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도 자폐증을 앓는다..동물원은 '감옥'

김기범 기자 2013. 10. 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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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하염없이 철창 바로 앞 4~5m 정도 거리를 왔다갔다했다. 흔히 정형행동이나 상동증이라 불리는 그것, 우리 안에서 아무 목적없이 지속·반복되는 단순행동이었다. 옆 우리의 말승냥이 두 마리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리는 늑대와 같이 철창 앞 3m 사이를 끝없이 왕복했고,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안을 대각선 모양으로 오가다가 잠깐 멈춰 무언가를 물끄러미 보고는 다시 움직였다.

지난 1일 경기도 과천의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함께 찾은 '동물을위한행동' 전경옥 대표는 "어느 동물원에서든 늑대나 곰처럼 비교적 지능이 높은 동물들이 하는 정형행동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며 "특히 늑대는 언제, 어느 동물원을 가든 여기처럼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동물들의 정형행동은 정신적 장애

동물원 동물들이 자폐증의 일반적 증세로 알려진 정형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형행동이 비좁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동물들의 정신적 장애라고 보고 있다. 건국대 수의학과 김진석 교수는 "정형행동이나 상동증은 학술적으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이지만 목적이 없는 행동'을 말한다"며 "동물이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보니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고통·통증에 노출될 때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정형행동은 나중에 자연적인 행동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도 평생 지속되는 경향이 높다"며 "정신적 장애에 의한 행동장애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원은 흔히 관람객들이 우거진 숲과 동물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우는 공간이다.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본 동물원은 거대한 감옥이자 정신병동이었다. 전 대표는 "비좁은 우리에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멀쩡한 동물도 미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야생에서의 행동반경에 비해 턱없이 좁은 우리, 관람객에게 수시로 노출되며 받는 스트레스, 놀잇감도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 하는 환경이 동물들을 고통스럽고, '미치게' 만든다고 봤다.

실제 서울대공원 내 동물들의 우리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관람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동물사, 이른바 '비인기동물'의 우리는 더 비좁고 열악했다.

천연기념물 흰꼬리수리는 좁은 철창 안에서 날개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참새가 자유롭게 우리를 드나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필리핀원숭이와 돼지꼬리원숭이는 작은 우리에서 나무와 밧줄 외에 아무 놀잇감도 없이 지내고 있었다. 전 대표는 "두루미·황새 등이 사는 큰물새장을 제외하고는 새들이 우리 안에서 날 수 있는 경우가 없다"며 "새들이 날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기만 하다 보니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없고, 동물원 측 배려에서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능이 높은 유인원이나 곰, 늑대 등은 놀이가 필요한데 우리 안에는 놀잇감으로 삼을 만한 도구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동물들이 정상적인 성체가 되고, 다른 동물들과 함께 잘 어울려 지내려면 놀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특히 동물원에서 지내는 영장류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생활하지 않기 때문에 놀잇감이 중요한데 그걸 막으면 정상적인 활동과 지능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하면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맥락과 이치라고 했다. 동물들을 관리·보호 대상으로만 보니 다치기라도 할까봐 놀잇감을 주지 않고, 그로 인해 동물들의 스트레스는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서울대공원은 그나마 '천국'

문제는 열악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서울대공원 동물원 시설이 국내에서는 가장 나은 편이라는 점이다.

