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예 계약서'에 또 눈물

입력 2008. 10. 24. 08:31 수정 2008. 10. 2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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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파견업체, 노동자들 월급 30% 가까이 떼어가"

병원, 나몰라라 하며 고용·임금 물밑주도 '의혹'

"1년에 두세 차례 얼굴 비추는 파견업체가 내가 손에 쥐는 월급의 30%나 되는 돈을 가져갔다니 기가 막힙니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9월30일로 계약 해지된 파견 노동자 홍아무개(36)씨는 23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실이 입수한 강남성모병원과 ㈜메디엔젤의 '근로자 파견 계약서'를 보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홍씨의 올해 8월치 월급 총액은 178만5789원이다. 고용보험료·소득세 등 공제액 14만여원을 빼고 164만4809원을 손에 쥐었다. 파견업체인 메디엔젤이 병원으로부터 235만700원을 받아, 월급 총액과의 차액 56만4911원을 챙긴 것이다. "파견업체 사람들은 계약서 쓸 때랑, 명절 때 두세 차례 얼굴 본 것뿐이에요."

홍씨는 2004년 3월 병원에 시간제 노동자로 입사해 환자 이송, 수술 전 관장 등 간호 보조 일을 해 왔는데, 2006년 10월 병원이 이 업무를 파견업체에 넘기면서 소속이 변경됐다. 당시 "월급을 올려 줄테니 파견업체로 가라"고 했던 병원은, 이번에 "파견 허용 기간인 2년이 끝났다"며 계약을 해지했다. 홍씨처럼 2년~6년씩 병원에서 일해오다 일자리를 잃28명은 파견업체가 다달이 50만~70만원씩을 떼어간 것에 분노했다.

이에 대해 메디엔젤 직원은 "관리자 급여 등을 빼면 파견 노동자 한 사람당 회사에 남는 돈은 3만원 남짓뿐"이라고 해명했다. 4대 보험료(13만~15만원), 복리후생비(1만5천원) 등 각종 공과금을 비롯해 10% 부가가치세, 본사 관리자의 급여·관리비 5만~6만원을 빼면, 회사 이익금은 3만원 가량이라는 설명이다. 노동부 차별개선과 관계자는 "파견업체들은 통상 파견 대금을 100만원 받으면 82만원 가량을 근로자에게 실제 임금으로 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작성된 근로자 파견 계약서에 '3·4년차 파견 대금 항목'이 명기돼 있어 눈길을 끈다. 1년차(199만원), 2년차(228만원), 3년차(235만원), 4년차(241만원)의 파견 대금이 따로 책정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새로 작성된 계약서에는 '3·4년차 항목'이 없어졌다.

파견근로자법에 따라 2년 이상 일한 파견 노동자는 직접 고용해야 하므로, 3·4년차 파견 노동자는 있을 수 없다. 이 병원의 이영미 비정규 노동자 대표는 "파견업체로 옮기기 전 직접 고용됐던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은 "강남성모병원이 '파견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병원이 실제로 이들의 고용·임금·신분 변동을 주도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앞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파견이 금지된 간호 보조 업무에 파견 노동자를 쓴 것부터 불법 파견"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홍 의원은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 황태곤 강남성모병원장을 증인으로 불러,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파견 노동자들을 집단 계약 해지했는지 등을 따질 예정이었으나, 황 원장이 수술 일정 등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국감에서 홍 의원이 강남성모병원의 '불법 파견' 의혹을 지적하자,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불법 파견 여부를) 재조사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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