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생활비 없어 밥 굶어..설탕물로 허기 달래"

김현주 2014. 11. 26. 06: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MF 때 집 나가 소식 끊긴 아들이 있어 '생활보호대상자' 선정도 안돼기름값에 돈 다 털어 넣고 생활비 없어..끼니 거르는 게 이젠 일상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때만 되면 생색만 내려는 사람들과 정책 사이에서 쪽방촌 사람들은 오늘 아침에도 냉골에서 일어나 소주 한 잔으로 온기를 찾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뵈면 돌아가신 저희 부모님 같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봉사단체 관계자 A씨)

"보일러가 있어도 못 틀어, 기름값이 비싸서, 그래서 방이 냉동고야. 얼굴이 시려서 잘 때도 마스크를 쓴다니까." 25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서 만난 박모(72·여)씨의 쪽방엔 연탄 보일러가 있지만, 고장으로 무용지물이다. 수리비가 없어 방치한 지 오래됐다.

최근 비교적 포근한 겨울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서울의 쪽방촌 거주자 등 '에너지 빈곤층'의 고통은 더욱 크다. 전기장판 하나 마음껏 켜지 못하는 이들에게 연일 최대치를 갈아 치우는 전력 수요량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 "생활비 없어 설탕물로 허기 달랬더니 얼굴이 퉁퉁 부어 올라"

영등포구에 사는 이모(83)씨는 "기름값이 비싸서 난방을 잘 하지 않고 스웨터에 점퍼를 입고 잔다"고 전했다. 이씨의 한 달 생활비는 동네 통장이 자신의 활동비로 받은 돈을 건네주는 25만원과 정부에서 받는 난방지원금 8만∼10만원이 전부다.

방을 미지근하게라도 덥히려면 월 25만원 정도가 기름값으로 나가 버린다. 지난 금융위기(IMF) 때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아들이 있어 생활보호대상자에도 선정되지 못한 이씨는 "기름값에 돈을 다 털어 넣고 생활비가 없어 며칠간 커피만 먹다 보니 얼굴이 퉁퉁 부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용산구의 한 옥탑방에 사는 김모(65)씨는 궁여지책으로 벽에 스티로폼을 붙였지만 올 겨울의 한기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김씨는 "작년 추운 겨울엔 옷을 하나 더 껴입고 잤다"며 "올 겨울도 그것 말고 별다른 방법이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쉰다.

◆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 겨울철 화재 위험 높아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78·여)씨는 "손자가 '집에 있어봐야 냉기만 돌고 할 것도 없다'면서 매일 나가 버린다"며 "돈이 없어 귀한 손자를 길거리로 내모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겨울나기가 두렵다. 제대로 된 겨울옷도 없어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었지만, 나무판자로 된 문은 추위를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당장 다가오는 추위도 걱정이지만 한 몸 누우면 꽉 차는 방 한 칸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인력시장에 나가도 일자리가 없을뿐더러 공공근로조차 경쟁이 치열해 떨어지기 일쑤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상황도 벌어진다. 영등포구의 한 쪽방에 사는 성모(66)씨는 휴대용 버너 하나에 의지해 힘겹게 지난 겨울을 보냈다.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화재 위험이 크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성씨는 말했다.

26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쪽방촌 등 재난취약지역으로 관리되는 곳은 서울에만 11곳에 이른다. 관련기관에서 관할 소방서와 함께 쪽방촌 전기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이 아닌 봄에 시행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전기점검은 전선이나 누전차단기를 검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관계당국은 소방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쪽방촌에 비상소화장비함을 설치해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함 위에는 물건이 쌓여 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장비함에는 비밀번호를 알아야 열 수 있는 자물쇠를 채워 비상시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관리 주체가 없어 비밀번호를 아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은 "쪽방촌과 같이 인화성 물질이 많고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은 늘 화재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며 "주거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해 입주민들의 주의와 정부의 수시 점검을 통한 화재 예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경기 불황, 소득 양극화…연탄 사용 다시 증가

소득 양극화와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최근 연탄을 때는 가구가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탄 사용 가구수는 16만8400여곳으로 2011년 15만7700여가구보다 6.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재단과 서울연탄은행이 전국 31개 지역 연탄은행과 함께 지난 5∼8월 현장 조사를 벌여 나온 결과다.

연탄 사용 가구수는 2004년 18만2100여가구, 2005년 24만9600여가구에 이어 2006년 27만100여가구로 정점을 찍었다가 이후 2011년까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3년 만의 조사에서 연탄을 때는 가구 수는 다시 늘어났다.

올해 조사 결과를 시·도별로 보면 경북이 4만7000여가구로 가장 많았고 이어 ▲강원도 3만4700여가구 ▲전남 1만5700여가구 ▲충북 1만2400여가구 ▲전북 1만900여가구 등 순이었다. 서울은 3100여가구가 연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탄 사용 가구를 소득 수준별로 분석한 결과 6만300여가구가 기초생활수급대상, 2만1100여가구가 차상위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5만5100여가구였다.

연탄은행 관계자는 "연탄은 소득을 늘릴 기회가 없는 고령층과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서민의 연료"라며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 확대와 시민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봉사단체 한 관계자는 "지자체나 기업·사회복지단체에서 담요나 전기장판 등 물품을 대주는 것은 사실상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관련 행정기관에서 주민들의 주거 여건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궁극적으론 주민들 스스로 일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 실시하고 있는 자활근로라고 해봐야 한 달에 30만~40만원 수준인데, 기초수급자보다 적은 금액을 받고 누가 일하러 가려고 하겠느냐"며 반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