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막판까지 기싸움

2009. 6. 2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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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동계 "800원 인상" 경영계 "160원 삭감"

25일 최종 협의…"결정방식 개선" 목소리도

"물가도 오르기만 하는데, 최저임금은 깎자고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청소 용역을 하는 김순이(55·가명)씨는 23일 한숨을 쉬었다. 그는 주 44시간을 일하고, 월급 94만5000원을 받는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4000원을 조금 넘는 돈을 손에 쥐는 건, 그나마 노조가 있어서다. 김씨는 "용역업체가 보통 최저가로 입찰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수준에서 월급이 결정된다"며 "내년에 월급이 줄면, 작은애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김씨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내년 '살림살이'를 좌우할 2010년 최저임금액이 오는 25일 결정된다. 하지만 올해 경영계가 1988년 최저임금제도 시행 이래 처음으로 '삭감' 안을 들고 나와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24일부터 서울 강남구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일 계획이다.

노동계는 올해보다 시간당 1150원(28.7%) 올린 5150원을 제시했다가 4800원으로 800원만 올리자고 요구 수위를 낮췄다. 이찬배 민주노총 여성연맹 위원장은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도 뒷받침하고, 서민경제를 살려내 내수 활성화로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올해보다 230원(5.8%)을 삭감한 3770원을 내놨다가, 160원 깎자는 수정안을 낸 상태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팀장은 "그동안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 기업들이 경영 어려움 때문에 고용을 보장하기 어렵게 돼 삭감 안을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총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실업 등 고용이 얼마나 위협받는지를 보여주는 최근 통계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등은 "금융위기에 따른 내수 침체와 소비 악화로 중소기업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최저임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상승이 경기 부양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노동계는 제시한다. 지난 5월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가정을 돕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단순한 정책은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학자들도 "최저임금을 1달러 올리게 되면, 매 분기 800만달러 이상의 소비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해 노동자 가구의 소득은 전적으로 임금에 의존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의 하락은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져 내수 진작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기업이 경제구조의 최소한의 기본인 최저임금마저도 주지 못한다면 사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라며 "최저 임금 인하보다는 경영진의 혁신이나 생산성 향상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노사가 '인상률'이나 '인상이냐, 삭감이냐'을 놓고 해마다 대립을 되풀이하는 현행 최저임금의 결정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공익위원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최저임금이 결정되고, '중재자'로서 조정하는 모습은 드물었다는 것이다. 2006~2008년 공익위원을 맡았던 윤정열 이화여대 교수(사회과학부)는 "공익위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합의할 만한 최저임금 수준을 모색하지 못한 채, 양쪽의 합의를 이루게 하는 데 머물곤 했다"고 말했다.

이완 이정훈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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