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초단시간 노동자들 절규 "올 설도 버림받나요"

2015. 2. 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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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분석|돌봄전담사들 '쇠사슬 농성'

2011년 가을부터 경북 칠곡군에 있는 다부초등학교에서 돌봄전담사로 일하는 이태경(45)씨는 16일 경북교육청 건물 1층 로비에서 다른 돌봄전담사 12명과 함께 연좌농성을 벌였다. 12일 교육청 점거에 나선 지 닷새째 되는 이날까지 이들은 밤에는 침낭을 덮고 자는 등 꼼짝 않고 풍찬노숙을 이어갔다. 허리와 어깨 쪽에는 굵은 쇠사슬을 칭칭 동여맸다. 한꺼번에 끌려나가지 않겠다는 각오의 표시다. 이들 노동자는 해마다 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데 따른 고용 불안정 문제를 해소하려고, 서류상 근로계약과 달리 실제론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해온 자신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한다.

학교·식당 종사자 등 50만여명

근로시간 탓 법적보호 못받아

휴가도 건보도 기간제한도 없이

고용불안 신음 '벼랑끝 농성'

정부, 나쁜 일자리 양산에 골몰

비정규직 대책서도 이들은 빠져

지난해 이씨의 공식 퇴근시간은 오후 4시30분이었다. 하지만 출근시간은 오후 1시30분, 2시, 2시30분으로 날마다 달랐다. 공식 노동시간을 1주일에 14시간으로 하기 위해 출근시간을 변칙적으로 조정한 데 따른 것이다. 2012년까지는 1주에 20시간 일을 했지만 2013년 14시간30분으로 줄인 교육청은 계속 근무 시간을 줄였다. 주당 노동시간을 15시간 아래로 하면 학교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맞벌이 부모가 집에 오기 전까지 정규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돌보며 간단한 예체능 수업을 하거나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주는 일을 하는 돌봄전담사의 노동과 삶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해진 퇴근시간은 오후 4시30분이었으나 아이들이 집에 간 뒤 청소와 간식거리 설거지를 하고 나면 늘 오후 5시가 넘어야 퇴근할 수 있다"며 "부모가 아이를 찾으러 늦게 올 때는 오후 6시가 돼서야 퇴근했지만 학교는 14시간 노동만 인정해 우리를 차별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교육청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코앞에 닥친 설도 쇠사슬과 함께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들은 1주일 노동시간이 15시간 미만이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다.

노동법은 1주일 노동시간이 15시간 이상인 노동자한테 보장하는 노동권을 이보다 10분 적은 14시간50분짜리 노동자에게는 주지 않는다. 한주에 노동시간이 10분 적다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차별과 불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초단시간 노동자'는 계약직을 2년 이상 쓰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10년이든 20년이든 계약직으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할 수 있어 고용 불안이 영속적이다. 근로기준법은 초단시간 노동자한테 1주일에 하루 유급휴가의 개념으로 주어지는 주휴일 및 연차휴가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퇴직금도 없다. 근속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소용없다.

학교에…식당에…초단기 노동자 한숨이 숨어있다

주당 15시간 못채우게 하려출근 시간 10분 늦춰주당 14시간50분으로 맞추고돌봄전담사 1명에15시간 미만짜리 근로계약서2장 쓰게 하는 불법 행위도

초단시간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짧아 급여 자체가 적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부분의 사회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이런 사정 탓에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노후 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은 국민연금 직장 가입자 자격이 없다. 건강보험 가입도 의무가 아니어서 실제 가입자가 거의 없다. 고용보험법의 보호 대상도 아니어서, 해고당해도 실업급여를 신청할 자격이 없다. 4대 사회보험 가운데 산업재해보험만 유일하게 가입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50만여명에 이른다. 식당·편의점 등 서비스업종에서 주로 일한다. 전국의 학교 비정규직 37만여명 가운데 1만명가량이 초단시간 노동자로 분류된다. 공식 통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대략 10만여명에 이르리라 추산되는 특기적성 강사들도 초단시간 노동자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 노동자의 약한 고리를 학교 현장에서 물고 늘어지는 이들은 교육자들이다. 주당 15시간을 채우지 못하게 하려고 하루 출근시간을 10분 늦추거나 퇴근시간을 10분 당기는 방법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14시간50분으로 맞추고, 한 명의 돌봄전담사한테 15시간 미만짜리 근로계약서를 두 장 쓰도록 하는 불법 행위를 일삼는다. 학교 현장의 이런 탈법·불법 행위의 뒤에는 교육감과 교장들이 있다.

이들의 고용 불안이 지속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2월 성명을 내어 우려를 표명했다. 인권위는 "학교비정규직은 보조 업무를 맡고 있다 하나 상시·계속 업무이고 학교 운영에 있어 필수적인 인원에 해당해 이들의 고용 불안정은 곧바로 교육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야기할 개연성이 크다"며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에게 주 15시간 미만 근로계약의 형태로 전환할 것을 압박하는 등 비정규직 감소를 위한 정부 방침 및 사회적 요구에 반하는 사례들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고 짚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고용의 질은 놔둔 채 초단시간 노동자를 양산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돌봄교실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3년 1171명이던 초단시간 돌봄전담사는 지난해엔 3200명으로 273%나 늘었다. 이들을 포함한 방과후 학교 교사, 배식 전담 급식 노동자 등 학교 현장의 초단시간 노동자는 같은 기간 7619명에서 1만673명으로 36%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노동자가 석달 이상만 일해도 퇴직금을 주도록 하겠다면서도 이들 초단시간 노동자는 언급하지 않았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권을 근로시간으로 차별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확대해나가겠다는 정책 목표를 가진 박근혜 정부라면 이들 초단시간 노동자의 노동권을 적극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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