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식 '노동개혁', 노동계는 '양보'할 게 남아 있나

2015. 8. 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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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노동자 집단을 '이기주의'라 비난하지만OECD 최하위 수준의 노동안정성비정규직 양산·차별한 건 정부·대기업차별 시정·사회안전망 확충 등노동계의 요구엔 의지도 관심도 없어그래서 다시 물어야 한다"이기적인 건 누군가…우린 어떻게 될까"

한국노총이 26일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복귀를 결정했습니다. 복귀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복귀를 하면 노사정위는 4월8일 이후 대략 5개월 만에 다시 협상 테이블을 열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팔을 걷고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편'도 탄력을 받게 됐네요.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올해 하반기 최대 과제를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슈는 생각 외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오랜 기간 차곡차곡 진행됐기 때문에 파편화한 이슈를 따라잡기가 힘듭니다. 이슈의 프레임이 주로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조의 이기주의 대 노동을 '개혁'하려는 정부·기업의 싸움'으로 짜여 있어 다수 노동자와 청년 세대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합당한 걸까요? 더 친절한 기자들이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이 프레임 바깥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 "정규직 '특권' 없애자"는 정부와 기업

노사정위가 노동시장 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꾸려서 이른바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한 건 지난해 9월19일부터입니다. 지난해 3월부터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며 정규직 보호를 합리화하겠다"며 밝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일환입니다. 노사정위는 대통령 자문 기관으로, 노동계와 사용자(기업), 정부 3자가 노동과 산업 정책을 협상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입니다. 애초 상설기구였지만, 2007년부터 의제별로 회의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변경됐습니다. '노동시장 구조개선특별위원회' 역시 노동시장 구조개편과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의제를 두고 구성된 1년 기간 회의체입니다.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논의하는 이번 노사정위의 기본 임기는 9월18일까지라는 말이 되겠지요. 물론 노사정이 합의할 경우 임기는 1년 더 기간이 연장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사용자가 추구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핵심은 '과보호되고 있는 정규직의 특권을 없애자'는 명제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사용자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핵심 쟁점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등 고용유연성 제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을 핵심 쟁점으로 내세워 왔습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 때 밝힌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말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라면, "정규직 보호를 합리화하겠다"는 말이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등 고용유연성 제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가 되겠지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여론몰이를 해왔던 '임금피크제 도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라는 의제를 표면화하기 위한 첨병 같은 쟁점이었습니다.

■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하겠다더니…

일단 이 쟁점들을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는 한국 사회 노동 문제의 핵심입니다. 고용노동부 통계상 2015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601만2000명입니다. 노동 현장에선 비정규직이 850만~900만명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고용형태별 부가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정규직 노동자가 월 269만8000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은 월 130만5000원의 임금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사용자는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이상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놨습니다. 기간제와 파견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35살 이상이면 본인이 원할 경우 고용 기간을 현재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고, 32개 업종에만 허용된 파견 노동의 범위를 55살 이상 노동자와 고소득 전문직 등에게 대폭 확대하는 정책입니다.

기억하세요?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겠다'며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비정규직 보호법'을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노동계는 당시 기업이 2년의 사용 기간이 끝난 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해고하고 말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제도 시행을 강행했고, 2007년 당시 570만3000명이던 비정규직은 8년 만에 601만2000명으로 30만9000명 늘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 이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걸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를 위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겁니다.

이 대책의 보완책으로 '4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쓰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2년 연장 기간 동안 임금 총액의 10%를 이직 수당으로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비정규직 임금 월 130만5000원을 1년 임금으로 단순 추산하면 1566만원 정도가 나오는데요. 그러면 2년 연장 기간을 다 채워도 이직 수당이 313만원 정도입니다. "기업들로선 비정규직을 마음껏 쓰고 이직 수당을 지급하는 편익이 훨씬 크다"(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만든 제도를 시행한 노무현 정부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를 더 확대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대책은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로 포장된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상위 10%의 고임금에 60살 정년까지 보장받는 민주노총의 철밥통 기득권이 비정규직을 만들어내는 온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시행이 가져온 부작용과 사람을 쉽게 쓰고 쉽게 자르고 싶어하는 기업이 만든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을 왜 노동계가 오롯이 지고 노동계만 "양보"해야 하는 걸까요.

■ 비정규직 대책 비판받자 임금피크제로

이런 모순을 안고 있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노사정위 내부에서 공익위원들조차 "비생산적인데다 번지수도 잘못 짚었다"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정부와 사용자는 올해 초부터 다른 프레임을 제시하며 '노동시장 구조개편' 이슈의 주도권을 되찾아 오려 합니다. 그게 바로 '정년연장 연착륙을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이죠. 2016년부터 시행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노동자의 정년이 60살로 연장됩니다.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자는 이 법이 의무 적용되지요. 이 법의 시행을 계기로 정부와 사용자는 '기성세대 정규직이 임금피크제를 통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청년고용 문제가 풀린다'는 프레임을 내밀고 있습니다.

