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화 그리고도 안 잡혀가나요?

2015. 5. 1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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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인터뷰] 박순찬 경향신문 화백, "여자 박정희? 난 대통령을 잘 그려주는 사람"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20년 전, 26살 청년의 손에서 '진리의 장도리'가 탄생했다. 경향신문 4단 시사만화 '장도리'가 1995년 2월6일 첫 선을 보인 이후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박순찬 화백과 장도리는 한국의 20년사를 지켜봤다. 장도리가 비껴간 성역은 없었다. 미디어오늘이 창간 20주년을 맞아 '장도리'의 창조자 박순찬 화백을 만났다. 박 화백은 "장도리 연재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김종배 기자(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가 만화평론을 잘 써줘서 큰 힘이 됐다"며 20년 전 일을 떠올렸다.

극화를 꿈꾸던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향신문에 취업,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단 시사만화 '장도리' 연재를 시작했다. "그 때 세대교체 분위기가 있어서 언론사도 젊은 이미지를 심어야한다는 흐름이 있었다. 오래할 생각은 안 했다. 잠깐하고 극화를 하려고 했는데 하루하루 연재하다보니…." 그는 그렇게 26세에 '화백'이 됐다. "황당했다"고 했다.

사원주주회사인 경향신문은 입사당시만 해도 한화그룹 소유였다. 박 화백은 "경향이 한화소유였다면 아마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위주의 논조로 흘러갔을 거다. 한화 시절에는 사실 제약이 많았다. 만화에 재벌이라고 쓰면 대기업으로 바꾸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원주주 회사가 되는 과정에선 부침이 많았다. "황우석사건(2005) 당시만 해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신문에 국가주의 관점의 칼럼이 실렸을 때 장도리는 PD수첩 제작진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한화 시절에는 장도리 제약 있었다""디지털시대, 장도리 진보적으로 변화"

▲ 박순찬 경향신문 화백. ⓒ박순찬

20년 동안, 경향신문과 함께 언론환경도 격변했다. 그는 "1995년 장도리 연재를 시작할 때만해도 납 활자를 쓰고 있었다"고 말한 뒤 "지금은 정보취득 방식 자체가 아예 종이에서 디지털로 넘어갔다. 텍스트보다 영상·소리·이미지처럼 감각을 중시하는 시대"라고 지적했다. 장도리는 디지털시대로 넘어오며 더욱 인기를 얻었다. 시대와 함께 호흡한 결과다.

"디지털시대 이전에는 독자의 반응을 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독자가 신문사 주변으로 한정돼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고의 틀도 좁았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에선 사고가 확장된 느낌이다. 더 많은 독자의 생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진보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통창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진보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장도리도 과거보다는 진보적이 된 것 같다."

'장도리'의 매력은 사회모순에 대한 압도적 은유와 촌철살인이다. 4컷 안에 현실의 모순을 절묘하게 묘사해낸다. 최근엔 '꿈·껌·끈·꽝' 단 네 글자로 4컷을 완성했다. 이완구 총리 낙마를 '꽝'으로, 억압받는 자유와 인권은 사람을 묶어놓은 '끈'으로, 박근혜정부의 공약파기는 쓰레기통에 뱉는 씹던 '껌'으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의 유신시절은 '꿈'으로 그렸다. 이 정도면 '접신'의 경지다.

정작 당사자는 겸손하다. "시사만화는 매일매일 현실을 날것으로 다루는 매력이 있다. 요리로 치면, 화려하게 양념과 기술을 동원하지 않고 좋은 재료를 잡아 바로 회로 뜨는 식이다. 신문 연 재 만화는 사회의 거시적 개괄을 우리 사회가 이런 식이다, 라고 거칠게 보여준다. 이 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장도리에 공감하고 위안을 얻는 것 같다.

▲ 박순찬 화백이 꼽은 'BEST 장도리'. 장도리는 4컷 만화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응축해왔다. 무려 20년 동안.

