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지천 르포]'총알'처럼 빨라진 물살.. "봄비에 물고기도 휩쓸려가"

여주 | 최명애 기자 2011. 5. 1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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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둑마다 움푹움푹 생채기, 실핏줄 터진 '수도권 젖줄'

역행침식으로 강변이 움푹 파인 경기 여주군 대신면 한천의 모습. | 서성일 기자

하천의 인공구조물은 봄비에도 견디지 못했다. 지난 13일 경기 여주군 점동면 청미천의 남한강 합류부. 하천의 양안을 잇는 하상유지공(강바닥의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 쌓는 구조물)은 한가운데가 끊어지고 없었다. 터진 돌무더기 사이로 강물이 빠른 속도로 흘렀다. 황인철 녹색연합 4대강 현장팀장이 하천 위로 드러난 모래톱을 가리켰다. "보름 전만 해도 저기는 무릎까지 물이 찰랑거렸어요. 비 때문에 하상유지공이 터지고, 물살이 빨라지면서 반대편으로 모래가 쌓인 거죠."

청미천만이 아니었다. 지난 13일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4대강 범대위)와 시민환경연구소 등의 남한강 하천환경 현장조사에 동행해 둘러본 경기 여주군 일대 10여개 지천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본류와 지천의 강바닥 높이 차를 줄이기 위해 만든 하상유지공은 곳곳이 터져나갔고, 빨라진 물살에 강변은 움푹움푹 깎여 있었다. 물살이 모래를 실어나르면서 준설을 끝낸 강에는 다시 모래톱이 만들어졌다. 지난 한 해 본류 준설이 이뤄지고, 4월 말과 5월 초 두 차례 비가 내린 결과다. 본격적인 폭우와 태풍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하천은 이미 홍수라도 휩쓸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청미천의 하상유지공은 지난달 30일 내린 비 때문에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점동면 일대에는 그날 하루 75㎜가 쏟아졌다. 비 때문에 강물이 불면서 유속이 빨라졌고, 수십개의 돌을 그물 주머니에 넣어 쌓아올린 하천유지공은 쓸려나갔다. 13일 강변에 건져 올려둔 돌 주머니는 곳곳이 끊어져 돌이 삐죽 튀어나온 상태였다.

시민환경연구소는 물살이 빨라진 것을 남한강 준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준설로 본류 강바닥이 3~4m 이상 낮아지면서 지천 강바닥과 높이 차이가 생겼고, 이 낙차 때문에 유속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박재현 인제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여주읍 연양천의 유속을 분석한 결과 남한강 합류부로부터 상류 400m 지점의 유속은 초당 2.0m에서 준설 이후 4.17m로 2배가량 빨라졌다.

유속이 2배 빨라지면 물의 세기인 소류력은 4~5배 증가한다. 소류력이 증가하면서 세굴심(자갈이나 모래가 강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힘)도 강해진다.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지난해 추석 폭우 때 연양천의 신진교가 붕괴된 것도 준설 때문에 소류력과 세굴심이 3~5배 커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제방 보강공사 중인 경기 여주군 강천면 간매천의 모습. | 서성일 기자

이날 남한강변에서 만난 사람들은 강물의 흐름이 지난해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강원 원주시 부론면 섬강과 남한강 합류부에서 물고기를 잡던 한승해씨(55)는 "4대강 공사를 하고 나서 물살이 '총알'이 됐다"고 전했다. 준설 이후 한강 본류의 물고기가 "공사 이전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돼" 섬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업을 하려 했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 배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김성만 녹색연합 4대강 현장팀 활동가는 "하상유지공이 설치된 뒤로 섬강은 더 이상 자갈이 훤히 보이던 얕고 맑은 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속이 빨라지면 강변이 깎여나간다. 하류가 상류를 침식하는 이른바 '역행침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사 하천 대부분에서 강변이 파이거나 나무가 무너진 역행침식의 흔적이 관찰됐다. 여주군 대신면 한천 합류부에서는 제방이 무너지면서 제방 위에 쌓은 시멘트판까지 부서져 있었다.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위원장이 제방에 남아있는 시멘트판에 발을 디디자 돌더미들이 부스스 무너져 내렸다. 여주군 재난관리과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폭우 때 제방이 씻겨내려가 현재 복구 공사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 여주군 점동면 청미천과 남한강 합류부의 모습. 강을 가로지르던 하상유지공(4월28일 촬영·위 사진)이 비가 내린 뒤인 지난 13일 가운데가 끊어진 모습(아래 사진)으로 놓여져 있다. 4대강 범대위 제공·| 서성일 기자

제방과 하천 바닥 공사는 콘크리트를 두르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었다. 여주군 강천면 간매천의 제방은 돌로 덮이는 중이었다. 포클레인 두 대가 쉼없이 강둑에 돌을 쌓아올렸다. 북내면 오금천은 하천 합류부를 아예 시멘트로 덮었다. 콘크리트 강바닥 한가운데 어도(물고기길)로 물살이 빠르게 흘렀다. 정민걸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콘크리트가 열을 받아서 여름이 되면 물고기들이 살기 힘들 텐데…."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4대강 사업이 계속되는 한 홍수 피해를 줄이려면 콘크리트로 강바닥과 제방을 다 싸는 수밖에 없다"며 "불행하게도 이 모습이 바로 우리 하천의 미래"라고 말했다.

▲ 역행침식

하천의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침식이 확산되는 현상. 본류 준설→본류와 지류 강바닥 높이 차이 발생→유속 증가→물의 세기(소류력) 및 강바닥을 긁는 힘(세굴심) 증가→하천 침식 확대 순으로 진행된다. 지난 2~3월 낙동강의 경북 상주 병성천과 낙동강 합류지점 등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본류와 지류의 합류부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 하상유지공

강바닥의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쌓는 구조물. 유속 증가 등으로 강바닥이 파일 우려가 있는 본류·지류 합류부에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돌무더기 형태로 설치한다. 남한강의 경우 31개 하천 가운데 15개 하천에서 하상유지공 건설이 진행·계획돼 있다.

< 여주 | 최명애 기자 glauk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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