먼저 한국의 임금 체계부터 알아보죠. 한국의 대부분 기업은 연차가 늘면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요즘 호봉과 관계없는 성과급 체제를 운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호봉제를 운용하는 기업이 더 많습니다. 이 제도는 한 노동자의 평생에 걸친 공헌을 젊은 시절엔 상대적 저임금으로 보상하되, 오래 일하면 할수록 연공서열이 올라가면서 임금이 함께 늘어나 총체적인 보상을 완성하는 체계입니다. 그런데 임금피크제는 특정 '피크 연령'을 기점으로 서서히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입니다. 지금까지의 임금 체계를 뒤흔드는 제도지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모든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18만2339개의 청년층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예상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도 모든 기업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29살 이하 정규직 노동자 31만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그러니까 노동계가 '양보'해야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는 논리의 통계적 근거지요. 이 논리는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 경총과 전경련의 '뻥튀기'

그런데 다수 전문가들이 이 통계가 과도한 추산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경총과 한국경제연구원의 추산은 '모든 기업의 모든 노동자가 60살까지 일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 가운데 정년 이전에 조기퇴직한 노동자의 비중이 67.1%입니다. (김준 국회 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 박근혜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이던 방하남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이 대표 저자로 2010년 낸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근로생애 연구'라는 논문을 보면, 한국 노동자의 퇴직연령은 평균 53살(남성 55살, 여성 51살)이라고 합니다. 정년 60살을 채울 수 있는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 생산직은 전체 노동자의 8%도 안 됩니다. 8%도 안 되는 노동자를 100%로 추산하는 통계가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지요.

정부와 사용자, 보수 언론이 이걸 모를까요.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노동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하는 건, 결국 사회적 대타협을 빌미로 노동계의 상징적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함입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으로 수세에 몰린 '노동시장 구조개선' 여론을 노동계 쪽에 불리하게 돌리기 위한 의도도 다분히 담겨 있지요. 하지만 이 프레임은 효과가 좋았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8월 초 전국 만 19~34살 청년 5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청년 의식 조사'를 보면, 70.3%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찬성했습니다. '임금피크제로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75.3%가 부정적이라고 답했음에도 말이죠.

■ 우리만의 '선의'

이러면서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전문가들 분석대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해도 사실상 적용 대상이 소수에 불과하다면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서 양보할 건 양보하고 대신 다른 걸 얻어내자는 논리지요. 이런 주장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이 주장은 결과적으로 선의의 협상 카드가 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협상 대상인 정부와 사용자 쪽이 똑같이 선의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 '양보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자 마자, 정부는 한술 더 뜨고 나섰습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월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 노동시장도 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 임금피크제는 필연적으로 해야 하며, 아울러 업무 부적응자에 대한 공정한 해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업들이 청년을 보다 쉽게 채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업무 부적응자를 공정한 기준과 성과에 따라 공정하게 대우할 수 있어야 기업들의 투자와 맞물려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고용과 일자리 부분도 개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해석하자면,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양보를 받아냈으니 이제 '지금보다 더 쉬운 해고'도 양보해달라는 말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타협적 태도와 선의가 가져오는 결과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 '더 쉬운 해고'를 하겠다는 말

앞서 말씀드렸지요. 정부와 사용자가 "정규직 보호를 합리화하겠다"며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등 고용유연성 제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라고요. 여기서 '정규직 보호를 합리화하겠다'는 말은 정규직의 '특권'을 줄이겠다는 뜻입니다.

먼저 '사용자의 더 쉬운 해고'를 위한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등 고용유연성 제고' 쟁점부터 살펴보지요.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정당한 이유'에 대해 대법원 판례는 "사회통념상 고용계약을 계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용자는 이보다 '더 쉬운 해고'를 원한다며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정부와 사용자의 말처럼 한국은 해고가 어려운 나라일까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3년 기준으로 각 국가의 △고용보호 입법 △단체협약 △판례 등을 조사해 개별·집단해고 보호지수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의 정규직 노동자는 이 지수가 2.17로, 회원국 평균인 2.29보다 낮고, 34개 회원국 중 22위로 중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개별해고에 대한 한국 노동자의 고용보호는 중위권(12위)이지만, 집단해고에 대한 고용보호는 30위로 최하위권입니다. (▶ 바로 가기 : [거꾸로 가는 노동 개혁]해고가 자유로운 나라, 한국… 개별·집단해고 보호지수, OECD 평균보다 낮아)