"내 손 물었던 전·의경 어머니에게 감사""장도리 소재, 노무현정부에서 가장 다양했다"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장도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패러디해 "우리는 미국소가 싫어요"라는 컷과 전·의경이 시위참가자를 때리는 컷을 그렸다. 그러자 전·의경 부모님들이 경향신문에 찾아와 항의했다. "많이 배우고 반성 했던 경험이었다. 우리사회는 굴곡진 역사에 의한 트라우마가 있다. 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도 트라우마가 전해 내려온다. 세심하게 생각해야 한다. 잘못하면 아픈 상처를 건드릴 수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면 역효과가 난다. 그 때 한 어머니가 내 손을 물었는데, 지금도 그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는 20년 간 문민정부부터 박근혜정부까지 다섯 번의 정부를 경험했다. 가장 다양한 소재를 다뤘던 시기는 노무현정부였다. 소재가 한정되고 있는 시기는 박근혜정부라고 했다. "노무현정부는 권위주의가 해결된 시대라 평가할 수 있는데, 권위주의 문제에 대해선 만화로 그릴 일이 줄었다. 그래서 자본권력의 문제나 그동안 다루지 못한 사회적 모순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었다."

지금은 다시금 과거의 권위주의문제를 다루면서 다른 소재를 많이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박 화백은 "2012년 대선 때만해도 경제민주화 요구가 많았지만, 지금은 경제민주화를 얘기를 할 만한 여유가 없는 시기다. 장도리도 박근혜정부 들어오며 소재가 한정되고 있다. 다른 이슈를 다루면 한가하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장도리는 박근혜정부의 문제를 고스란히 4컷에 담아낸다. 국가정보원에 끌려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장면도 있다. 하지만 2년 전 공권력의 경향신문사 '침탈' 사건 외에는 다행히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었다. 박 화백은 "대통령이 군사독재시절 통치방식을 연상시키는 행동을 할 때는 얼굴에 남성적인 면을 강조한다. 대통령이 봤을 때는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장도리는 당사자가 봤을 때 기분 나쁘게 그리지 않는다. 필요이상의 비하는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굉장히 대통령을 잘 그려주는 사람"이라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 2014년 출간한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 모음집 '세월의 기억'.

"풍자의 당사자도 공감해야살아있는 만화다"

그가 추구하는 시사만화는 '풍자의 당사자도 좀 찔리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만화'다. "아무래도 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만화다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호불호가 정체되면 죽은 만화다.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면 아무 의미 없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계속 바뀌어야 한다.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풍자 대상이 봤을 때도 공감해야 살아있는 만화다."

그는 "환자에게 아프지 않은 주사를 놓는 것이 실력 있는 의사"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박 화백의 철학에 기반한 장도리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공유된다. 극우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게시판에도 장도리가 올라온다. 박 화백은 "일베 친구들이 옛날에 노무현정부를 비판했던 장도리를 모아 올리면서 장도리가 애국보수라고 주장하더라"며 웃었다.

▲ 박순찬 화백이 꼽은 'BEST 장도리'. 장도리는 4컷 만화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응축해왔다. 무려 20년 동안.

장도리 20년, 그의 화두는 미디어오늘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진보'였다. 그는 "대학과 언론만 제대로라면 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한국 언론이 해외언론처럼 정치적 노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기술의 방향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기술의 방향은 개인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 지금 우리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소수다. 물결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결국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가 중요하다."

박 화백은 첫 마음 그대로 장도리를 그려나갈 생각이다. "예전에는 검열이 심해 시사를 다루기 어려웠다. 심의필 도장이 찍혀야 했다. 못 사는 나라처럼 보여선 안 된다며 천장에서 쥐가 떨어지는 장면도 삭제되는 시대였다"고 회상한 뒤 "과거보다 시대가 좋아졌다. 지금은 모든 만화에서 시사를 다룰 수 있다"며 후배들이 시사만화를 많이 다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말년 시리즈에도 시사가 들어간다. 장르적으로 시사만화와 만화를 나눌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박순찬 화백과 장도리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만화전시회를 기획중이다.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2009), <나는 99%다>(2012), <5·16공화국>(2013), <세월의 기억>(2014) 등 한 해를 관통하는 장도리 묶음집도 계속 펴낼 계획이다. 박 화백은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면 아예 생각을 비워버린다고 했다. 그러면 내용이 잡힌다고 했다. '힘들수록 마음을 비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전이다. 언젠가는, 박순찬의 만화가 즐거운 유머로 가득한 날이 오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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