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저수지에 296억..어이없는 4대강 사업

광주 | 배명재 기자 2010. 3. 1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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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왕동저수지 20억 들여 둑 보강 뒤 또 확장"영산강 홍수예방 목적".. 마을 일부 수몰 위기

"산골서 4대강 살리기 웬말이냐."9일 오전 광주 광산구 본량동 왕동마을 마을회관 앞. 쏟아지는 빗발 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70, 80대 어르신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4대강이 뭔디, 없이 사는 사람 깔보고, 정말 징헌 세상이요."

벌써 4개월째다. 이 마을 주민 25가구 50여명은 매일 오전 마을회관 앞에 10명씩 나와 '4대강 살리기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곳은 동사무소에서 들과 산을 넘어 3㎞나 걸어야 하는 벽지마을. 그 흔한 농촌버스조차 다니지 않는다.

두메산골 어르신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역정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민 모두가 속절없이 쫓겨날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마을 앞 왕동저수지를 넓히고 둑을 높이는 사업을 포함시켰다.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 농업용수를 저장하고, 영산강의 홍수 예방을 위해 이 공사를 해야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이에 따르면 현재의 왕동저수지 아래쪽 30~40m에 새 둑(길이 200m, 높이 19.6m)을 쌓고 저수용량을 260만t(현재 90만t)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예산만도 296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업을 할 경우 마을 일부가 물에 잠기고 진입로마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이다. 마을 전체가 섬처럼 고립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주·보상 대책도 없다. 그저 오는 6월부터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통보만 받아놓은 상태다. 나춘자 할머니(82)가 눈물을 글썽인다.

"왜정 때도 이렇게 몰아붙이지 않았당께. 낼모레 집 뺏고, 농토 뺏어간다면서, 어떻게 살도록 해줘야 할 거 아니여. 워매 눈물이 나부요."

더욱이 이 마을은 영산강 지류(황룡강)와 무려 6㎞나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홍수가 난 적은 없다. 가뭄 때도 저수지의 물이 50% 이상 남아돌 정도다. 조선대 이성기 교수(환경공학)는 "왕동 들녘 농사는 인근 평림천과 황룡강에서 끌어쓰는 물로 짓고 있어 이 저수지를 확장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이미 '4대강 공사'에 포함돼 물에 잠기는 저수지의 기존 둑에 대한 보강공사를 벌인 것이다.

주민대책위 이육연 위원장(62)은 "새 둑이 조성되면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기존 둑을 20억원이나 들여 공사한 것은 엄연한 혈세 낭비"라고 울분을 토했다. 관할 광산구청도 "2003년부터 40억원을 들여 진행해온 '왕동저수지 수변공원사업'도 헛일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정부가 왕동저수지뿐 아니라 전국에서 저수지 95곳의 둑 높이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돈이 무려 2조3000억원이란다.

< 광주 |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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