 의지가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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