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인격 존중해 수족관 설치를 금하노라"

2015. 1. 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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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생명

'비인간인격체'의 탄생

▶ 인간은 옛날부터 스스로 돌고래보다 똑똑하다고 여겨왔다. 인간이 자동차, 뉴욕, 전쟁 등 무수한 업적을 이룩하는 동안 돌고래는 물속에서 몰려다니며 희희낙락한 일밖엔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이유로 돌고래는 옛날부터 스스로 인간보다 월등히 똑똑하다고 믿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권, 버지니아 모렐의 <동물을 깨닫는다>에서 재인용)

2013년 5월 인도의 환경산림부는 돌고래 수족관 설치를 금지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흥미로웠다. 당시 중앙동물원관리국이 작성한 공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돌고래를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s)로 보아야 하며 이에 따른 고유한 권리를 지닌다. 돌고래를 공연 목적으로 가두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해 12월에는 또 하나의 비슷한 소식이 <비비시>(BBC),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의 침팬지 '산드라'가 비인간인격체인 만큼, 법원이 그를 풀어주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등이 자초지종을 확인하면서 법원 판결문이 와전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그만큼 비인간인격체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짓는 '뜨거운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동물은 기계"라는 관점의 종언

비인간인격체란 무엇일까?

먼저 '비(非)인간'(nonhuman)부터 알아보자. 비인간은 2000년대 들어 서구 학계와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동물(animals)을 대신하는 표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장애인' '비혼' 등의 용어를 의도적으로 쓰듯이, 기존의 인간-동물의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인간을 쓰자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기 때문에 인간-동물의 이분법은 정확하지 않다.

비인간인격체 담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환경철학자 토머스 화이트 교수(로욜라 메리마운트대 윤리학 전공)는 '휴먼'(human)과 '퍼슨'(person)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휴먼이 동물 외양의 물리적 특성을 비교해 정의하는 생물학적 범주라면, 퍼슨은 사고나 감정, 성격, 자의식 등 주체성을 논하는 철학적 범주다. 외양은 다르지만 주체성은 비슷할 수 있다. 화이트 교수는 돌고래가 자의식을 가지고 도덕적 판단을 하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면서 돌고래를 인격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약하자면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다르지만(비인간), 인간만이 독보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으로 여겨졌던 특성(인격체)을 공유하는 '비인간인격체'라는 것이다. '동물은 기계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현대과학에서 폐기된 지 오래됐다. 이제 동물은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고 이성과 감정이 있으며 때로는 도덕적 행동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고 있다.

비인간인격체를 번역하다 보면 곤혹스러움을 마주한다. 한글에서 '휴먼'과 '퍼슨'은 모두 인간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비인간 인간' '사람 아닌 사람' 등 자기모순을 내포하고 만다. 그래서 '비인간인격체'라는 말을 골랐다. 인격은 일반적으로 '사람 됨됨이'를 지칭하지만, 국어사전에서 '도덕적 판단 능력을 지닌 자율적 의지의 주체'로 정의되기도 한다. 법률에서는 '비인간'인 법인에 권리를 갖는 법적 인격이 부여된다. 그런 점에서 동물도 권리를 갖는 인격체가 될 수 있다. 도덕과 의지를 가지고 산다면 말이다.

그럼 어떤 동물이 비인간인격체일까? 동물의 도덕과 의지를 실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동물행동학자들은 거울자기인식 실험을 통해 동물에게 자의식이 있는지를 판가름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타자화해 생각한다'(남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며 다른 말로 '반성적 사유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 유인원 그리고 코끼리, 돌고래가 거울자기인식 테스트를 통과했다. 이를테면 돌고래는 페인트가 칠해진 자신의 꼬리를 거울에서 본 뒤 자신의 몸을 흘끗거린다. 최근에는 조류의 일종인 유럽까치(European magpie)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비인간인격체는 철학적 개념에서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 철학자 피터 싱어 등이 참여해 1993년 세운 '유인원프로젝트'는 △생명에 대한 권리 △신체의 자유 △고통을 주는 행위 금지 등의 세 가지 원칙을 내놓았다. 화이트 교수를 비롯해 이탈리아 철학자 파올라 카발리에리, 동물행동학자 로리 마리노 등은 2010년 '헬싱키그룹'을 결성해 고래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고래와 돌고래 권리 선언문'엔 열 가지 원칙이 담겼다. 선언문을 보면 고래와 돌고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으며 서식지와 문화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생명권, 이동권, (자연에서의) 거주권을 갖는다.

최근에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난휴먼라이츠프로젝트'(The Nonhuman Rights Project·NhRP)가 비인간인격체 운동의 중심에 서 있다. 이 단체는 유인원, 코끼리, 고래, 돌고래 등 비인간동물을 자연인이나 법인과 같은 법률상 권리주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법적 지위 변경을 통해 비인간인격체의 전시·공연 금지, 동물실험 금지 등을 노린다. 2013년 12월에는 대학연구소 등에 수용된 침팬지 네 마리의 구금을 풀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패소한 난휴먼라이츠프로젝트는 현재 항소한 상태다.

언어와 도구 사용, 도덕적 행동…인간만 가지고 있다던 특성들유인원, 돌고래 등에서 발견되면서"동물에게도 인격이 있다"는'비인간인격체' 주장 떠올랐다인도 정부는 돌고래에게 부여했고미국에서는 침팬지 소송 진행중동물에 위계를 정하는 건 아닌가우리와 비슷한 고등동물만 우대하는'인간중심주의'라는 비판도 있다

그럼 고등동물만 보호받을 가치가 있나?

비인간인격체 운동에서 거꾸로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발견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지능과 감성을 갖고 있는 고등동물에게만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일반적으로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보노보 등 영장류, 고래와 돌고래, 코끼리 등 거울자기인식 테스트를 통과한 동물만 비인간인격체로 규정된다. 이 때문에 비판적 학자들은 비인간인격체 담론이 인간의 범주를 인간과 비슷한 고등동물에게 확장한 것일 뿐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묻는다. 고등동물만 보호받을 가치가 있나? 동물종마다 실존적 세계가 다른데, 어떻게 지능이 측정·비교·평가될 수 있나?

국내에서는 2013년 9월6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돌고래 포획 금지 촉구 집회에서 비인간인격체가 처음 등장했다. "일본 정부는 '인류가 아닌 사람'에 대한 학살을 중단하라". 고래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가 펼쳐 보인 플래카드 문구였다. 그러나 비인간인격체는 학계나 사회운동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진 않고 있다. 2013년 제돌이와 함께 제주 앞바다에 야생 방사된 태산이, 복순이의 법원 판결은 '몰수형'이었다. 돌고래의 권리를 인정한 게 아니라 수족관의 불법적 '소유물'을 몰수한 것이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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