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요리'를 긴급뉴스로 만든 한심한 한국의 '자유언론'
[윤성한의 닥치는 대로 뉴스] '자유언론실천재단' 출범을 맞이하여, 위축된 한국의 언론인들에게
[미디어오늘 윤성한 논설위원]
얼마 전,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가를 위해 남쪽에 온 북한 권력자들이 "장어요리를 특히 잘 먹었다"는 소식이 한 종편채널에 긴급 '뉴스속보'로 나왔다. 한국 언론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해당 종편의 기자와 뉴스 편집진들이 '맛이 살짝 간 게' 아닐까 할 정도로 한심한 뉴스였지만, 언론자유가 '만개'(?)한 대한민국에서 방송뉴스를 구워먹든 삶아먹든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시청자의 흥미만 끌 수 있다면, 시시껄렁한 잡스러운 소식도 긴급속보로 둔갑시켜야 하는 언론계의 세태가 대한민국 언론의 왜곡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에 씁씁한 뒷맛이 남았다.
|
||
'장어요리' 소식을 뉴스속보로 만든 종편채널 채널 A | ||
독재 국가가 아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언론의 핵심 역할과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이는 민주주의란 정치 시스템 유지의 필수요소라는 저널리즘의 당위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시청자나 독자들의 관심을 모아 광고주에게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자본주의 언론의 생존과 시장경쟁력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다수 한국의 언론들은 이런 핵심 기능은 점점 퇴화하고 있는 반면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방송사업자들만 봐도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만 해도 손가락 10개를 사용해 그 숫자를 헤아려야 한다.
이처럼 치열해지는 시장경쟁 하에서 본연의 기능에 집중해 매체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의 언론사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청와대 등 집권세력을 등에 업으면 고위 임원에 등극하고, 이런 세태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게 한국언론계의 현실이다.
그런 탓에 한국언론계는 속에서부터 얼어붙었다. 대표적으로 언론사의 법률적인 견제장치이자 세력인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되어 있다. MB정권 시절에 정권과 싸우다 해고, 좌천 등의 피해를 보자 노동조합 소속 언론인들은 싸울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다. 겁도 먹었다. 노조간부들도 조합원이 위축되어 있으니 싸울 엄두가 나질 않는다. 노조 간부들이 위축되니 조합원들은 더욱 조심스럽다. 정권의 탄압이나 인신구속 등 언론자유의 제약이 폭압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한국의 언론인들은 이미 자기검열과 무기력이란 악순환에 빠진 상태다.
한국의 언론자유가 위축일로를 걷고 있으니 한국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해방이후 '백색테러'의 상징인 서북청년단의 이름이 등장하는 사회분위기가 됐다. 검경 등 권력기관의 감시소식에 놀라, 사람들은 '텔레그램'으로, 'G메일'로 사이버망명을 떠나고 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언론자유실천 40주년을 맞은 2014년 10월 7일, 자유언론실천재단이 정식으로 출범한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자유언론실천재단에는 다수의 언론현업인들은 물론 언론단체, 노동단체, 시민단체 인사들과 원로 언론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한국언론운동계의 인사들이 총 망라돼 참여하는 단체가 출범했다고 볼 수 있다.
|
||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설립 결의서에서 "지금 언론이 불신을 넘어 저주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시민들은 주저없이 언론인을 쓰레기라 부르는 이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언론은 공정해야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내려놓을 수 없다"며 "권력과 자본의 채찍이 아무리 가혹해도, 당근에 길들여진 거짓언론을 깨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결코 좌절하거나 냉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밝히고 있다.
1974년 10월 24일,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가혹하고 엄중한 탄압과 감시 속에서도 '언론자유실천선언'을 하며, 언론의 자유를 위해 일어났던 사람들이 한국의 언론인들이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장어특종' 따위의 뉴스가 긴급뉴스로 둔갑하는, 쓰레기를 만들 '언론자유' 말고 권력에 진짜 할 말은 하는 그런 '언론자유'를 지금의 언론인들이 만들어 가야하겠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