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10만원 장애인 보호작업장, 자활 꿈도 못꿔

윤주영 2016. 2. 17.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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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2급장애인 조모(40ㆍ여)씨는 10년간 서울 A보호작업장에서 사무용 파일에 ‘쫄대(플라스틱 재질의 긴 막대)’ 끼우는 작업을 했다. 조씨가 한 달에 100시간 넘게 일하며 번 돈은 10만원 정도. 실적이 낮은 달에는 고작 2만원을 받은 적도 있다. 결국 고된 노동 강도와 낮은 급여에 시달리다 지난해 9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조씨는 16일 “교통비와 점심 식대만 해도 월 50만원 가량 드는데 턱없이 부족한 임금으로 매달 적자가 났다”며 “오히려 작업장 이용비 명목으로 한 달에 4만5,000원을 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중증장애인(장애등급 1~3급)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보호작업장’이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크다. 장애인들은 뒤떨어진 근로 환경과 낮은 처우에 신음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보호작업장은 직업 적응 능력이 떨어지는 중증장애인에게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시설. 1986년 처음 만들어져 현재 전국에서 477곳이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이 곳에서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복지사 지도 하에 포장 등의 일을 하며 그에 상응하는 임금도 받는다.

그러나 장애인 복지사업의 한 축이라는 평가와 달리 보호작업장의 임금 실태는 끔찍한 수준이다. 지난해 6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도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및 판매시설 운영실적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보호작업장에 종사하는 1만2,900여명의 근로장애인 가운데 39%(5,048명)가 월 1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월급도 24만원밖에 안 된다. 주당 25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당시 월 최저임금(54만7,05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중증장애인들이 바닥 수준의 임금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직업재활시설 관계자는 “장애인 10명 중 8명이 ‘훈련생’ 신분이라 임금에 대한 법적 기준 자체가 없는 데다, 업무능력이 우수해 4대보험 혜택을 받는 ‘근로자’가 돼도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적용 제외 대상자’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노동 조건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한 지적장애인 근로자의 보호자는 “먼지가 항상 날리는 공장이 대다수인데 변변한 환기장치가 구비된 곳은 거의 없다”며 “보호자들이 공기청정기나 대형청소기 구입을 계속 건의해도 예산 문제를 이유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보호작업장 업무가 대부분 단순ㆍ반복 작업이어서 직업훈련을 받아도 일반직장에 취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지적장애 1급인 박모(26)씨는 고교 졸업 후 쳇바퀴 돌 듯 보호작업장을 옮겨 다니며 월 18만원 정도를 벌고 있다. 교통비와 식대는 자비 부담이다. 박씨처럼 성인이 된 뒤에도 보호작업장을 전전하며 ‘적자 인생’을 이어가는 장애인이 태반이다. 남용현 장애인고용공단 정책팀장은 “보호작업장 출신 장애인이 일반 직장을 구하는 비율은 5% 미만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보호작업장 측도 할 말은 있다. 서울 B작업장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만든 물품을 팔아 번 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데 포장 등 단순 제조 작업으로는 많은 수익을 내지 못한다”며 “30명 이상의 장애인에게 월급을 주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고 푸념했다. 현재 보호작업장의 관리ㆍ감독은 복지부가 맡고 있지만, 운영은 지방자치단체 소속 기관이나 민간이 담당한다. 지자체에서 일부 운영비와 복지사 인건비를 보조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하지 않는 한 저수익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도 중증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임금 착취를 감안해 보호작업장 폐쇄를 권고한 상태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2017년부터 최저임금 감액제도를 도입, 업무 능력에 따라 최저임금과 연동한 임금 지급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평가 시스템과 재원 부담 주체, 장애인 신분 규정 등 구체적인 밑그림은 여전히 그려지지 않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도 보호작업장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상반기 내에 용역을 발주해 세부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장애인 입장에서 보호작업장은 일반인처럼 노동력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직장과 같다”며 “근로 의지가 있다면 기본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주영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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