10년 이상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비율도 한국은 18.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입니다. 그만큼 한국은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도 한국은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고가 가능한 나라지요. 이런 상황에서 '더 쉬운 해고'를 원하는 정부와 사용자의 요구가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 쟁점'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더욱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취업규칙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취업의 조건에 관해 정한 규칙입니다. 근로기준법 제93조는 10인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에게 노동시간·임금·신분보장·퇴직과 그 수당·안전·위생·복지 등의 사항을 포함한 취업규칙을 작성해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제도를 운용하는 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사용자는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 체제 개편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추진하기 위해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역시 '더 쉬운 일반해고'처럼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가 안 그래도 사용자 친화적인 한국의 기업 환경을 더욱더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취업규칙까지 규범적 기능을 상실하면 노동법의 체계가 와해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게다가 "이 방안은 대기업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사업장의 취업규칙 관련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나 단체협약이 존재하는 대기업 특성상 결국 실제적 효과는 중소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둘 모두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의 말입니다. 제도가 변경돼 취업규칙 변경이 쉽게 조정되면, 안 그래도 상대적으로 노동 환경이 더 불안정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동과 복지 등 각종 조건이 더 불리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애초 정부와 사용자가 원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핵심 쟁점 중에 하나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라면, 같은 핵심 쟁점끼리 추구하는 방향이 상충하는 이런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되겠지요. 아무래도 한국의 비정규직은 중소기업에 좀 더 많이 분포되어 있으니까요.

■ 양대노총, 대기업 노조의 이익만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계는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등 고용유연성 제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라는 두 가지 쟁점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서 유일하게 노사정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에 대해 많은 이들이 "대기업과 사무직 조합원의 이익에만 충실한 집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요. 역사 속의 한국노총에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두 가지 사안을 둘러싼 현실을 들여다 보면, 한국노총이 "대기업과 사무직 조합원들의 이익"에만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계가 분열되길 원하는 어떤 이들의 의도에 복무하고 있진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물론 "청년들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사회적 논의가 작동되고 있는 현상은 진단할 필요가 있다"는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의 말처럼 지금 노사정위 체제의 한계와 틀을 넘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필요하다는 전제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노사정위에 참석하고 있는 한국노총이나 노사정위라는 틀을 거부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주노총이 일부 대기업 노동자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 더 큰 문제는 정부·사용자의 핵심 쟁점 프레임

더 큰 문제는 노사정위에서 논의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핵심 쟁점이 정부와 사용자가 원하는 프레임대로만 유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사정위가 올해 6월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화, 진단과 대안' 자료를 보면, 노사정위가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한 사안은 정부와 사용자가 핵심 쟁점으로 꼽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등 고용유연성 제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임금피크제 등만 있는 게 아닙니다. 노동계를 대표해 한국노총이 적극 제기한 쟁점을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제도 개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이 포함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개선 △사회 안전망 확충 △노동기본권 확대·강화 △사내하도급 축소지향적 규율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 '대기업과 사무직 조합원들의 이익'과는 배치되면서도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의 보호망 확대를 원하는 쟁점이지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는 더 이상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계가 이런 쟁점에 대한 해결책을 노사정위 안(한국노총)팎(민주노총)에서 찾길 원한다는 보도를,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든 상태입니다. 노사정위라는 협상 테이블이 정말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구성체라면, 노사정위에서 공식 논의된 안건들 가운데 △노동계 △사용자 △정부라는 3주체가 각각 협상 카드를 내밀고 타협할 안건을 동등하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정부와 사용자가 내세우는 핵심 쟁점만이 전부인 것처럼 논의되고 있으며, 핵심 쟁점들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노동계가 하나씩 '양보하라'는 프레임만 작동하고 있습니다. 제대로된 사회적 대타협이라면, 노동계가 임금피크제를 양보하면 정부와 사용자도 '사회 안정망 확충'이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이 포함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개선'에서 양보할 지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지금의 여론은 노동계를 '임금피크제조차 양보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 대안은 사회기금 조성과 노동시간 단축

그렇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청년실업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사정이 비용 분담 원칙을 정해 '일자리 연대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자고 말합니다. 이 연구위원의 설명을 보면, 독일은 2004년 '청년 취업 예정자와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일자리 창출' 국가협약을 체결해 매년 5만~10만개의 추가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법을 제안한다면, 노사정 3자가 매년 10만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각각 임금 조정, 고용 창출, 예산 증액 방식으로 '10% 추가 재원'을 사회기금으로 조성하는 것"이라며 "이 기금을 통해 청년 고용에 적극적인 기업에는 지원금을 주고, 고용 목표치를 지키지 않으면 부담금을 지우면 된다"고 말합니다. (▶ 관련 기사 : "노사정 비용 분담해 일자리 창출기금 마련을")

전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 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8월25일 "실노동시간을 연 1800시간으로 획기적으로 줄이면 그만큼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의당은 8월20일 "근로시간 특례 등 각종 예외조항을 없애고 법정 근로시간 한도인 주당 52시간만 지켜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정부는 임금피크제 등 왜곡된 의제를 밀어붙이지 말고 정공법을 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은 2013년 기준 연 노동시간이 2163시간으로, OECD 가입국 가운데 멕시코(2237시간)를 빼고 가장 깁니다. 정말 사회적 대타협을 원한다면, 노동계와 진보 정당의 이런 요구들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서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권력자와 자본이 요구하는 '타협의 정치'가 노동자, 즉 우리를 기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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