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광고에 나온 임시완, 장그래의 배신?

2015. 3. 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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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 살리기'의 이중성… "정규직 과보호 안 된다"는 '노동시장 개혁' 홍보 대사로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미생> 장그래가 고용노동부 모델이 되어 박근혜정부의 '노동시장개혁' 홍보에 나섰다. 지난 19일·20일자 신문지면에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역을 맡았던 황정민씨와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역을 맡았던 임시완씨가 고용노동부 광고에 등장해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장그래 광고를 통해 박근혜정부의 청년일자리정책, 나아가 비정규직 대책이 갖는 치부와 한계를 감추려 하고 있다. 이미지는 문장보다 강렬하다.

이 광고에서 임시완씨는 "비정규직 차별과 남용이 없는 사회, 우리 청년들이 더욱 일할 맛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에서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개혁이나 비정규직종합대책 등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는 떨어뜨리는 정책으로, 수많은 장그래를 양산할 우려를 낳고 있다. 임시완씨는 본인이 연기를 통해 얻은 비정규직 노동자 장그래의 사회적 상징성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전유하며 여론의 비판이 불가피해졌다.

2014년 12월 박근혜정부는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55세 이상 파견 허용업종 전면 확대 △직무·성과급 중심 임금 개편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뼈대로 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장그래법'이라고 홍보했다. 이 홍보전략은 당장 '장그래 확산법'이란 조롱을 받았고, 지난 18일 노동·시민사회·청년 단체가 모인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출범의 계기가 됐다. 장그래 광고가 운동본부 출범 다음날인 19일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조선일보 3월 20일자 1면 광고.

얼마 전 중동에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대한민국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라.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말하며 청년의 해외일자리창출을 강조했다. 1400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에서 독일로 떠나 '산업역군'이 되는 덕수(황정민 분)와 묘하게 겹치는 장면이다. 고용노동부 광고는 장그래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덕수처럼 해외로 나가 외국인노동자로 일하라는 메시지도 함께 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임시완씨가 가진 장그래 이미지를 이용해 '노동시장 개혁'이란 정부정책을 호도하고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노동시장 개혁'은 노동자를 좀 더 쉽게 해고하고,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의 최소화를 뜻한다. 장그래가 행복할 수 없는 변화다.

일례로 고용노동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이 미도입 사업장에 비해 30세 미만 청년층 신규 채용 비율이 높다며 임금피크제가 청년층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다고 주장한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은 보장하는 제도로 알려졌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임금피크제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안대로 정년 60세를 의무화해도 권고사직 등에 대한 보호대책 없는 정년연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와 경총은 "정규직 과보호로 기업 부담이 늘어나 청년을 뽑을 수 없다"는 논리로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 노동부 논리대로라면 <미생> 오과장·김대리도 과보호의 대상이며, '저성과자'로 해고될 운명이다. 장그래가 바랐던 변화는 아니다.

지난 19일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 각 정부부처에서 추진한 41개 청년일자리사업 참가자 57만 593명 중 청년(15~29세)은 2112명으로, 참여율이 0.37%에 불과했다. 감사원은 "노동부는 청년 일자리 사업 평가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중장년층 위주 사업을 청년일자리사업으로 분류하는 등 사업목적 달성이 곤란해졌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장그래를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등장한 청년일자리 정책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용노동부는 2010년 4582명의 비정규직을 채용했는데, 이들 중 고용이 승계된 이는 무기계약직 전환 21명, 재고용 43명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가 말하는 '노동시장 개혁'의 실체다.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은 11.1%로 1999년 7월 이후 15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년 해외취업자를 지난해 5000명 수준에서 2017년 1만 명으로 늘리겠다"며 대통령 발언에 화답했지만, 청년들에게 당장의 화두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선 "노사 자율로 결정해야한다"며 회피했다. 고용노동부 광고를 장그래의 배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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