지난 7월 국내 동물원의 현황을 조사해 보고서를 펴낸 바 있는 전 대표는 "지방 동물원들을 가보니 '서울대공원은 천국이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방 동물원에선 호랑이나 곰처럼 덩치가 큰 동물도 2~3평밖에 안 되는 밀폐 우리 안에서 사육하는 경우가 많고, 작은 동물들은 아예 닭장 크기의 우리에 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 이형주 팀장은 "지방동물원에서는 우리가 너무 좁고 관람객들과 가깝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원숭이가 하루종일 바닥에 누워만 있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관람객만 지나가면 우리를 두드리며 폭력성향을 드러낼 때도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동물들에 대한 지나친 약물 투여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향신문이 울산시의회와 환경단체를 통해 입수한 울산고래생태체험관 사육일지를 해외 돌고래전문가에게 보여준 결과 돌고래 4마리 중 1마리에게 지나치게 많은 양의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의사는 "돌고래에게 3가지의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양"이라며 "한 돌고래에게 약물 투여를 할 때 다른 돌고래들에게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를 투여한 것 역시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동물원들은 동물들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거의 신경쓰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회와 대전시의회를 통해 입수한 서울대공원·대전오월드의 사육일지에는 늑대나 곰 등의 정형행동에 대해 아무런 내용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8월의 폭염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북극곰의 사육 온도나 털 탈색 등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동물 전문가, 사육사, 동물보호단체가 '최악의 동물원'이라고 꼽는 곳이 있다. 서울대공원만큼 인기도 많고, 접근성이 높은 에버랜드이다. 동물쇼와 체험학습 명목으로 동물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장이권 교수는 "동물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만지게 하는 것은 동물들에게는 단순히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 느끼는 두려운 감정에 더해 최악의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며 "동물을 만지는 것은 동물들의 몸에 엄청난 자극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새끼들은 더욱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많이 만질수록 쉽게 죽어나가게 된다"며 "에버랜드나 신당동의 동물체험관 등 사설업체들의 동물체험에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사육사는 "누가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고, 마음대로 만지작거리는데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라며 "동물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을 관람객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쇼 무대 오르는 동물 학대 심해

동물을위한행동의 전 대표는 "에버랜드는 사파리가 동물들에게 자유롭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압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우리 안에 갇혀있는 것"이라며 "특히 에버랜드는 물개쇼를 하면서 말을 듣게 하려고 물개를 굶기는 등 동물쇼를 통해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착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대표의 말처럼 동물원에서도 쇼에 동원되는 원숭이, 코끼리, 물개, 바다코끼리 등 비교적 지능이 높은 동물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동물쇼에서 구타·굶기기 등의 학대가 일상적으로 자행되기 때문이다. 한 전직 사육사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원숭이쇼는 구타가 없이는 이뤄질 수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지능이 높은 원숭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련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에 비해 구타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이원창 사무국장은 "원숭이쇼를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관찰해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지친 원숭이들이 말을 안 듣고, 지시를 거부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며 "조련사들의 증언에는 쇼 후에 말을 안 듣는 원숭이가 맞아죽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가능한 고지능 동물들일수록 조련사의 지시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학대가 따르게 되는 셈이다.

최근 고양시의 사설동물원 쥬쥬에서 문제가 된 바다코끼리 구타 문제도 동물쇼가 원인이었다. 바다코끼리 구타 영상을 제보받아 공개한 이원창 사무국장은 "쇼가 시작되기 전후에 조련사가 바다코끼리를 계속해서 구타하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공연 전에 때리는 이유는 공연 중에 긴장하고 무서워하도록, 공연 후에 때리는 이유는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며 "주로 수컷이 많이 구타당하는데 공연 내용의 대부분이 수컷에게 집중되어 있어 그만큼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쥬쥬 측이 해당 조련사를 해고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하는데 동물쇼에서 구타는 필연적인 것"이라며 "동물쇼가 중지되지 않는 이상 학대는 사라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카라는 바다코끼리 말고도 악어·오랑우탄·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 동물들을 학대한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쥬쥬를 의정부지검에 고발하고, 동물들을 몰수·보전 조치하도록 요청한 상태다.

한 전직 사육사는 "유인원들은 쇼에 나가기 직전 말을 잘 들으라는 의미에서 뒤로 꼬집는 경우가 많다"며 "오랑우탄의 경우 워낙 몸이 단단하다보니 살살 때려서는 끄덕도 안 하니까 입처럼 약한 부분을 주먹으로 때린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러다보니 이빨이 부러지는 경우도 많다"며 "힘이 세고,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학대 정도가 더 심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의 감시와 행동도 동물쇼를 실시하는 동물원들에 맞춰져 있다. 동물을위한행동 전 대표는 7일부터 사설업체의 물개·앵무새 등을 이용해 쇼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전 대표는 "동물원과 동물쇼는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동물을 하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외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게 한다"며 "서울시는 어린이대공원의 동물쇼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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